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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따수운 작가 우듬지 Aug 03. 2020

영화 <언더워터 Underwater> 리뷰

심해에는 정말 괴물이 살까요 ?

영화 <언더워터 Underwater,2015> 포스터.



나는 어릴 적부터 물장구를 좋아했다. 하지만 바다는 무서워했다. 모순적이지만 물놀이 자체가 주는 위안과는 달리, 검푸른 바다를 보고 있으면 꼭 거기에 식인상어나 해저 괴물 같은 것들이 있을 것만 같은 공포심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바다를 놀러 가서도 늘 모래사장에서 그리 멀지 않은 깊이에서만 헤엄치곤 했다. 언제라도 상어가 나를 향해 돌진하면 빨리 뛰쳐나올 수 있도록.


그런 공포심은, 또 모순적이게도 괴수영화를 좋아하게 만들었다. 거대한 상어나 악어, 피라냐, 아나콘다로부터 기습을 당하고 이들과 용맹하게 맞서 싸우는 이야기들을. 내가 무서워하는 대상을 결국엔 무찌른다는 점에서 큰 카타르시스가 있었고, 그래서 괴수영화를 보는 일은 재밌었다. 잊을만하면 나오는 바다 괴수 장르물은, 바다를 좋아하면서도 무서워하는 내게, 그렇게 간간이 힐링이 돼주곤 했다. 


언더워터도 그런 괴수 이야기를 담고 있는 영화다. 하지만 조금 특별한 점이 있다면, 상어나 피라냐 같은 익히 아는 존재들로부터 확장된 이야기가 아닌, 전혀 본 적 없는 존재들을 그려냈다는 점? (솔직히 처음엔 제목만 보고 당연히 상어 이야기인 줄 알았다.)




영화의 배경은 해저 11km. 알다시피 수중은 깊어질수록 엄청난 압력이 가해지기 때문에, 우리네 인류가 들어갈 수 있는 깊이는 잠수함을 이용했을 때도 겨우 300미터 남짓이라고 한다. 그러니 장장 11km의 영역에 어떤 생명체들이 사는지 우리는 아직 거의 밝혀내지 못한 것이나 다름없다. 


주인공 '노라(크리스틴 스튜어트)'는 해저 11km의 시추시설 '캐플러 기지'에서 엔지니어로 일을 한다. (머리를 박박 민 크리스틴 스튜어트의 모습에 상당히 당황했는데 놀랍게도 그 머리를 하고도 크리스틴은 무지하게 예뻤다.) 반삭의 크리스틴 '노라'가 양치를 하던 도중 갑자기 지진이 일어난다. 그로 인해 기지 안에 순식간에 물이 차게 되면서, 파괴된 기지로부터 탈출해야 하는 상황이 벌어진다. (이래서 바다가 무섭다)




대자연 앞에서 인간은 한낱 티끌 같은 존재라는 게 이 영화에서도 느껴진다. 그 커다란 기지에서 단 다섯 명의 대원만이 가까스로 살아남는다. 그들이 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탈출 포트가 있는 1.6km 거리의 또 다른 기지 '로우벅'으로 가는 것. 수압을 견디는 뚱뚱한 특수 수트를 입고 물속을 두 발로 걸어 그 기지까지 가야 한다. 다시 말하지만 수중 11km는 사람의 접근이 가능한 깊이가 아니라서, 그 수압에 노출되면 사람은 완전히 찌그러진다고 한다. 걷다가 수트가 깨지기라도 하면 바로 즉사하는 상황. 하지만 이래 죽으나 저래 죽으나 마찬가지인 상황 속에서 대원들은 마지막 희망을 걸고, 단 몇 퍼센트라도 살 가능성이 있는 로우벅까지 '그래도' 가보기로 한다.


별다른 변수가 발생하지 않는다면 그들은 이론상으로는 걸어서 해저 기지로 갈 수 있었다. 그런데 변수가 안 생길 수가 없지. 깜깜한 해저에서 뭔가 심상치 않은 움직임들이 목격된다. 그리고 곧 그것들이 깊은 해저에 사는 생명체라는 것을 알게 된다. 매우 징그럽게 생긴, 괴물에 가까운 생명체들. 그들을 물리치며 가던 도중 대원 하나가 죽게 되고, 대원들 중 중추 역할을 했던 선장도 죽게 된다. 남은 대원은 노라, 그리고 겁 많은 에밀리, 그리고 부상당한 에밀리의 남자 친구 스미스. 당최 힘나지 않는 조합으로 뭉친 그들은, 겨우 수트 하나에 의지한 채 어떻게 어떻게 로우벅 기지 앞까지 기적적으로 도착을 하는데... 진정한 충격은 그때부터다. 


자신들을 여태 공격했던, 그래 봐야 사람 크기만 했던 해저 괴물들이 사실은 '새끼'에 불과했던 것이다. 도착한 로우벅 기지 앞에 바글바글 모여 동면을 취하고 있던 새끼 괴물들 사이로 서서히 뭔가가 드러난다. 그것은, 또 다른 거대한 괴물이다. 거의 집채만 한 크기에, 이빨이 수백 개는 되어 보이는 흉측한 대형 괴물. 하지만 다행히도 그들을 피해 로우벅 기지 안으로 들어가는 데까지 성공한다. 이제 포트를 찾아 타고 물 밖으로 나가기만 하면 되는 상황. 그런데 하필이면 정상적으로 작동하는 탈출 포트가 두 개뿐임을 알아버린다. 언제라도 괴물들이 다시 또 기지를 파괴할지 모르는 상황에서, 세 명 중 두 명만 살 수 있는 것이다. 한 시도 지체할 수 없는 현실 앞에서 노라는, 즉각적으로 커플인 '에밀리와 스미스' 대원을 살리기로 결심한다. 그리고는 재빨리 포트에 그 둘을 태워 탈출시킨다.


-



그러고 나서, 그 망망대해 속에서 노라는 혼자 남겨진다. 나는 그때까지만 해도 그녀가 고장 난 한 개의 포트를 고쳐 바다 밖으로 빠져나가며 끝나는 해피엔딩을 상상했다. 그러나 그녀는 멍하니 유리창 밖으로 보이는 거대 괴물과 새끼 괴물들을 바라본다. 생존 욕구가 전혀 느껴지지 않는 그녀의 표정에서 나는 직감했다. 아, 노라는 죽는구나. (남편한테 "괜찮아 주인공은 안 죽어"하고 외쳐댔는데.)


나는 내내 그 부분이 찝찝하고 아쉬웠다. 노라의 이 (자신이 희생하기로 한) 선택에서 개연성이 부족하다고 느껴졌기 때문에. 노라는 과거 비슷한 상황 속에서 남자 친구를 먼저 잃은 경험이 있었고, 그래서 삶의 의지가 그리 크지 않은 것 같으며, 그래서 서로 사랑하는 사이인 '에밀리와 스미스'를 살리기로 결심한 거라고, 에밀리와의 짧은 대화 속에서 설명이 이루어지긴 하지만... 그래도 이 부분은 극히 짧았다. 어쩌면 가장 중요할 수 있는 대목인데도 불구하고. 그래서 그렇게 힘들게 로우벅 기지까지 살아 들어와 놓고도 결국 죽음을 택하는 모습이, 관객을 납득을 시키기에는 충분치 못했던 것 같다. 영화 내내 너무 쫄깃하고 흥미진진했던 것과는 별개로.


그래도 그 찝찝한 노라의 선택에도 엔딩이 이내 속 시원했던 부분은, 어차피 가만히 있어도 죽을 운명이었던 노라가, 기지를 폭파함으로써 죽음을 택한다는 점이었다. 자신들의 기지를 파괴했으며, 대원들 그리고 노라가 무지 의지했던 것으로 보였던 선장을 죽인 데다, 결과적으로 이 재난으로부터 자신을 완전히 고립시킨 괴물들을 부숴버리기로 결심한 것이다. 그녀는 기지의 원자로를 과부하시키는 버튼을 누름으로써 나름대로의 '복수'를 하며, 이 영화를 끝낸다. 괴물과 함께 터져버리고 말 자신의 마지막에, 씁쓸한 웃음을 지으면서.


앞서 말했듯 노라에게 살고자 하는 욕망이 거의 드러나지 않았고, 그 이유에 대한 설명이 많이 부족했기 때문에, 그 감정선에 대해서는 너무너무 아쉽다. 그럼에도 이 영화가 맘에 들었던 점은, 정말 있을 법한 이야기라고 느껴졌기 때문이다. 뭔가 담백했달까. 흔히 괴수영화가 겪게 되는 실수는, 괴물을 너무 극단적으로 묘사하다 보니 유치해진다는 점이다. 하지만 이 영화는 극적이지 않고 조금 담담하게, 현실에 존재가 가능할 듯한 괴수 이야기를 잘 전달한 느낌이다. 


더불어, 지금까지의 바다 괴수 이야기는 철저히 인간이 접근 가능한 범위의 바다였고, 그래서 철저히 익숙한 느낌의 공포였다면. 언더워터는 배경이 '심해'여서일지, 조금은 다른 느낌의 공포를 선사했다는 점. 마치 우주 같은 고요함과, 그 속에서 오는 고립에 대한 거대한 공포를 말이다. 어쩌면 괴수가 없었더라도 충분히 무서운 영화였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바다는 늘 내게 무서운 영역이었지만, 그보다 '더' 밑인 바다의 밑, Under water는 과연 더욱더 깊은 공포였다. 나는 어떤 일이 있어도, 사람의 접근이 불가능한 영역에 굳이 자연의 경고를 무시하면서까지 들어가지는 말아야지. 물 밖에서, 오늘도 안전함에 감사하며.





해당 포스트는 인스타그램 매거진 <주간우두미>의 15호 포스트의 일부입니다. <주간우두미>는 인스타그램 @woodumi 계정 또는 해시태그 #주간우두미를 통해 보실 수 있습니다. 



2020 매우 주관적인 평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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