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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따수운 작가 우듬지 Aug 20. 2020

영화 <달라스 바이어스 클럽> 리뷰

<실화바탕>에이즈를 물리치려 했던 남자, 론 우드우프의 이야기

달라스 바이어스 클럽(Dallas Buyers Club, 2013)
제작 : 미국, 드라마│감독 : 장 마크 발레 │출연 : 매튜 맥커너히(론 우드루프), 자레드 레토(레이언) 제니퍼 가너(닥터 이브 삭스)│등급 : 청소년 관람불가│러닝타임 : 117분



에이즈를 몰랐던 시절



때는 1980년대 후반. 아직 에이즈라는 병이 잘 알려지지 않았을 때의 이야기다. 그로부터 30년이 지난 지금도, 에이즈가 '동성 간의 성접촉에 의해서만 걸리는 질병'이라고 어렴풋이 잘못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니 에이즈가 막 알려지기 시작한 그때야 오죽했으랴 싶다. 


그 시대를 꽤나 방탕하게 살아가던 '론(매튜 맥커너히)'은 굉장히 마초적인 사람으로, 동성애를 극도로 혐오하는 인물이다. 그의 취미는 성난 소 위에서 오랜 시간을 버티는 로데오이자, 늘 술 담배와 여색에 쩔어있는 모태 상남자. 그런 사람이 어느 날 단순 사고로 병원에 실려갔다가 뜻밖의 진단을 받게 된다. 에이즈 말기라는 것. 그리고 더 청천벽력인 건 그에게 남은 날이 겨우 30일이란다. 론은 자신은 동성은 쳐다도 보지 않는데 무슨 에이즈냐며, 당장이라도 의사를 패 죽일 것처럼 난리부르스를 치고는 병원에서 나와버린다. 그는 '에이즈 따위 개나 줘버려!' 하는 태도로 다시 방탕한 삶을 이어가지만, 사실 그도 느끼고 있었다. 자신의 몸이 전 같지 않다는 걸.




그제야 론은 자신이 에이즈가 맞을 수도 있다는 것을 인지하고, 진지하게 에이즈에 대해 알아보기 시작하는데... 그가 찾은 자료에는 뜻밖에도 이렇게 쓰여있다. 콘돔을 사용하지 않은 이성 간의 성관계로도 에이즈가 감염될 수 있다고. 그 당시 에이즈에 대한 인식이 얼마나 형편없었는지를 간접적으로 느끼게 해주는 대목이다. 


다시 명확하게 짚어보건대, 에이즈(AIDS)는 병원체인 HIV(인간면역결핍 바이러스)에 감염돼 체내의 면역 기능이 저하되어 사망에까지 이르는 일종의 '전염병'이다. 그러니 동성 간의 성접촉으로만 발생하는 게 아니라 당연히 이성 간의 접촉으로도 전염이 가능하다. 


론은 이때부터 매우 학구적인 자세로 에이즈에 효과가 있다는 약들을 찾아 나서기 시작한다. 하지만 당시의 미국은 아직 에이즈 치료제가 임상개발 중인 단계로 마땅치 않았던 때다. 그나마도 나중에 유일한 치료제로 쓰인 AZT라는 약은 그 가격이 어마어마해 에이즈 환자들이 엄두도 못내던 상황이었다고. 하지만 론은 정말 절박하게 살고 싶었다. 그는 FDA의 승인이 없는 치료제는 주지 않는 미국의 의료제도에 환멸을 느끼며 직접 약을 찾아 나서기로 한다. 차를 타고 국경을 넘어 멕시코로...


사실 이때까지만 해도 그저 에이즈라는 병마와 싸우며 약을 찾으러 다니는 한 마초 남성의 이야기쯤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갑자기 론은 약을 구하러갔던 멕시코에서 약을 밀수하기 시작한다. 그리고는 들여온 약을 에이즈 환자들에게 팔기 시작한다. "뭐야, 결국 약장수가 된다는 이야기였어?"싶어 어리둥절했다. 그러면서 계속 영화를 보고 있었더니 그는 제법 이 일에 사업수완까지 있어 보인다. 예상을 벗어나는 흥미로운 전개였다. 일단 더 보기로 하자.




론은 병원에서 만난 '레이언'이라는 동성애자 친구와 함께 사업을 확장해나간다. 론은 밀수를 해오고, 사근사근한 레이언은 그 약을 살 사람들을 모집하고. 밀수 사업 주제에 무려 그럴듯한 이름도 있다. 이름하여 '달라스 바이어스 클럽'. 한 달에 400달러만 내면 에이즈 치료제를 환자에게 무제한으로 주는 방식으로, 일종의 멤버십 형태의 사업이다.(와우) 어떻게 자신이 아픈 와중에 저런 참신한 사업적 발상을 할 수 있는지 대단하게 느껴졌다.


물론 처음에 론의 목적은 돈을 벌기 위함이었을 거다. 아프니까 다른 데서 제대로 된 직장을 구하기도 힘들 거고, 어차피 나 쓸 치료제 구하러 가는 길에 좀 넉넉하게 들여와서 돈도 좀 벌어보자 생각했겠지. 하지만 세상 일이 종종 그렇듯, 원래의 목적은 아니었으나 그 과정 속에서 전혀 다른 뜻이나 동기들이 생기기도 한다. 론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에이즈 환자가 되기 전 자신이 그토록 혐오하던 동성애자인 레이언을 사업 파트너로 맞이하면서, 그리고 자신의 고객들로 수많은 에이즈 환자들을 접하면서, 서서히 내면이 변해간 것이다. 어쩌면 자신이 에이즈 환자가 되지 않았더라면 영원히 알지 못했을 감정들을, 이해심들을, 그는 알고 느끼게 된다. 이 점이 매우 뭉클했고, 이 영화를 관통하는 최고의 포인트가 아니었나 싶다.




하지만 론을 가장 많이 변화시켰고, 론에게 가장 큰 지지를 보냈던 존재인 동성애자이자 에이즈 환자 '레이언'은 슬프게도 론처럼 오래 살지 못했다. 두 사람 간에는 연인 간의 감정을 뛰어넘는 인류애랄까 하는 특별한 감정이 존재했는데.. 에이즈라는 병마 앞에서는 둘의 우정도 자유로울 수 없었다. 론은 많이 의지했던 레이언의 죽음 이후 더 큰 내면의 변화를 느낀다. 이제는 '돈을 벌 요량'이 아닌, 정말로 에이즈 환자를 돕기 위한 마음으로 달라스 바이어스 클럽을 운영하고 싶어 진 것. 그는 차를 팔아 에이즈 환자들에게 약을 주기도 하고, 살겠다고 약을 구하는 행위를 불법으로 규정하는 FDA와 정부를 상대로 법정싸움을 하기도 한다. 어쩌면 그에게 있어 에이즈 투병은, 삶의 소중함과 더불어 다른 세계의 사람들을 완전히 이해하고 사랑하게 되는 하나의 계기이지 않았을까. 


론은 에이즈 판명 이후, 애초에 선고받았던 시한부 30일을 한참 지나 무려 7년을 더 살았다. 그 7년은, 환자로서 분명 치열한 삶이었을 것이고, 동시에 에이즈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방향의 값진 삶이었을 것이다. 비록 그의 사업에 '불법'이라는 타이틀이 붙을지언정, 하루하루가 소중하고 간절한 에이즈 환자들에게 도움을 주었던 것만큼은 분명한 삶이기도 했다.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라면 어땠을까. 내가 죽을병에 걸려 한 달 시한부 선고를 받았더라면. 아마 나는 의사의 말이 전적으로 맞다고 여기고 그 한 달을 시무룩하게 보내다가 죽지 않았을까. 소심한 나의 성격상 그랬을 것 같다. 의사가 인정하지 않는 범위에도 나를 낫게 할 무언가가 있다고는 절대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우악스럽고 막무가내인 것처럼 보였던 론이 실은 참 자기 주관이 있던 사람이었구나. 그는 자신이 직접 알아보고 공부한 방법들을 토대로 열심히 치료제를 구했고, 실제로 에이즈 판명 이후 이례적으로 몇 년을 더 살았으니까. 노력하는 자의 결과란 이렇게나 위대한 것이다. 




실제 론 우드루프와 FDA


론은 FDA와의 법정싸움 끝에, 펩타이드 T라는 약물을 개인 치료 목적으로는 합법적으로 쓸 수 있다는 판결을 받았다. (정말 대단한 사람이다) 론이 불법 밀수하여 사용했던 여러 약물들은 미국 내에서 에이즈 치료제로 인정되지는 않았지만, 실제로 몸의 면역을 보호하는 차원에서는 기능이 있었다고 한다. 어쩌면 하루하루가 소중한 에이즈 환자들에게는 면역을 높여 생명을 연장하는 목적의 치료제도 절실했을지 모른다. 지금 당장 죽어간다는데, 어떤 약이든 먹어봐야하는 게 맞지 않겠는가.



배우들의 명 연기 그리고 명 연출


론을 연기한 매튜 맥커너히, 그리고 그의 곁에서 그를 지지하는 동성애자 역할을 맡은 자레드 레토의 연기는 정말 미쳤다. 에이즈 환자처럼 보이기 위해 거의 2-30kg를 감량한 외적인 모습도 너무도 인상적이었지만, 그 섬세한 연기력과 호흡도 정말 대단했으니. 저예산 영화로 제작되면서 촬영기간이 겨우 한 달 남짓이었다고 하는데, 그리 촉박하게 제작되었다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배우들의 연기와 연출이 탄탄하더라. 깊은 밀물처럼 가슴 깊이까지 촉촉이 적셔준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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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마다 삶은 의지와 상관없이 다른 길이와 다른 결로 나타난다. 누군가는 가뿐히 100세를 넘기기도 하지만 누군가는 질병에 걸려 젊은 나이에 유명을 달리하는 것처럼. 죽고 사는 것을 직접 결정할 수 있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세상에 태어나 살아가는 동안의 내 소명이 무엇인지는 스스로 생각하고 결정할 수 있는 게, 어쩌면 인생의 선물이 아닌가 싶다. 어떻게 이 세상에 선한 영향력을 끼치며 내게 주어진 귀한 삶을 다할지, 이 영화를 보며, 론 우드루프의 삶을 보며, 생각해보게 된다. 





해당 포스트는 인스타그램 매거진 <주간우두미>의 18호 포스트의 일부입니다. <주간우두미>는 인스타그램 @woodumi 계정 또는 해시태그 #주간우두미를 통해 보실 수 있습니다. 



2020 매우 주관적인 평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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