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따수운 작가 우듬지 Aug 31. 2020

영화 <유전 Hereditary> 리뷰

"욕 나오게 무섭다", 내 인생 넘버원 오컬트 무비


유전(Hereditary, 2017) 
제작 : 미국, 미스터리·공포│감독 : 아리 에스터
출연 : 토니 콜렛(애니), 밀리 샤피로(찰리), 알렉스 울프(피터)        
등급 : 15세 관람가│러닝타임 : 127분

 

무서운 영화에는 참 여러 결이 있다. 전기톱을 든 살인마가 나오는 것도 무서운 영화. 밤새 귀신에게 쫓기는 것도 무서운 영화. 인간의 몸에 험악한 악령이 깃들고 지배당하는 것도 무서운 영화. 영화 <유전>은 그중 악령, 영매와 같은 소재를 다룬 오컬트 영화로 내가 제일 좋아하는 류의 공포영화에 속했다. (개인적으로 피칠갑하거나 대놓고 귀신이 나오는 영화는 극혐)


나는 무신론자이기 때문에 당연히 악령이나 엑소시즘 같은 것도 믿지 않는다. 하지만 이 영역에 대한 궁금증은 '심령을 믿고 믿지 않고' 와는 별개로, 예부터 나의 여러 관심사들 중 하나였다. 관심의 시작은 영화 애나벨과 컨저링으로 유명한 '워렌 부부'에서였다. 단순히 픽션에만 그치는 게 아니라 실제에 기반한 이야기 들이라서였을까. 그 이후 그런 종류의 이야기들에 쉽게 매료되곤 됐고, 어쩌다 채널을 돌리다 보면 나오는 퇴마나 심령술에 대한 탐사보도물도 참 재밌게 보곤 했다. 물론 아직도 믿지는 않는다. 이게 무슨 심보인지 모르겠지만 여하튼 내 오랜 관심사인 것은 분명하단 말씀!


이 영화 <유전>이 오컬트 영화인 줄 알았더라면, 공포영화를 잘 못 보는 남편에게 "이거 무서운 거 아니야. 같이 보자"라고 하진 않았을 것이다. 제목이 다소 평범한 단어 '유전'이었기에 나는 무슨 유전자 질환에 관한 영화인가 해서 남편과 함께 봤다. 그런데 이 영화... (남편에게 미안하게도) 정말 미친 듯이 무서웠다.







영화는 신경이 과민한 '애니'의 가족에게 벌어지는 이야기다. 애니는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힘든 나날을 이어나가고 있다. 그 때문인진 몰라도 영화 속 애니는 자식들에게 매우 불친절하다. 미안하지만 엄마로서 자질이 좀 딸린다고 생각될 정도로. 아마도 애니는 자기 몸 하나 겨누기도 힘든 심리상태 같았다.


어느 날 아들이 친구네서 하는 파티에 간다고 하자, 애니는 여동생 '찰리'도 같이 데려가라고 한다. 가기 싫어하는 찰리와, 육아로부터 벗어나고 싶어 하는 엄마 애니. 결국 남매는 신경질적인 엄마를 이기지 못해 같이 파티에 가게 된다. 아는 사람 하나 없는 파티에서 여동생 찰리는 혼자 겉돌고, 오빠는 친구들이랑 놀기 바쁘다. 그러다 찰리는 땅콩이 들어간 케이크를 먹게 되고, 땅콩 알러지가 있던 찰리의 목(기도)이 부풀어 오르기 시작한다. 


뒤늦게 이를 알아챈 오빠 '피터'는 여동생을 차에 태워 병원으로 향한다. 괴로워하는 여동생의 모습에 마음이 급해진 피터는 험하게 운전을 하고, 창밖으로 목을 내밀며 기침을 하던 여동생 찰리는 순간 전봇대에 머리가 부딪혀 목이 날아간다. 음. 정말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고 이 급한 전개에 나도 놀람을 감추지 못했다. 



애니의 딸 '찰리'와 아들 '피터'


순식간에 여동생을 죽이고 만 피터. 피터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목이 날아간 여동생의 시체를 그대로 차에 방치한 채 집에 들어간다. (이해가 안되지만) 남매의 귀가를 확인하지 않고 이미 잠자리에 들었던 엄마 애니는 다음날이 되어서야 딸 찰리의 목 없는 시체를 발견하고는 자지러진다. 그리고 이 모든 걸 그저 지켜볼 수밖에 없는 피터. 이 영화의 매력은 주인공들이 겪는 불안감과 초조함, 그로 인해 비롯되는 불행을 매우 섬세하고 리얼하게 그려냄에 있다. 


딸 찰리에게도 생전 그리 친절하지는 않았던 엄마 애니는, 나름의 모성애가 있기는 했던 건지 찰리의 죽음으로 엄청나게 괴로워한다. 그리고 그녀가 엄마 자질이 부족함을 더 절실히 느끼게 된 대목은, 찰리의 사고 이후 그녀가 아들 피터를 대하는 방식에서다. 사실 아들 피터도 아직 어리고, 여동생을 실수로 죽이고 말았다는 죄책감에 살아갈 일종의 피해자였다. 하지만 애니는 피터를 원망한다. 상처 받고 괴로워하는 피터에게 온통 날이 서있다. 엄마 애니는 오로지 자신이 받은 고통과 충격으로 인해 남을 돌보지 못하는 상태인 것이다.



애니에게 다가온 낯선 이웃, 조앤.


그런 애니의 곁에 한 여자가 다가온다. 자신도 아들과 손자를 사고로 잃었노라며, 애니의 상처를 온정으로 파고드는 한 푸근한 여인 '조앤'. 마음을 기댈 곳이 필요했던 애니는 자석에 이끌리듯 그녀를 찾게 되고, 그녀가 얼마 전 영매술을 통해 죽은 손자의 영혼과 접촉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처음엔 조앤의 말을 헛소리라 치부했던 애니는, 심란한 마음을 어쩌지 못하고 조앤을 다시 찾아간다. 그리고 그곳에서 조앤과 함께한 영매술을 통해 정말로 조앤의 손자가 나타나는 것을 경험하게 된다. 


그리고. 여기까지는 다소 지루했던 영화가 이때부터 빛을 발하기 시작한다. 애니는 한밤중에 가족을 깨워 죽은 딸 찰리의 령을 부르기 위해 조앤이 가르쳐준 대로 영매술을 시도한다. 가족들은 미쳤다는 시선으로 애니를 바라보지만 애니는 결국 찰리를 불러내는 데 성공하게 된다. 


하지만 낯선 이웃을 경계해야 된다는 옛말이 있다. 그 교훈은 이 영화에서도 성립된다. 조앤은 대체 왜, 갑자기 애니에게 다가와 쓸 데 없이 아들과 손자가 죽었음을 커밍아웃하고, 혼자만 하면 될 영매술을 왜 애니에게 가르쳤을까. 과도하게 친절한 조앤의 첫 등장부터 어쩌면 예견되어있었던 일이지만, 아니나 다를까 조앤은 애니 가족에게 의도적으로 접근한 사람이었다. 


살아생전 애니의 엄마 '엘렌'은 알 수 없는 종교에 미쳐있었다. 그런데 알고 보니 그때도 의문의 여인 조앤은 엘렌의 곁에 있었다. 더불어 애니의 오빠는 "엄마가 내 몸에 다른 영혼을 집어넣으려고 한다"며 우울증에 시달리다 자살한 전력이 있었다. 그 불행한 가정사 속에서 큰 애니는, 엄마 엘렌이 끌어들인 그 종교가 애니의 자식들마저 잠식하고 있었음을 알게 된다. 그리고 이 구리구리한 종교의 끝에는 '가족 중 가장 어린 남자의 육신'이라는 목표가 존재하며, 그 목표물이 자신의 아들 피터라는 것 또한 애니는 알아챈다. 




충격에 휩싸인 애니는 남편에게 이 사실을 털어놓지만, 이미 남편의 눈에 애니는 찰리의 죽음 이후 헤까닥 미쳐버린 여자에 불과했다. 애니는 자신의 엄마로부터 비롯된 이 저주를 자신의 손으로 끝내고 그동안 사랑해주지 못했던 가족들만은 지키고자 하지만, 결국 애니의 몸도 곧 악령이 집어삼키고 만다. 그리고 이 모든 질긴 저주의 끝에 남은, 아들 피터. 온 집안이 박살난 끝에 피터는 한 종교 세력이 원하는 대로 악령 '파이몬'의 남성 숙주가 된다. 할머니 엘렌 때부터 철저하게 기획되어온 그 저주의 희생물로써 말이다.




그제야 영화의 제목이 '유전'인 이유를 이해할 수 있었다. 악령도, 종교도, 유전되고 마는 거란 걸. 할머니 엘렌은 애니의 오빠를 숙주로 삼으려 했지만, 애니의 오빠가 자살함으로써 그 목표가 애니의 아들 피터로 바뀌었고, 결국에 이 종교는 피터를 숙주로 삼은 끝에야 악령의 부활에 성공했다는 이야기. 대를 이어 유전이 되고 가족은 이를 선택할 수 없이 희생양이 되고 마는 이 이야기. 그래서 제목이 유전이었던 거구나.


다시 말하지만 나는 악령 같은 것은 믿지 않는다. 하지만 꽤 오래된 나의 관심사이자, 컨저링 이후 내 오컬트 영화 컬렉션에 한 획을 그은 대단한 영화로 이 영화를 꼽고 싶다. 이 영화를 이끌어 간 주인공들의 소름 끼치는 연기력과, 완급조절이 섬세한 연출력이 어찌나 대단한 지, 보는 내내 오금이 저렸더랬다. 무엇보다 영화가 지저분하지 않고 '깔끔하게' 무서웠다. 피로 물든 귀신이 나와 화면을 어지럽히는 건, 아무래도 내 스타일이 아니다. 단 하나의 기괴한 귀신도 나오지 않지만 그 공포스러운 연출감 탓에 모든 씬이 무섭게 느껴지는 이 영화야말로 진정한 공포물이 아닐까. 


2013년. 내 인생 최고의 오컬트 영화이자 공포영화는 <컨저링>이었다.

올해. 그 타이틀을 영화 <유전>이 탈환했다.







해당 포스트는 인스타그램 매거진 <주간우두미>의 20호 포스트의 일부입니다. <주간우두미>는 인스타그램 @woodumi 계정 또는 해시태그 #주간우두미를 통해 보실 수 있습니다. 


2020 매우 주관적인 평론

ⓒ글쓰는우두미 All rights reserved.

인스타그램 @woodumi





매거진의 이전글 영화 <달라스 바이어스 클럽> 리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