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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따수운 작가 우듬지 Sep 12. 2020

영화 <더 와이프, 2017> 리뷰

자신이 아닌 '아내'로 살기로 한 여자

수많은 포스터가 있었지만 이 영화를 가장 잘 설명하는 포스터인 듯.


더 와이프(THE WIFE, 2017)     
제작 : 영국·스웨덴,드라마│감독 : 비욘 룬게
출연 : 글렌 클로즈(조안) 조나단 프라이스(조셉)
등급 : 15세 관람가│러닝타임 : 100분



21세기, 내가 사는 시대에는 여류작가가 참 많고(여류작가라는 표현도 여성에 대한 편견을 포함하지만) 나는 내가 작가를 꿈꾸고 이루는 데에 성차별을 크게 느끼지 못하고 살고 있다. 여자라고 해서 글을 못 쓰거나, 제약을 받거나, 남성보다 성공하지 못할 거라는 열패감을 느끼거나 하는 일은 아마 살면서 한 번도 느끼지 못한 것 같다.



그러나 영화 속 주인공 '조안'이 살아온 세상은 그렇지 못했던 것 같다. 이제 머리가 희끗희끗한 그녀는 태어날 손주를 앞두고 있는 나이. 그녀는 한 때 글에 대한 열망으로 넘치던 여성이었으나, 젊은 시절 만났던 한 여성 기성작가의 "글 쓰지 마요. 여성의 대담한 문체를 대중들은 좋아하지 않거든요"라는 말에 여성으로서 작가가 되는 삶을 포기한 채 살아왔다. 하지만 조안은 작가로서 재능이 탁월한 남자 '조셉'을 사랑했고, 조셉은 다행히도 여러 작품을 내며 작가로서 승승장구했다. 사랑하는 이의 재능 발휘를 평생 지켜보며 조안은 글 쓰고 싶은 욕망을 대리 만족했다. 그렇게 한 재능 있는 작가를 사랑하고, 아내로서 내조하면서 보낸 평생의 세월. 그에 대한 보상 일지, 남편 조셉은 인생 늘그막에 노벨문학상 후보에 오르고, 두 사람은 상을 받으러 스톡홀름(노벨상의 주최국)으로 가게 된다. 


그리고 이 다정해 보이던 부부의 이야기는, 눈이 펑펑 내리는 스톡홀름에서 포장이 벗겨진다. 처음엔 조안이 남편 조셉을 너무나 사랑하고 공경해마지않는 줄 알았다. 자신의 꿈은 일찌감치 접고 남편의 재능에 평생을 투자한 문학계의 힐러리인 줄만 알았다. 하지만 노벨상 후보가 되어 사람들의 추앙을 받는 남편을 바라보는 조안의 눈은 어쩐지 점점 쓸쓸하게 느껴진다. 허망하게 느껴진다. 조안을 향한 사람들의 눈길이, 누구누구의 와이프, 일정 직업 없이 그저 유명 작가를 내조한 헌신적인 여성이어서 그랬을까. 주체적인 여성이고 싶었던 그녀에게 그 타이틀이 자존심이 상했던 걸까. 하지만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영화가 두 부부의 젊은 시절을 비추니, 왜 그리 조안의 눈이 쓸쓸했는지 알 수 있었다. 



젊은시절 남자배우 멋있어서 혼났다..


대학교수와 제자로 만난 조셉과 조안. 분명 권위가 훨씬 있는 쪽은 남편 조셉이었지만, 비극적이게도 문학에 더 재능을 보이는 건 제자 조안이었다. 그녀는 담대한 문체에, 소재를 캐치해 글로 재밌게 풀어내는 소질이 탁월했다. 하지만 1960년대 문학계 분위기는 여성작가에 대해 그리 관대하지 않았던 모양이다. 재능은 있었지만 차별을 뚫고 성공할 만큼 신념이 확고하지는 않았던 조안은, 자신의 재능을 남편인 조셉에게 밀어주기로 결심한다. 나로선 감히 이해할 수도 없고 너무도 혼란스럽기만 한 감정이었지만, 그녀는 자신이 이룰 수 없을 거라 판단한 재능을 남편에게 주는 것이 아깝지 않았던 모양이다. 어쩌면 그만큼 조셉을 미치게 사랑했던 것 같기도 하고. 



조셉을 너무 사랑한 나머지 자신의 재능을 그에게 주는 조안.


조안의 특출 난 재능은, 엉망진창이었던 남편의 글들을 고치는 데에 쓰이기 시작한다. 그러나 그게 곧 원흉의 시작이었다. 처음에는 단지 남편의 글을 교정 교열하는 정도의 느낌이었고, 뼈대는 남편 조셉이 만들었으니 책 한 권을 쓰는 데에 남편의 지분이 더 컸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재능이 없는 남편을 대신해 아내 조안이 글에 개입하는 일이 늘어난다. 그리고 이를 아는 조셉 또한 줄거리라던지 캐릭터를 창조하는 데에 조안의 의견을 더 따르게 되고, 나중에 이르러서는 아예 거의 조안이 글을 쓰고 남편은 그 시간에 육아를 하는 지경에 이른다. (누가 작가인 게냐) 하지만 이미 글로 유명세를 탄 건 남편이었고, 한 번 설정된 부부의 합의를 뒤집는 건 어려운 일. 부부, 아니 조안이 쓰는 모든 작품은 남편 조셉의 이름으로 출간된다. 당연히 세상이 기억하는 글의 주인공은 조셉 조셉 조셉. 노벨상 후보에 오르는 것도 결국 조셉이다. 


-


부부의 일이란, 부부의 비밀이란. 과연 어디까지 견고하고 또 어디까지 부실할 수 있을까. 영화를 보는 동안 한 꺼풀씩 드러나는 부부의 비밀을 보며 마음이 아프기도, 화가 치밀기도 했다. 모두 남편을 너무 사랑해서 시작한 일이었는데, 결과적으로 조안은 행복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누군가를 사랑하기 때문에 포기해야 했고 희생해야 했는데 그 공로를 인정해주는 이는 세상에 누구도 없으며, 부인의 희생을 업어 성공한 남편만이 작가로서 추앙을 받는다. 하지만 제 아무리 그게 나와 평생을 함께한 남편이라 해도, 자신에게 돌아오는 타이틀이 그저 '유명 작가를 내조한 아내'라는 것을 조안은 견디지 못한다. (나라도 그럴 듯)


자신의 공로로 남편이 노벨상을 받고 거짓소감까지 하고나니 열받는 조안.


결국 남편 조셉이 노벨상 수상을 하던 날, 조안은 폭발해버린다. 제발 수상소감에 내 이야기는 하지 말아 달라고 부탁했던 아내 조안의 말을, 조셉이 깡그리 무시한 채 수상소감에 아내 이야기를 넣은 것이다. 그것도 최수종 뺨치는 절절한 멘트로다가. 연단 밑의 조안을 바라보며, 아내가 헌신한 덕에 내가 글을 쓸 수 있었노라고, 그녀는 내 뮤즈라는 식의 이야기를 하니... 사연을 모르는 사람들은 그저 이 부부가 부러워 탄식을 금치 못한다. 펜을 든 건 조안이고 오히려 뮤즈는 조셉이었는데, 되려 거꾸로 포장되어야 하는 현실에 조안은 부글부글 끓는다. 호텔방에 돌아와 "방금 당신 아내가 노벨상을 받았어!"라고 울부짖는 그녀의 모습에서 평생의 한이 느껴졌다.


아.. 이렇게 조안이 폭발하고, 세상에 폭로하면서, 사실은 이 문학계 거장이 여성이었으며, 평생을 무능했던 조셉을 대신해 아내가 대필했던 것이 세상에 까발려지는구나 싶었지만. 공교롭게도 이 날의 부부싸움으로 심장에 무리가 온 조셉이 그만 유명을 달리하고 만다. 예상치 못한 전개에 나는 또 놀랐지만 더 놀라운 건 그 이후 조안의 태도다. 


평생을 한으로 살아왔을 조안은, 원망했지만 또 그만큼 사랑해마지않았던 남편 조셉의 죽음을 보며 끝끝내 그 비밀을 덮기로 결심한 것이다. 부부의 비밀을 캐서 자극적인 전기를 쓰겠다고 쫓아다니던 한 전기작가에게 조안은 이렇게 말한다. "당신의 추측(사실 조셉의 모든 작품은 조안이 쓴 것이라는)은 다 거짓이에요. 내 남편의 재능을 모함했다간 법정에서 볼 줄 알아요"라고. 끝까지 그녀의 선택은 결국 조셉의 아내, 영화 제목처럼 'THE WIFE' 였던 것이다. 



부부의 일은 부부만 안다는 말이 있다. 그만큼 함부로 깊이를 잴 수도 따질 수도 없는 것이 부부의 일. 이루지 못한 자신의 꿈을 남편의 성공으로 대리 만족해야 했던 조안의 그 울분은, 과연 조셉을 사랑하는 마음보단 아래에 있었던 걸까. 여러 흔들림과 인고 끝에 결국은 부부의 이미지, 가족, 남편의 명예를 지키는 쪽을 택하는 조안의 모습을 보며 부부가 어떤 관계인지를 다시 한번 여실히 느낄 수 있었다. 조셉이 허락하고 조안이 추진한 두 부부의 대필 사기극으로, 두 부부는 냉장고를 사고, 살림을 넓히고, 가족을 이루어왔다. 그 긴 세월 동안의 부부의 일을, 조안은 자신의 억울함 하나 때문에 뒤집고 싶지 않았던 거겠지. 


여성작가가 넘쳐나고 그녀들이 보란 듯이 성공하는 세상에 살고 있는 나를 반추해본다. 나는 축복 속에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마음만 먹으면, 노력만 열심히 하면, 내 이름으로 언제든 책을 출간할 수 있는 시대를 나는 걷고 있으니까. 한 사람의 꿈이 실현되는 데에 시대적인 상황도 뒷받침이 되어야 한다는 사실은 참 슬프다. 조안이 살던 시대, 아니 더 이전의 시대에는, 얼마나 더 많은 재능 있는 여성들이 그저 '여성'이라는 이유로 꿈을 포기해야 했을까. 시대가 조금만 더 여성에게 열려있었더라면, 오늘날 '젤다 피츠제럴드'도 '스콧 피츠제럴드의 아내'가 아닌 그녀 자신으로 인정받을 수 있었을지 모른다.



내 이름으로 글을 쓰고 성공할 수 있는 세상에 살고 있음에 감사해야겠다. 더불어 글 쓰는 일에는 관심이 없으니 내 재능을 원망하거나 질투할 일도 없이 오롯이 나를 응원할 수 있는 내 남편에게도 감사해야겠다. 훗날 내가 문학상을 받아 연단에 서는 날이 온다면, 그도, 나도, 서로를 순도 100퍼센트 사랑의 눈길로 바라볼 수 있길 바라며.








해당 포스트는 인스타그램 매거진 <주간우두미>의 22호 포스트의 일부입니다. <주간우두미>는 인스타그램 @woodumi 계정 또는 해시태그 #주간우두미를 통해 보실 수 있습니다. 


2020 매우 주관적인 평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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