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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따수운 작가 우듬지 Oct 03. 2020

영화 <그린북> 리뷰

그로부터 반세기가 지난 지금도 흑인 차별이 존재한다네.

영화 <그린북> 포스터.


내가 동경하는 나라 미국에는 다른 나라에는 없는 문화와 정서가 여럿 있다. 내가 너무너무 사랑하는 할리우드 영화 제작 스튜디오와 아카데미 시상식, 다인종 국가가 살아가며 만들어내는 다양한 식습관과 패션, 아메리칸드림으로 일컬어지는 뉴욕 거리 곳곳의 세련된 풍경 등 나는 참 여러모로 미국이란 나라를 좋아하고 사랑해왔다. 한 번도 발 디뎌 본 적 없는 나라이면서도. 


하지만 이 나라의 문화 중 마음이 아픈 구석도 몇 있다. 총기 문제와 더불어 최악이라고 생각하는 그 문화, 바로 인종차별이다. 습관적으로 나는 '미국산' 영화를 자주 관람하며 미국의 향기를 느끼는 편인데, 선택한 영화에는 낮지 않은 비율로 인종차별 문제가 담겨있곤 했다. 작든 크든 말이다. 이번에 본 영화 <그린북>은 인종차별, 그중에서도 거의 미국의 만성질환 같은 흑인 차별을 소재로 한 영화였다. 



그린북 (Green Book,2018)
제작 : 미국,드라마 │ 감독 : 피터 패럴리
출연 : 비고 모텐슨(토니), 마허샬라 알리 (셜리)
등급 : 12세 관람가 │ 러닝타임 : 130분



미국 흑인노예제의 폐지 이후에도, 그 잔재는 이어졌다.


현대극인 줄 알았으나 영화의 시대적 배경은 흑인 차별이 아직 법적으로도 가능하던 1960년대였다. 유색인종 전용 화장실이 존재하고, 흑인은 밤늦게 돌아다닐 수 없으며, 흑인이 사용할 수 있는 시설들도 따로 존재하던 깝깝이 시절. 그런 시대적 배경의 영화 속 주인공 두 명은, 나이트클럽에서 지배인 노릇을 하며 살아가는 백인 남성 토니(비고 모텐슨)와 유명한 천재 피아니스트로 살아가는 흑인 남성 셜리(마허샬라 알리)다. 시대적으로 좋은 대우나 직업을 가지기 힘들었던 흑인들 사이에서 성공한 셜리와, 상대적으로 더 좋은 입지를 갖출 수 있는 백인이었음에도 별 볼 일 업었던 남자 토니의 삶. 뭔가 뒤바뀐 듯 신선한 설정처럼 느껴졌으나 이 이야기는 무려 실화에 입각한 이야기라고. 



나이트클럽 생활을 하며 입담도 걸쭉하고 말보단 주먹이 익숙한 토니는, 일하던 클럽이 수리 문제로 영업을 쉬게 되자 다른 일거리를 찾게 된다. 우연히 소개로 찾아간 곳은 셜리 박사의 사무실. 토니가 해야 할 일은 이 성공한 흑인 피아니스트 셜리 박사의 운전기사 일이었다. 어쩐다. 토니는 흑인이 입을 댔던 컵이 찝찝해서 쓰레기통에 버려버리는 사림인데. 그러나 돈 앞에 장사는 없다 했던가. 토니는 돈이 필요했고, 자신이 조금은 경멸하던 흑인이지만 꽤 좋은 보수를 보장하는 일이었기에 운전기사 일을 이내 수락한다. 대신 셜리 박사가 원하는 대로 이것저것 '수발'까지는 들지 못할 것을 선전포고 하고, 정말 '운전'만 해주는 조건으로다가.


셜리 박사는 흑인으로서는 그 시대에 이례적으로 성공한 사람이었다. 피아노 하나로 미국을 정평해 흑인 차별 문화를 제치고 백인들에게도 환영받을 정도의 유명한 인사였으니. 비교적 인종차별이 덜했던 북부에서만 활동한다면 더 우아한 대접을 받으며 살아갈 수 있었겠지만, 어쩐지 그는 자꾸 남부 투어를 하고 싶어 한다. 아직도 흑인은 노예라는 관습이 지배적인 남부에, 또 하필이면 운전수로 고용된 백인 남자 토니를 이끌고.



그렇게 남부로 떠난 그 두 남자의 여정은 당연히 순탄치만은 않았다. 일단 운전수 토니가 셜리를 마음속까지는 대우하지 않았던 것과 더불어, 겉으로는 환대하면서도 마음속으로는 끝끝내 셜리를 흑인으로 차별하던 청중들을 계속해서 접하게 된다. 분명히 초청받아 갔는데 셜리는 백인과 함께 화장실을 쓸 수 없어 1시간 거리의 숙소로 돌아가 화장실을 이용해야 했고, 흑인이니 당연히 프라이드치킨을 좋아할 거라 생각하고 만찬 자리에 프라이드치킨을 올리는 무례를 당하기도 한다. (프라이드치킨은, 과거 백인들이 먹다 남긴 부위의 닭을 흑인 노예들이 오븐이 없어 기름에 튀겨 먹었던 것에서 유래한다.) 그뿐만이 아니다. 대접받아야 할 귀빈은 셜리였음에도 되려 고용인인 토니가 더 대우를 받기도 하는가 하면, 남부에서는 유색인과 백인이 함께 숙박시설을 이용할 수 없어 셜리는 유색인이 숙박이 가능한 허름한 곳들을 찾아 묵어야 했다. 남부에는 실제로 유색인들이 이용 가능한 숙박업소를 따로 정리해놓은 안내책자 '그린북'이라는 것이 존재했을 정도이니, 남부가 얼마나 흑인 차별이 심한 곳인지 가늠할 수 있다.


그런데. 단지 돈만 바라보고 셜리 박사의 투어에 합류했던 토니가 이 지난한 여정을 통해 조금씩 바뀌기 시작한다. 좀 뻔한 클리셰 같긴 했지만 곁에서 셜리 박사를 향한 노골적인 차별을 바라보면서부터다. 분명 토니 자신도 흑인을 소심하게 차별하던 부류의 인간이었는데, 막상 우아한 셜리와 함께 다니면서 그가 인종차별을 묵묵히 견뎌내며 그것을 바꾸려 오히려 더 맞서는 모습을 보게 되자 마음이 일렁이기 시작한 것이다. 틈만 나면 욱하고 주먹부터 나가는 토니와는 달리, 셜리 박사는 차별 문제로 유치장에 갇히는 순간에서도 지조를 잃지 않고 무력보단 대화를 행사한다. 자신을 이유 없이 차별하는 대상들을 향해 분노는커녕 보란 듯이 몸에 밴 교양만 드러낸다. 그리고 그 방법은 늘 먹힌다. 안될 땐 주먹을 쓰면 다 해결된다고 믿었던 토니 입장에서는 놀랄 수밖에. 토니는 셜리 박사에게서 그 지성미와 차분함을 발견하면서 차츰 그를 동경하게 된다. 



그리하여 어느새 두 사람은 투어 말미 즈음에는 놀라울 정도로 가까워지게 된다. 아니 아주 존경이 꽃핀다. 토니는 셜리를 흑인이 아닌 자신이 모시는 피아니스트로 보게 되고, 셜리 역시 토니를 그저 우악스럽기만 한 백인 운전수가 아닌 가슴속에 따뜻함을 지닌 개별적인 존재로 보게 된 것. 영화니까 당연히 이렇게 될 줄 알았지만, 막상 이게 실화라고 하니 배가되는 그 묵직한 감동은 어쩔 수가 없다. 급기야 투어가 끝난 후의 성탄절, 토니는 셜리 박사를 자신의 가정집으로 초대해 함께 저녁을 먹는다. 과거 자신과 비슷하게 흑인을 차별하던 가족들에게, 이제는 자신이 존경하게 된 셜리 박사를 면면히 소개하면서. 끝까지 감동적이게도, 실제 두 사람은 늙어 죽을 때까지 그 우정을 이어나갔다고 전해진다. 


-


영화적 배경인 1960년대로부터 거의 반세기가 지난 지금, 아직도 미국에서는 뿌리 뽑히지 않은 인종차별 문제가 존재한다. 문제가 뭘까. 시간이 지나도 여전히 나와 다른 사람을 차별함으로써 내 존재의 특별함을 느끼려는 사람들이 왜 존재할까. 세상 모든 다양한 민족들이, 서로를 하나의 덩어리가 아니라 나와 다르지 않은 또 하나의 개별적 존재라고 여기기까지는 얼마나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할까. 반 세기 더? 아님 한 세기? 어쩌면 'Black lives matter'라는 해시태그가 종식되지 않는 한 아마도 내가 사랑하는 땅 미국에서는 인종차별 문제가 꽤 오랜 숙제로 남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비록 느리더라도, 토니가 차츰 변화해 결국엔 셜리 박사와 찐친구가 됐던 것처럼 언젠가는 더 이상 서로가 서로를 차별하지 않는 세상이 올 거라고 나는 믿는다. 내가 그토록 동경하는 땅 미국에 언젠가 발을 딛게 됐을 때에는, 더 이상 백인 경찰이 흑인을 무차별하게 사살하는 일이 없기를 바라며.


#Black lives matter






(+) 실제 토니와 셜리박사.


(+) 실제 유색인종 전용 숙소를 안내하던 책자, 그린북.






해당 포스트는 인스타그램 매거진 <주간우두미>의 25호 포스트의 일부입니다. <주간우두미>는 인스타그램 @woodumi 계정 또는 해시태그 #주간우두미를 통해 보실 수 있습니다. 


2020 매우 주관적인 평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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