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
<가장 따뜻한 색 블루>는 사랑이야기이다. 주인공 은 남녀 한 쌍일까? 아니다. 여자와 여자. 그 둘의 이야기이다. 하지만 단지 레즈비언을 다룬 영화라고 할 수는 없다. 영화를 보고나면 알겠지만, 그저 사람이사람을 사랑한다는 느낌만이 남기 때문이다. 레즈비언이 아니어도 이 영화에 공감할 수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영화는 화장기 없는 여고생 아델의 모습으로부터 출발한다. 아직 사랑의 경험이 없는, 친구들과 학교,가족이 삶의 대부분인 순수한 여고생 아델(아델 엑사르코풀로스).
아델은 교내에서 가장 잘생겼다는 남학생에게 데쉬를 받고 사귀게 된다. 하지만 사랑이 맞는지 싱숭생숭하기만 할 뿐 별다른 애정은 생기지않는다. 심지어 자신을 너무 좋아하는 남학생에게 점점 부담을 느끼며 미안함에 사로잡히는 아델이다.
그러던 어느날, 우연히 신호등 앞에서 파란머리를 한 여자와 눈이 마주치게 되는데 그 느낌이 너무도 강렬하다.
이후, 한 바(bar)에서 다시 마주치게 된 파란머리. 대화를 조금 나누게되지만 그녀가 레즈비언임을 안 아델은 별다른 교류없이 그녀와 헤어진다.
하지만 학교 앞으로 아델을 찾아온 파란머리 엠마(레아세이두). 둘은 지난밤의 바(bar)에서와는 달리,햇살이 쏟아지는 눈부신 느티나무 밑에서 제법 긴 이야기를 나눈다. 그리고 엠마가 다녀간 아델의 마음에는 전에는 느껴본 적 없던 커다란 호감이 꿈틀대기 시작한다.
둘은 만남을 이어가면서 사이가 깊어진다. 아델은 미술과 철학에 조예가 깊은 미대생 엠마에게 겉잡을 수 없이 빠져들고, 엠마 역시 아름다운 아델을 자신의 캔버스에 담아내며 깊은 사랑에 빠진다.
그리고 둘의 감정은 육체적관계로 더욱 깊어지고 자연스레 연인이 된다. 둘의 아름답고 긴 정사씬은 딱히 레즈비언의 성관계라는 위화감이 들지 않았다.설렘과 환희로 최고조에 치달은 연인간의 사랑만이 느껴졌다.
사랑은 어느 연인에게서나 차별없이 늘 같은 모습을 띈다. 타오르고, 갈망하고, 서운해하고, 질투한다. 두 사람의 사랑이 저물어가는 모습 또한 남녀의 그것과 다르지 않았다.
처음 사랑이라는 것을 맛 본 아델에게 엠마의 존재는 무척이나 커다랗고 각별하다. 그래서인지 자신보다 올곧은 엠마에게 많이 의지하며 삶의 대부분이 엠마, 곧 사랑이다. 반면 미래에 대한 포부가 뚜렷한 엠마는 자신의 일에 큰 애착을 가지며 시간이 지날수록 아델과의 사랑보다는 일에 더 치중하는 모습을 보인다.
아델도 성인이 되어 유치원교사로 일을 하기는 하지만, 의지하는 정도가 자신과는 다른 엠마와의 관계에서 점점 소외감을 느낀다. 엠마와의 관계가 예전같지 않음을 느끼는 아델은 채워지지않는 사랑에 홀로 힘들어하고, 결국 실수로 남자동료와 잠자리를 가지고만다.
그러나 이 사실을 알게된 엠마는 불같이 화를 내고, 엠마의 사랑을 갈망하다 벌린 한 순간의 실수는 헤어짐의 사유가 되어 아델에게 돌아오고만다. 그대로 둘은 되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고, 아델은 용서받지 못한 채 같이 살던 집에서 쫓겨나게된다.
예쁜얼굴로 눈물 콧물 구분할 것 없이 쏟아내며 길을 걷는 아델의 모습에, 보는 내 마음마저 찢어져내리는 것 같았다. 이별의 모습이 너무도 리얼해 그 장면을 몇번이고 되돌려보았다. 처절한 이별이었다. 진심으로 사랑했던 만큼, 도무지 믿기지가 않는 그런 이별. 세상이 무너지는 그 익숙한 느낌…
헤어진 후 혼자가 된 아델은 일상을 유지해나가지만 틈틈이 흘러나오는 눈물을 주체하지 못한다. 엠마의 전시회 소식을 듣고 찾아가지만, 엠마의 화폭에 담긴 또다른 뮤즈(엠마의 현재 애인)를 보게될 뿐이다. 다 잊은 것처럼 카페로 엠마를 불러내 만나보아도 사랑의 불씨는 이미 완전히 꺼졌다는 것을 재확인하게 될 뿐이다.
이토록, 사랑이 끝난 후 인정해야만 하는 것들은 너무도 비정하다. 너무도 당연했던 것들이 더이상 당연하지 않다는 것. 내 것이었던 것들이 더이상 내 것이 아니라는 것. 더이상 나를 만날 때의 파란색머리가 아닌 금발의 엠마를 탓할 수 없다는 것…
<가장 따뜻한 색 블루>는 두 여성을 통해 사랑의 감정 그 모든 것을 보여준다. 그리고 그 감정은 남녀간의 사랑이든, 동성애이든, 다르지않음을 느끼게 해준다. 결국, 모든 사랑의 근본은 사람이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 아닐까. 설렘과 행복과 고통과 그리움을 안겨주는 데에는 두 사람의 뜨거운 심장만이 작용할 뿐이다.
아델은 엠마가 남자가 아닌 여자라서 덜 슬퍼하거나 더 슬퍼하지도 않는다. 우리 모두가 아는 그 뜨겁고 무거운 이별과 사무치는 그리움을 똑같이 겪는다.
엠마의 머리색을 닮은 파란 바다 위에 누워 슬픔으로 꽉 찬 마음을 억누르던 아델의 모습은 너무도 인상적이었다. 언젠가 연인과 헤어졌던 우리의 모습과 다르지않기에.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 영화가 아델과 엠마 두 여성의 몸을 빌려 보여준 것은, 그 원초적이고 뜨거운 감정에 대한 헌사였다.
더불어 영화는, 우리 누구나 경험한 그 묵직한 사랑은 비단 남녀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며, 두 여성의 특수한 사랑이야기는 결국 우리들 모두가 경험한 사랑임을 깨닫게해주었다. 사랑에는 나이도 국경도 없고, '성'도 없다. 오로지 사람만이 있다.
2017 매우주관적인평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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