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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해지는 방법 중의 하나일 뿐

나의 지방흡입 경험기 !

인스타그램 연재글 @woodumi


푸르름이 돋아나는 5월 초의 어느 날. 나는 수술대에 누웠다. 내 팔뚝에는 빨간색 매직으로 척척 수술부위가 표시되어있었고, 나는 정육점의 한 덩어리 고기처럼 누워 의료진들이 성공적으로 수술을 끝내주길 염원했다. 내 팔 어디에 악성종양이 있어서는 아니다. 32년간 그 어떤 운동을 해도 빠지지 않던 팔뚝의 지방을 빼내기 위해서였다. 그렇다. 나는 지방흡입 수술을 한 것이다.

지방흡입이라고? 이런 나를 두고 혀를 차는 말들이 들려오는 것 같다. 이 여자 정말 사고가 건강하지 않은 여자네, 운동을 해서 뺄 생각은 안 하고 수술을 받다니. 제 몸을 얼마나 사랑하지 않으면 저리 무시무시한 수술을 받으려고까지 할까? 자존감이 정말 낮네. 하지만 그런 비난쯤이야 가볍게 넘길 수 있을 정도로, 팔뚝의 살들은 내게 오랜 골칫거리였다. 그러니 미안하지만, 비난은 사양하겠다.

한 때는 나도 몸무게가 50kg를 넘긴 적이 없을 정도로 날씬했던 시절이 있었다. 그때의 바지사이즈가 25였던가 26이었던가. 세월이 흘러 결혼을 하고 ‘줌마’가 된 지금도 내 다리는 여전히 봐줄 만하다. 리즈시절로부터 근 10kg가 찐 지금도 다리만큼은 살이 잘 찌지 않는 체형이니까 말이다. 하지만 하지만..., 내 팔뚝은 그렇지가 않았다. 여리여리하던 시절에도 그 몸집에 맞지 않게 두툼했던 나의 팔뚝은 세월이 흐른 지금은..., 눈물이 나와 이쯤에서 생략하겠다.




이제마가 창시한 사상의학에 따라 분류된 나의 체질은 소양인이다. 모든 양기가 상체에 집중되어있다 못해 살도 상체 집중형이다. 아무리 먹어도 엉덩이나 허벅지에는 살이 붙지 않지만, 팔뚝과 볼, 턱 같은 부위에는 미친 듯이 살이 붙는다. 나와는 달리 하체로 살이 잘 붙는 유형들은 내 다리를 보며 좋겠다고 하지만, 정작 나는, 궁둥이는 풍만해도 기아 난민 같은 팔과 조막만 한 얼굴을 가진 소음인들을 보면 그리도 부러워 죽겠다.

멀리서 보면 다리를 뽐낼 일이 있을지는 몰라도, 가까이서 볼 때 가장 잘 보이는 건 상체가 아니던가. 때문에 나는 나를 사진으로만 보거나 상체 위주로만 본 사람들에 의해 ‘후덕한 사람’으로 오해받을 때가 많았더랬다. 그러다가 나중에 내 하체를 보고 나서는 “어머 알고 보니 듬지씨 날씬이었네~”하는 사람들의 반응도 32년째 익숙한 반응.


아무튼 이런 내 불균형한 체형 덕에 참으로 오랜 기간 내 나름대로 스트레스를 받아왔었다. 늘 하체를 강조하는 옷을 입었고, 상체는 팔뚝살을 보완하기 위한 가오리, 오버-핏, 아니면 어깨에 두툼한 패드가 붙어 팔뚝을 가려버리는 옷들 위주로 코디를 해야 했다. 하의는 S를 입어도 상의는 M을 입는 일이 허다했고, 팔뚝 때문에 외투는 늘 어깨선이 넓은 66을 입었다. 뿐만인가, 사진관에서 사진을 찍어야 할 일이 있을 땐 언제나 잊지 않고 “팔뚝 좀 과감하게 깎아주세요”라는 멘트를 덧붙여야 했다. 결혼식 땐 웨딩드레스도 딱 팔뚝 그 부분을 기가 막히게 가려주는 것으로 선택했었다.

그렇게 나름의 처절한 스트레스 속에 살아온 지 32년이 되어서야, 나는 별안간 인생은 짧은데 대체 뭘 망설이는 거냐는 생각이 들었고, 바로 상담을 거쳐 수술 날짜를 잡은 것이다. 정말로, 이제 뭔가를 망설이며 살고 싶지는 않았다.


여러 차례 알아본 결과 선택한 병원 R은, 비용면에서도 실력면에서도 만족스럽고 무엇보다 친절했다. 360도 팔 지방흡입, 앞 뽈록(겨드랑이 및 부유방), 뒷 뽈록(등과 이어지는 부분의 주변 살)까지 모두 흡입하는 것으로 해서 총 127만 원이 수술비로 들었다. 골칫거리를 제거하고 행복한 삶을 살기 위한 일종의 투자라고 생각하니 하나도 아깝지는 않았다.


일사천리로 이어진 수술은 성공적으로 마무리되었다. 집에 오자마자 압박복을 벗어제끼고 팔 라인을 거울로 확인했다. 맙소사. 퉁퉁 부어있는데도 불구하고 전에 가져본 적 없던 팔 라인이었다. 어깨에서 뼈를 드러내며 직각으로 떨어지는 가녀린 팔 라인, 32년간 꿈꾸던 팔 라인...! 단전에서 순수한 감동이 차올랐다.


성형에 대한 기준은 저마다 다를 것이다. ‘나는 쌍꺼풀 수술 정도는 수술이라고 생각 안 해’라는 사람들도 있을 테고, 아예 몸에 손을 댄다는 것 자체가 ‘자신을 사랑하지 못해서 일어나는 불경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에 대한 적법한 기준은 사실 세상에 없다.

그렇다면 성형에 대한 나의 기준은? 나는 모든 것을 ‘삶의 질’과 ‘행복’으로 연결 짓는 사람인만큼, ‘내가 불행하다고 느끼면 성형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나도 칼 한 번 대지 않아도 될 만큼 예쁘게 태어났더라면 더할 나위 없이 좋았을 것 같다. 혹은 내 몸이 어떻건 아무 신경이 안 쓰일 정도로 외모 자존감이 높은 사람이라면 더더욱 좋았을지도. 하지만 불행히도 나는 거울을 볼 때마다, 사진을 찍을 때마다, 내 몸에 어울리지 않는 거대한 팔뚝이 계속해서 신경 쓰이는 보통의 사람이었다. 게다가 운동도 해보고 살도 많이 빼는 등 나름의 건강한 노력을 해봤지만 유독 치졸하게 남아있는 부위가 바로 팔뚝이었다.


영혼을 타락시킬 정도의, 그러니까 소위 말하는 ‘성형중독’ 증세로 이어진다면 그때는 성형수술이 정신건강에 해로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처럼 대부분의 건강한 여성들은 한 두 군데 정도의 불만족스러운 부분 때문에 고민하는 수준이 아닌가. 돈과 시간만 있으면 조금 불만족스러운 이목구비를 예쁘게 다듬을 수 있는 축복받은 시대에 살고 있는데, 내 돈 내 시간으로 이를 고치는 게 뭐 그리 잘못이랴. 하지만 한편에는 아직도 “성형은 죄악. 자존감 낮은 애들의 전리품”이라는 시선이 존재하고, 아마도 이 때문에 많은 이들이 고민하는 것 같다. 그 어느 때보다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게 된 세상이니까. 실은 나도 그랬었고 말이다.

하지만 막상 수술을 결심하고 이를 해결하고 나니 이런 생각이 든다. 이게 뭐라고 미뤘지? 그냥 하루빨리 할 걸, 한 살이라도 어릴 때 할 걸. 그랬더라면 입고 싶은 옷도 더 마음껏 입고 사진도 많이 찍고 그랬을 텐데! 지방흡입은 나쁜 것이라는 구시대적인 편견으로부터 나름대로 버텨온 것 또한, 어쩌면 내 기준에 대한 자신이 없어서는 아니었을까.


예나 지금이나 난 내가 건강한 사람이라는 생각에 변함이 없다. 내 멋진 다리를 사랑하고, 앙증맞은 손발도 어여삐 여기고, 내 글재주도 둥글둥글한 성격도 나는 무지무지 자랑스럽다. 그러므로 나는 나를 무지 사랑하는 사람이다. 단지 나를 이루고 있는 수많은 것들 중 팔뚝살 하나가 거슬렸는데, 그거 하나만 해결되면 더 좋을 것 같았는데, 해치우고 나니 정말로 더 좋아졌을 뿐. 고로, 경험자로서 자신 있게 말하건대. 적당한 수준의 성형은 내 나름대로 행복해지는 여러 방법들 중 한 가지일 뿐, 해악도, 죄악도, 낮은 자존감의 표식도 아니더라는 말씀...!


누군가에겐 매부리코가, 누군가에겐 지나치게 넓은 미간이, 누군가에겐 팔뚝에 주렁주렁 붙은 살이, 평생을 의식하게 되는 골칫거리일 수 있다. 너무 신경이 쓰여 괴롭다면, 끙끙 앓는 데에 아까운 시간을 허비하기보단 보다 효율적으로 그 고민을 제거하는 것이 행복의 지름길일 수 있지 않을까. 거, 네가 지방흡입했다고 합리화하는 거 아니냐 할 수도 있지만, 응 맞다. 나도 했으니까 더욱이 많은 사람들이 덜 불행했으면 좋겠어서 하는 말이다. 성형을 권장하는 게 아니라, 행복을 권장한다고 보는 게 맞겠다.

베스트는 있는 그대로를 사랑하는 방법, 차선은 나를 불행하게 하는 요소를 제거하고 행복해지는 방법. 내 생각은 이런 것 같다.


며칠 뒤면 팔의 실밥을 풀러 간다. 시퍼렇던 멍도 붓기도 하루가 다르게 가라앉아 가고 있다. 완전히 낫게 되면 나는 이제 그 누구보다 민소매, 오프숄더를 당당히 입고 다닐 거다. 후회는 없다. 인생은 짧고 내 삶은 행복해야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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