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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의 일기들

4월에 일어난 소소한 감정의 기록

[정사각형] 07(1).jpg 인스타그램 연재글 @woodumi



[얕고 잔잔한 인연]

인연을 오래 이어가는 걸 잘 못하는 나로서는, 굉장히 유의미하게 이어지고 있는 예전 직장의 친구들이 있다. 세종에서 다녔던 모 연구소에서 만난 친구들이다. 이들은 모두 선량하고 볼 때마다 기분이 좋다. 내 결혼식을 축하해줬던 친구들이기도 해서, 얼마 전에는 너무 고마운 마음에 오랜만에 만나 밥을 샀다. 솔직히 서로에 대해 깊이 아는 편은 아니다. 하지만 이들과 있으면, 때때로 걔네 집 밥숟갈이 몇 갠지 아는 게 우정의 전부가 아니란 생각이 든다. 서로 적당히 거리를 둘 줄 알고, 피상적인 안부를 건넬지언정 항상 배려와 조심으로 서로를 대하는 우정도 값질 때가 많다. 얕지만 잔잔하게, 서로의 인생에 파동을 일으키지 않는 선한 가벼움으로. 오래오래 이 친구들과는 그렇게 지내고 싶다.





[애플망고]

친정집에 가면서 애플망고를 사 갔다. 서양 과일과는 친하지 않은 나지만, 왠지 엄마한테는 요즘 유행하는 거 좋은 거 핫한 것들을 선물해주고 싶다. 왠지 내가 아니면 엄마의 의지로는 애플망고를 먹어볼 일이 없을 것만 같았다. 그런데 엄마는, 엄마 먹으라고 사간 애플망고를 도리어 나보고 집 갈 때 몇 개 싸가란다. 어떻게 이렇게 자식 생각뿐일까. 엄마 먹으라고 산 건데..., 딸이 과일도 못 먹어가며 불쌍하게 사는 것도 아닌데..., 그러고 보면 엄마의 사랑은, 대단한 것에서 느껴지는 게 아니라 이런 사소한 순간들에서 정전기처럼 느껴지는 것 같다. 아주 작은 마찰로도 따끔따끔 번쩍이는 정전기. 당연히 애플망고는 집에 싸오지 않았다. 부디 남 주지 말고 엄마 혼자 다 먹기를 바라면서.




[고당도 참외]

결혼 전에는 몰랐다. 내가 마트에서 참외를 고를 줄은. 결혼한 지 3년 차에 접어든 지금은? 당도 높은 참외를 고르면 로또를 맞춘 것처럼 허벌나게 기분이 좋다. 어느 날은 마트에서 '성주꿀참외'라고 쓰인 알이 작고 귀여운 참외를 골라왔는데, 기대 이상으로 엄청 달고 맛있었다. 물론 난 ‘성주’가 어디에 붙은 지역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제 하나는 알겠다. 성주는 참외를 참 잘하는 집이다. 참외 하나에도 행복해하는 주부로 살아가고 있는 요즘이다. 그나저나 다음에도 이런 참외를 고를 수 있을까? 요리실력은 많이 늘었는데 과일 고르는 법은 참 어렵다. 아무리 잘 골랐다고 생각해도 늘 복불복이기 때문이다. 마치 인생처럼.




[1년만에]

“우리 거의 1년만에 만난 거 알아?”

“뭐? 아니야. 아닐걸?”

고등학교때부터 절친한 친구와 오랜만에 만나 대화를 하며 깨달았다. 친구는 동탄에 살고 나는 성남에 사는데, 그래서 물리적으로 거리가 그리 멀지 않으니 자주 보는 사이라고 생각했는데, 어찌어찌 하다보니 안만난지 1년이나 된 것이었다. 각자 가정을 꾸리고나니 친한 친구끼리도 만나는 게 여간 쉽지가 않다는 생각이 들어 어쩐지 마음이 이상했다. 그래도 그래도, 같은 경기도라서 언제든 원하면 만날 수 있다는 사실에는 여전히 안도가 된다. 시댁, 주택청약, 내 출간, 2세 계획 등 매우 현실적인 이야기가 오고 가고... 학교 앞에서 토스트에 딸기생가일쥬스를 먹던 소녀들이 언제 이렇게 나이가 든건지, 서럽다가 웃겼다가 행복했다가를 반복했다. 그래도 절친한 친구사이가 좋은 건, 아무리 오랜만에 만나도 대화에 공백이 없다는 점이다. 무슨 말을 해야할까 눈치보지도 않는다. 여자들의 수다란 도무지 방향성도 없고 결론도 없지만, 그래도 수다는 너무 즐거웠다. 더 자주 만나자 친구야.






2021 일상의짧은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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