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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이 안심되지 않는 길 (1)

누군가가 우리집 창문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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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명히 기억나는 그날 밤의 노크 소리. 5월 21일 금요일 밤 10시 반 경이였다. 겁이 많은 나는, 남편이 없었다면 절대 “누구세요?”하며 나가기는커녕 집에 있는 인기척도 내지 않았을 것이다. 남편이 나가려길래 “안돼에에 열지 마아!”라고 소리쳤는데, 남편은 그냥 벌컥 문을 열었다.


‘괜찮을 거야’하는 표정을 짓고는 나간 남편은 한참을 들어오지 않았다. 다행히도 문밖에서 나는 소리가 남편의 비명이나 고압적인 소리가 아니어서, 우리 건물 이웃이나 집주인이랑 얘기하나 보다, 하고 잠자코 기다렸다. 한 20분이 지났을까. 잊고서 티브이를 보고 있는데, 남편이 “어우 소름 끼쳐”하며 오들오들 떨면서 들어왔다. 그리고 이어진 그의 이야기는 너무나 충격적이었다.



우선 우리 집 문을 두드린 건 옆집에 사는 우리 또래의 남자였다. 워낙 주변에 관심이 없는 우리 부부는 옆집 남자에 대해 아는 것이 거의 전무했다. 밤이면 밤마다 왁자지껄 사람들과 떠드는 소리가 나는 것으로 보아, 무지 외향적이고 홈파티를 즐기는 사람쯤이라고 여기고는 있었다. 모임의 회장직을 맡고 있거나 아니면 타고난 인싸인지도 몰랐다.


그날도 옆집 남자의 집에는 ‘선배’라는 사람과 그의 여자친구가 놀러 온 상황이었다. (무슨 선배인지까지는 모른다) 여느 때처럼 도란도란 주말 밤을 즐기고 있었을 그들. 그중 ‘선배’라는 사람이 바깥으로 담배를 피우러 나왔다.




누군가 우리집을 훔쳐보고 있었다 (사진출처:핀터레스트)


우리 집 빌라 건물은 입구에 가로등이 없어 어두컴컴했고, 그중에서도 건물의 왼쪽 부근은 사람이 서있어도 모를 정도로 아주 캄캄한 곳이었다. 그 사각지대 같은 공간에서 조용히 담배를 피우고 있던 선배는, 웬 남자가 성큼성큼 건물 쪽으로 걸어 들어오는 소리를 들었다. 그런데. 우리 건물에 사는 사람이라면, 공동현관문을 열고 들어가는 소리와 저벅저벅 계단을 올라가는 소리가 나야 하는데...., 아무 소리가 나지 않더라는 것이다. ‘뭐지?’ 싶어 고개를 내밀어 건물 입구를 쳐다본 선배는 이상한 광경을 보게 된다. 어떤 남자가, 건물 벽 난간에 매달려 불빛이 새어 나오는 창문을 ‘훔쳐’ 보고 있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창문은, 다름 아닌 1.5층인 우리 집의 부엌 창문이었다. 그렇게 4-5초간 멍하니 창문을 들여다본 그놈은 누군가 자신을 지켜봤다는 사실도 모르고 다시 내려와 유유히 사라졌다고.


고맙게도 이 광경을 목격한 선배라는 사람은, 곧장 자신의 후배인 우리 집 옆집 남자에게 이 사실을 알렸고, 그 둘은 밖으로 나와 주차되어있던 자신의 차량 블랙박스 영상을 돌려보았다. 거기에는 아주 어둡지만, 선연히 그놈의 행각이 찍혀있었다. 어슬렁 걸어와 익숙하게 반지하 창문 덮개에 올라서서 우리 집 창문을 들여다보는 그 몇십 초 가량의 행각이...,


그 상황을 보고받고 블랙박스 영상을 같이 확인하고 오느라고 남편이 20분이나 밖에 있었던 것이었다. 그나저나 블랙박스 영상은 실감이 정말 대단했다. 처음에 말로만 들었을 때는 “별 미친놈이 있네”하고 가볍게 생각했는데, 막상 영상으로 그 실체를 보고 나니 소름이 끼치는 것이었다. 왜, 누가, 언제부터 이러고 있었던 걸까.

증거도 있겠다, 너무 소름이 끼친 우리는 경찰에 즉시 신고했다. “멍청한 놈, 어디 한번 혼나 봐라. 다시는 우리 집 기웃거리지 못하게 해 주마” 하는 마음으로 경찰을 기다렸다. 그러나 경찰 두 명이 우리 집 문을 열고 들어오는 순간 나는 직감했다. 그들의 심드렁한 표정. ‘또 어떤 예민한 분이 귀찮게 우리를 부르신 건가요?’하는 그 표정. 아, 경찰은 관심 없구나.


우리가 상황을 설명하고 영상을 보여주는데도 불구하고, 경찰들은 별 반응이 없었다. 오히려 우리가 얼마나 호들갑을 떨고 있는지, 그 남자가 우리 집 문을 뜯고 들어온 것도 아니고 그냥 보고 간 것이 전부인데 왜 그러냐는 뉘앙스였다. 주거침입죄로 형성이 되려면 최소한 창문을 열려고 한다던지, 문을 뜯고 들어와야 한다는 것이었다. “아니, 이 사람 보니까 한두 번 한 솜씨가 아닌 것 같아요. 너무 자연스럽게 쑥 올라와서 보고 가잖아요” 하고 말해보아도, “그렇게 느끼실 수는 있어요”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나마 둘 중 연차가 낮아 보이는 젊은 경찰관은, 자기도 여자친구가 자취를 하고 있어서 이런 곳이 매우 위험하다고 생각한다며 나를 위로해주었지만, 연차가 좀 더 높아 보이는 한 명의 경찰은 정말 재수 없게 느껴질 정도로 끝까지 미온적인 태도만을 보였다.




이건 범죄에 끼지도 못한다는 답변, 신고해도 못 잡을 가능성이 높다는 답변을 차례차례로 들려주고 나서 경찰관은 관용이라도 베푸는 듯 “그래도 사건 접수는 가능하신데 하시겠어요?”라고 물었다. 나는 이미 경찰이 이 사건을 시큰둥해한다는 것에 열이 받아서, 내가 CCTV 설치해서 내가 증거 모으고 내가 족치겠다고 소리를 쳤고, 남편은 그냥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언정) 사건 접수를 하겠다고 했다. 언제나 조금 더 이성적인 사람이 이기는 법. 결국 남편의 말에 따라 우리는 해결을 기약을 할 수는 없지만 사건 접수를 했다.


그러던 중 그 연차가 조금 더 높은 경찰관은 대뜸 “이런 집은 전세가 얼마나 해요?”하고 물었다. 지금까지의 태도로도 충분히 열이 받았는데 그 말을 듣고는 기가 찼다. 미친 건가? 놀러 왔나? 지금 우리는 무서워서 떨고 있는데 경찰이란 놈이 물어본다는 게 뭐? 전세가 얼마냐고? 그 헐렁한 얼굴을 한 대 치고 싶었지만 참아야 했다. 경찰을 때린 무식한 시민이 되고 싶지는 않았기에.


별 도움이 되지 않는 경찰이 가고 난 뒤 파도처럼 허무함이 밀려왔다. 그리고 화가 났다. 누군가가 우리 집을 훔쳐봤다는 사실보다 시민의 불안에 대답하지 않는 경찰의 태도에 더 화가 났던 것 같다. 경찰에게 불안과 공포를 인정받으려면, 그 관음증 환자가 우리 집 문을 열고 들어와 내게 위해를 가해야 한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그놈이 계속해서 우리 집 창문으로 훔쳐봐도, 그 훔쳐본 장면이 내가 벗고 돌아다니는 장면이어도, 그게 1년이든 2년이든 지속된다고 해도, 그 사람이 내게 아무런 물리적 위해를 가하지 않으면 벌하기 힘들다는 게 정말 말이 되는가. 그 허망한 사실 앞에 나는 어디선가 드라마 주인공이 하던 말을 내뱉을 수밖에 없었다.

“공권력... 안 믿어....”




처벌할 수 없다니, 그게 무슨 말이죠? (사진출처:핀터레스트)


모든 경찰분들이 그렇게 미온적이고 게으르다고 믿고 싶지는 않다. 어딘가에는 정말 투철하게 시민의 불안을 해결하려고 하는 경찰분들이 있다고 믿는다. 촘촘하지 못한 제도의 문제도 있을 것이다. 제도가 허술해서 경찰도 허술해지는 것인지, 경찰이 허술해서 제도도 허술한 건지는 알 수없다. 하지만 어쨌든 경찰이 모든 걸 다 해결해줄 거라고 믿었던 순진한 우리는, 결국 누구의 보호도 받지 못하고 불안 속에 살아야 했다. 경찰 말대로라면, 그놈이 더 간이 커져서 우리 집 창문을 부수거나 문을 따고 들어와 입증 가능한 폭력을 행사하기를 기다리는 수밖에는 없다.


인터넷에 나와 같은 일을 겪은 사람이 있는지 검색해보니 무수한 글들이 쏟아져 나왔다. 우리는 양반이었다. 여자 혼자 사는 집에 창문을 열고 위협을 가한 놈들도 제대로 적용할 법이 없거나, 잡아도 겨우 10만 원 벌금에 그치는 것이 현실이었다. 람보 같은 경찰이 달려와서 불안에 떠는 시민을 안심시키고, 범죄자를 당장 찾아내 구치소에 처넣는 일 같은 건 역시 영화에서나 있는 일이었을까.


뭔가 잘못되어도 한참 잘못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겨우 10만 원 벌금으로 죗값을 치른 그놈이 그 이후 신고자에게 어떤 보복을 할지, 더 어떤 끔찍한 일로 발전할지에 대해서는 아무도 책임을 지지 않는 세상, 예방은커녕 일이 터져야만 해결하는 세상, 불안해하는 시민을 예민하다고 치부하는 세상. 그게 내 나라 법치국가의 얼굴이라니.


이 일이 있고 난 후, 나는 너무 무서워서 밤에 나가던 산책도 중단하고, 저녁마다 버리던 음식물 쓰레기도 남편한테 떠넘기기 시작했다. 곧장 작은 커튼을 사서 부엌에 달았으며, 우리 집에 난 모든 창문을 의식하기 시작했다. 어둠 속에 식별이 되지 않았던 그놈의 얼굴을 나는 모르는데, 그놈은 나를 알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자 마트에 장을 보러 가는 것도 두려웠다. 어쩌면 내가 마트에서 마주쳤던 놈일까, 가까이 사는 놈일까, 너무나도 멀쩡해서 범죄자라고는 생각도 못하고 지나쳤던 놈인 건 아닐까. 별별 생각이 다 들었고, 동네의 모든 남자가 그놈일지도 모른다는 의심이 들어 힘들었다.


그때로부터 일주일이 지나고, 2주일이 지났지만 경찰에서는 여전히 아무런 소식이 없다. 나는 이제 경찰의 뜻을, 이까짓 일에는 수사의지가 전혀 없다는 뜻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잡아도 문제다. 10만 원을 내고 버젓이 일상으로 돌아올 그놈의 얼굴을, 경찰은 인권보호를 위해 알려줄 수도 없단다. 여전히 나는 밤 운동도, 음식물쓰레기 버리는 일도, 마트를 가는 일도 두려운데.


문득 우리 동네 골목골목 바닥에 커다랗게 쓰여있는 한 글씨가 참 우스꽝스럽게 느껴진다. 그 글씨는 「여성안심귀갓길」이다. 그런 글씨를 크게 써놓고 위급상황에 누르라며 드문드문 배치된 벨 몇 개로, 이 동네 여성들은 정말 안심하고 귀가를 할 수 있는 걸까? 이 동네 여성인 나는, 조용히 고개를 젓는다.






2021 일상의짧은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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