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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댁은 멀면 멀수록 좋다더니...,

편도 5시간 걸리는 시댁. 그 험난한 여정.


[정사각형] 05(1).jpg 인스타그램 연재글 @woodumi


지난 11월 초, 시댁에 다녀왔다. 꼭두새벽에 일어나 부지런히 준비해서는 아침 일곱 시 반에 자동차에 엉덩이를 갖다 댔다. 시댁을 가는데 그렇게나 서두른 까닭은 우리 집은 경기도 수원, 시댁은 강원도 동해로, 편도로만 무려 다섯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비행시간으로 치자면 몽골의 울란바타르나 필리핀 보라카이, 괌이나 사이판도 갈 수 있는 시간이다. 정말 곡소리가 절로 나는 이동시간이 아닐 수 없다. 그나마도 다섯 시간은 아침 일찍 출발해 최대한 안 막히고 빠르게 갔을 때 이야기다.


결혼 이후 쭉 경기도를 거처로 삼았던 우리 부부에게 원래도 시댁을 가는 길은 멀었었다. 하지만 수원으로 이사한 뒤 이동시간은 한껏 더 사악해졌다. 분당에 살 때는 넉넉잡아도 세 시간이면 시댁에 도착했었다. 열 시 남짓 여유롭게 출발해도 점심시간 즈음 도착해 시부모님과 점심을 함께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수원에 온 뒤, 수원이 분당보다 지도상으로 조금 아래에 있다는 이유만으로 경기도를 벗어나는 데에 너무나 오랜 시간이 걸리는 게 아닌가. 용인과 이천을 거쳐 경기도 길바닥에서만 두 시간이 훌쩍 지나버린다. 수원..., 너무나 멋들어진 화성행궁과 핫한 인계동이 있다지만 교통만을 놓고 보자면 정말 이곳은 헬이었다.

한 번은 수원으로 이사 온 뒤 얼마 되지 않아 이 극심한 교통상황을 전혀 인지하지 못했을 때. 오전 열 시 반엔가 시댁으로 출발한 적이 있었다. 뭐 두세 시간쯤 걸리겠거니, 그럼 못해도 2시 전에는 도착해 시부모님과 같이 점심을 먹을 수 있겠거니 생각하면서.


그런데 왠 걸. 그날 우리는 시댁에 오후 네시가 넘어 도착했다. 어머님이 함께 먹으려고 부쳐두신 감자전과 깻잎전은 이미 식어 한번 데워진 상태였고, 우리를 기다리시다 지친 시부모님 두 분은 점심을 일찍이 드신 상태였다. 시댁에 가서 겨우 저녁만 먹고 별다른 시간도 보내지 못한 채 다음날 돌아가야 했을 때, 제 아무리 친정집이 아닌 시댁일지라도 달갑지는 않았다. 머무른 시간이 이동시간보다 짧다니 이런 저효율이 어딨단 말인가.


62efced44bd2e4ebe770a3be903045ce.jpg 멀어도 너무 먼 시댁 (사진출처:핀터레스트)


남편은 그날의 도합 왕복 열한 시간에 이르는 미친 시댁 방문길을 체감한 뒤 선전포고를 했다.


“앞으로 꼭두새벽에 출발하고, 다음날 아점 먹고 바로 내려온다!”


너무도 비장해 흡사 작전지휘를 내리는 장군 같았다. 롸져 댓!


어쨌든 한 번의 호된 경험 덕에 이번에는 점심시간에 맞춰 제때 도착할 수는 있었다. 마침 큰 이모님의 환갑 생신이셔서 다 같이 모인 시이모님들과 즐겁게 생신파티도 할 수 있었고, 바깥에 나가 점심도 먹고 어달리 해변을 유유자적 구경할 수도 있었다.


30년 만에 가장 따뜻한 입동이었다는 그날, 어달리 해변의 하늘과 바다는 어찌나 파랗고 예쁘던지. 남편과 사촌 아가씨와 함께 돗자리를 펴놓고 물멍을 때리는데 행복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여유... 뭐지? 뭐긴 뭐겠는가, 일곱 시 반부터 풀메이크업 상태로 자동차에 다섯 시간을 앉아있던 덕이지.




하지만 그 여유가 오래가지는 않는다. 다음날 아침, 눈을 뜨자마자 남편은 핸드폰으로 교통상황을 살피며 어떻게 하면 집에 가는 시간을 줄여볼지 골몰하기 시작했으니.



“이제 우리 가야 돼!!!”


그리하여 마찬가지로 서울과 이천 멀리에서 오신 이모님들을 두고, 이 어린 조카 내외는 가장 먼저 옷을 주워 입고 시댁을 떠나야 했다. 머리도 감지 않은 상태였지만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으니까.


짧은 시댁 방문을 마친 뒤 다시 다섯 시간을 차에 앉아있으려니 어제의 여유는 금세 날아가고 다시 찌뿌둥한 기운이 온몸을 에워싼다. 이렇게나 땅이 넓고 긴데, 어째서 지구본에서 우리나라는 코딱지만 하게 보이는 걸까. 미국이나 중국은 대체 얼마나 크다는 거야.


더 기가 막힌 건 운전 중, 우리보다 한 시간은 더 늦게 출발한 이천 사시는 둘째 이모님네가 전해온 소식이었다. “우린 도착했어” 아, 우린 아직도 길 위에 있는데..., 이 상대적 억울함이란.


열한 시 즈음에 시댁에서 출발해 다섯 시가 다 되어 집에 도착한 나와 남편은 거의 파절이가 되어있었다. 누가 그랬더라? 시댁은 멀면 멀수록 좋은 거라고? 시부모님과 사이가 좋고 나쁘고를 떠나 난 그 말에 정말 동의하지 못하겠다. 장담하건대, 시댁과 멀면 멀수록 내 몸만 무지하게 힘들다!


‘시댁 방문 이동시간 줄이기’에 대한 남편의 고찰 역시 그래서 끝나지 않은 숙제인 듯하다.


“우리 이제 고속버스 타고 다닐까?”

“얼마나 걸리는데?”

“3시간 42분”

“와, 훨씬 낫네”


3시간 42분에도 환호성이 터져 나오는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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