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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물김치는 어딨어?

홍철 없는 홍철 팀, 물김치 없이 물김치 주러 온 울 엄마.

표지.jpg 인스타그램 연재글 @woodumi



천당의 물김치란 게 있다면 그럴까.


친정인 세종에 가면 요즘 부쩍 자주 가는 곳이 있다. 바로 같은 세종에 사는 나의 이모가 발견한 샤브샤브 칼국수집이다. 이모는 이따금씩 이모부와 외식을 즐기는데, 너무 맛있다며 얼마 전부터 나와 엄마를 데려가기 시작한 곳이 바로 그 샤브샤브 칼국수집이었다. 역시 구전 마케팅의 힘!


특별히 세련되거나 감성적인 곳은 아니지만 그곳을 설명하자면, 사장님의 음식 솜씨가 아주 기깔난 곳이다. 미나리와 쑥갓 그리고 버섯을 아낌없이 투하한 진한 육수에 고기를 데쳐 먹고 나면, 거기에 칼국수를 끓일 수 있었다. 칼국수는 면도 국물도 기가 막히다. 거기에 볶음밥이 빠지면 섭한 한국인 심리를 정확히 꿰뚫어 사장님이 볶음밥까지 볶아주시는데, 또 그 볶음밥이 과연 진리다. 계란과 파 향이 솔솔 나는 그 고슬고슬한 볶음밥. 덕분에 나는 맛 하나로 사람을 녹여버리는 그 칼국수집을 찬양하게 됐다.


그러다 어느 날부터는 이모가 그 집에서 식사를 한 뒤, 거기서 파는 물김치를 사주기 시작했다. 딱히 집에서까지 김치를 먹지 않는 나는 별 관심이 없었지만, 이모가 들려주는 선물이기에 일단 집으로 가져왔다. 그런데 그 이후 저녁을 차릴 때마다 곁들이기 시작한 그 물김치는 와우. 천당의 물김치란 게 있다면 그럴까. 내가 먹어 본 어느 것보다 맛있는 물김치였다. 적당히 달고 적당히 짜고 적당이 시원한데 또 톡 쏘는 맛도 있다. 또 그 뭐냐, 맑은데 깊-다. 하여간 좋은 맛은 다 느껴지는 그야말로 완벽한 물김치였다. 덕분에 이모는 내가 세종에 갈 때마다 손에 꼭 그 집 물김치를 들려주곤 했다.


어느 날은 친정에 가는 속도보다 물김치가 더 빨리 떨어져, 그만 동이 나고 말았다. 그랬더니 바로 금단현상이 왔다. 너무 먹고 싶은데, 아무리 냉장고를 열어도 물김치를 대신할 일당백 반찬이 없었다.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엄마, 그 칼국수집 물김치 있잖아. 그거 택배로도 주문할 수 있나?”


엄마는 한번 알아보겠다며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며칠 뒤 걸려온 전화는 슬프게도 택배로는 주문을 못한다는 소식이었다. 아니 이 맛있는 걸 전국적으로 만들어 팔지 않으시다니 거 참 너무하시네, 그 집 물김치에 빠진 사람에 대한 예의가 아니잖아요! 싶었지만 어쩌랴. 다음 친정에 갈 때를 노려봐야지.


그렇게 아쉽지만 물김치를 단념하고 지낼 때 즈음, 엄마에게서 다시 전화가 걸려왔다.


“듬지야! 그 물김치, 이번 주말에 엄마가 가지고 놀러 갈라고. 괜찮아?”


와, 희소식이었다.

물김치가, 아니 엄마가,

아니 물김치와 엄마 모두가.



사진출처 ⓒ핀터레스트



이것은 흡사 홍철 없는 홍철 팀이 아니던가.


일요일. 엄마가 올라오는 김에 같이 오붓하게 수원 데이트를 할 생각에 설레 아침부터 부지런히 일어나 있었다. 딸의 요리 솜씨를 보여주고 싶어 이것저것 요리도 했다. 나보다 더 부지런한 엄마는 오전 10시가 되어 도착했다.


엄마의 손에는 늘 그렇듯, 많은 반찬이 들려있었다. 메추리알 장조림부터 진미채, 멸치볶음까지. 그런데 엄마가 반찬을 주면서 하는 말.


“듬지야, 엄마가... 물김치를 놓고 왔어”


순간 엄마랑 함께 빵 터졌다. 딸이 좋아하는 물김치를 직접 갖다 주기 위해 우리 집까지 행차한 엄마가, 다른 반찬은 이지가지 챙겨놓고 물김치만 쏙 빼놓고 왔다는 게 왜 이리 귀엽고 웃기던지. 이것은 흡사 홍철 없는 홍철 팀이 아니던가.


“천안쯤 왔을 때 생각이 딱 난 거야, 순간 차를 돌릴까 말까 고민했잖아”


결국 물김치는 엄마가 택배로 부쳐주기로 했다. 뭐 원래의 목적은 물김치였지만, 물김치 없는 물김치 전달식이 망하리란 법은 없었다. 이렇게 또 엄마를 보는 거고, 이 김에 엄마랑 재밌게 데이트를 하면 되는 거니까.



집에서 엄마와 점심을 해 먹고, 수원의 에스프레소 맛집에서 티타임을 즐겼다. 매섭게 추웠지만 바람이 불었던 덕일까, 하늘은 더할 나위 없이 청명했다. 날이 좋은 김에 엄마랑 화성에 가야겠다고 즉흥적으로 생각했다.

수원에 살지만 수원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내가 유일하게 좋아하고, 또 자랑스럽게 여기는 것은 이곳 세계문화유산 ‘화성’이다. 팔달문부터 장안문, 서장대에 이르기까지 길게 늘어진 화성의 벽을 따라 엄마와 모처럼 걸었다. 하늘 곳곳에는 바람을 타고 높이 나르는 어여쁜 연들도 보였다. 내가 만든 것은 아니지만(정조께서 지으셨다), 엄마에게 이 아름다운 문화재를 보여줄 수 있어 기분이 좋았다.


엄마는 저녁까지 함께 있을 줄 알았건만, 네시 반 즈음 러시아워와 내일의 출근을 고려해 일찍 떠났다. 다음에 올 때 반찬통을 가져오라는 말을 잊지 않으며. (엄마는 반찬통 수거에 진심이다) 엄마의 인심과 사랑은 반찬에서 오는 걸까. 올 때마다 한가득 만들어오는 반찬들에서 나는 엄마의 사랑을 느낀다. 물김치가 없는 대신 엄마표 밑반찬들을 느끼며 시간을 보내야지.


그리고 다음에 친정에 갈 땐 그 칼국수집 사장님께 물김치를 택배로 파실 생각은 없냐고 꼭 여쭈어야겠다. 웬만하면 엄마가 만든 게 제일 맛있지만, 솔직히 말하건대 물김치는 그 집이 짱이긴 짱이니까.






글쓰는 우두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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