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 적당히 마시자고 한 게 엊그제 아니었나?
도대체 어쩌면 그렇게 망각이 빠를까
인간의 2대 허언 중 하나는 ‘내가 진짜 다신 술 안 마신다’이다. 그렇게 보자면 나도 둘째가라면 서러운 허언증 환자다. 엊그제도 나는 또 주량을 잊고 술을 부었다. 얼마 전 시댁과의 겸상에서 안동소주를 들이붓고 꽐라가 된 건 벌써 까먹었나 보다. 도대체 어쩌면 그렇게 망각이 빠를까.
신랑의 오랜 친구와 그의 여자 친구와 함께 술을 마셨다. 수원의 한 감각적인 와인 바에서 멋들어진 요리를 맛보자니 와인이 벌컥벌컥 들어갔다. 나는 또 낯을 가리는 성격이라, 모르는 사람이 있으면 낯가림을 벗기 위해 술 먹는 속도가 더 빨라진다. 역시나 술은 달았고, 취기가 오른 나는 또 목소리가... 커져버렸다.
다행히 그날은 기억을 잃거나 고주망태가 되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날의 내가 어땠을지는 안 봐도 비디오. 아.. 나는 술만 들어가면 지나치게 격앙되는 나의 모습이 너무나 싫다. 평소엔 수줍고 눈치가 보여서 하지 못하는 말들과 행동들이 술기운을 빌려 거침없이 나왔을 터. 그런 나는 적잖이 추하다. 그래서 이렇게 격앙된 술자리 이후 나는 신랑에게 꼭 묻는다.
“나 실수 안 했지?”
바른말만 하는 신랑 입에서 “실수했어”라는 말이 나오면 그건 대참사가 벌어졌다는 뜻이 된다. “별일 없었어”는 좀 나대긴 했지만 심각한 주사는 없었다는 뜻이다. “전혀 없었어” 정도는 되어야 마음이 놓인다. 다행히도 이번엔, 신랑 친구와 처음 뵈는 여자 친구분 앞에서 거나한 실수 같은 건 안 했던 모양이다. 언제나처럼 목소리는 커지고 신랑 욕을 하긴 했다는데, 그것쯤이야 뭐... 매우 양호한 경우이니, 안도하며 가슴을 쓸어내린다.
앞으로 약 한 달간은 입에 술을 못 댈 것 같았는데...,
다음날. 몸에 축적된 음주의 피로로 해롱거리던 그 시간, TV에서는 <나 혼자 산다> 재방송이 나오고 있었다. 공교롭게도 샤이니의 ‘키’와 ‘민호’가 함께 술을 퍼마시고 다음날 해장하는 장면이 나왔다. ‘키’는 숙취가 너무 힘들었는지 “내가 다시 술을 마시면 사람이 아니다”라며 치를 부르르 떨었다. 그러나 고작 반나절이 지나 두 사람이 찾은 곳은 그들의 추억이 담긴 한 순댓국밥집. 오징어순대와 순댓국을 한 상 차려놓고 보니 ‘키’는 별안간 소주가 떠오른다. 뜨끈한 순대국밥에 너무도 잘 어울리는 반주, 소주..., 이윽고 그의 입에서 머뭇거리다 나오는 너무나 웃긴 말.
“난 사람새끼가 아닌가 봐...”
일반인에게나 연예인에게나 놀랍도록 지겹고 가증스러운 역사가 반복되고 있다. 나의 엊그제도 그러했다. 술기운에 벌인 일들과 숙취로 인한 피로로, 앞으로 약 한 달간은 입에 술을 못 댈 것 같았는데..., 나는 또 숙취가 사라지자마자 TV에 나오는 시원한 맥주 광고를 보면서 생맥주의 시원함을 떠올린다.
역시나 나도 사람새끼가 아닌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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