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코로나 안 걸리는 사람이 외계인! 코로나 걸린 썰 풀어 봅니다.
그렇게 진귀한 일로 여기던 코로나는
쥐도 새도 모르게 걸렸다.
오늘 부로, 자가격리에서 해제되었다. 그렇다. 코로나에 걸렸었다.
2022년 봄. 이제는 코로나에 안 걸리면 대인관계가 문제가 있거나, 외계인일지도 모른다는 우스갯소리가 돌 정도로 확진자가 많은 시국이다. 몇 달 전까지만 해도 ‘뉴스에는 저렇게 확진자가 많다는데 왜 내 주위엔 없지?’ 생각했었다. 그러다가 나의 주변으로 차츰차츰 포위망이 좁혀지면서 어느새 ‘왜 나만 안 걸리지?’싶은 날이 이어지던 중이었다. 내가 이상한 걸까? 그렇다고 내가 뭐 대단한 면역자일 리는 없으니 언제 걸리더라도 분명히 걸릴 텐데, 그게 언제인지를 모르니 그것대로 속이 타들어가는 기분이었다. 마치 사형집행일을 무기한 기다리는 죄수처럼 말이다.
그렇게 진귀한 일로 여기던 코로나는 쥐도 새도 모르게 걸렸다. 먼저 코로나에 감염된 사람은 남편이었다. 내가 제주도 여행을 다녀오니 남편이 코로나에 걸린 것 같다며 자가진단 키트로 코를 찌르고 있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과신했었다. 건강에 별로 주의를 기울이는 스타일이 아닌데도 우리 부부는 도통 걸리지를 않으니, 이번에도 남편이 괜한 유난을 떤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벌써 대략 다섯 번째쯤 시도하는 자가진단 결과 남편은 한 줄, 음성이었다. 그러나 남편도 이제는 제발이지 걸리고 싶어 안달이 난 것 같다. 내 눈엔 한 줄이 분명한데 계속해서 희미하게 두줄이라고 주장하는 게 아닌가. 어차피 걸릴 거라면 지금 걸려라! 하는 마음일까.
남편은 자가진단 키트를 믿을 수 없다며 병원에 가서 신속항원 검사를 받았다. 그러나 그 결과도 음성. 보통 이쯤 되면 “아닌가 보다”하고 말 텐데 남편의 집념은 대단했다. 이번엔 보건소로 찾아가 PCR 검사를 받아왔다. 그런데 그 결과는 놀랍게도 양성이었다.
코로나 기운이 스멀스멀 느껴지기 시작했다.
이것은 집념의 승리일까, 검사시스템의 허술함일까. 자신이 코로나에 걸린 것 같다는 확신을 져버리지 않은 결과, 노력 끝에 자신의 감염 사실을 밝혀낸 남편이 새삼 대단해 보였다. 그래... 자가진단 키트는 정말 항간의 소문대로 믿을 게 못되는구만.
그동안 너무 열심히 일하는 남편이 내심 안쓰러웠었기에, 나는 코로나에 걸린 남편이 이 기회에 푹 쉬기를 바랐다. 넷플릭스도 맘껏 보고, 좋아하는 핸드폰 게임도 하루 종일 하면서. 그러나 그건 내 오산이었다. 남편은 양성 판정을 받기가 무섭게 담요와 한 몸이 되어 데친 시금치처럼 축 소파에 늘어졌다. 게다가 목이 아파 음식을 못 삼키겠다며 매 끼니 죽을 요구하는 게 아닌가. 웬만하면 다정한 사람인데 전에 없이 말투도 까칠해졌다.
솔직히 이쯤 되니 그냥 안 걸리고 회사나 가는 게 나았겠다 싶었다. 내가 생각이 짧았던 것이다. 하루 두 끼 죽을 쑤어 대령하려니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다. 어쨌거나 아내의 도리는 다하여야 했기에 나는 툴툴거리면서도 불 앞에서 쌀을 휘휘 저어 죽을 쑤었다. 오늘은 소고기를 넣은 죽, 내일은 들깨를 넣은 죽, 나름 변화도 줘가면서.
이틀 뒤, 코로나 환자와 살을 맞대고 지낸 당연한 결과로 (난 집안에서 마스크 쓰고 격리 같은 거 할 섬세한 위인이 못된다) 나도 코로나 기운이 스멀스멀 느껴지기 시작했다. 일단 목이 아파왔다. 표현하자면, 노래방에서 힘껏 서비스 시간까지 꽉꽉 채워 소리를 질러댄 다음날처럼 목이 칼칼했다.
“나도 코로나 걸린 것 같아”
남편에게 말하니, 남편은 제가 의사라도 된 양 “볼 것도 없이 코로나야”라며 진단을 내렸다. 시간이 지날수록 목은 점점 더 칼칼해져 왔고, 이젠 노래방이 아니라 산에서 조난을 당해 사흘 밤낮으로 목이 찢어지게 “살려주세요”를 외쳐댄 것처럼 통증이 거세졌다.
다음날 바로 병원에 가서 검사를 받아보니 바로 양성 판정이 나왔다. 하지만 호들갑을 떠는 의료진은 아무도 없었다. 아주 드라이한 목소리로 “네 양성이시네요. 진찰받고 가세요”라는 오더가 내려올 뿐이었다. 병원보다는 왠지 은행에 가깝게 느껴졌다.
다행히도 우리 부부는
크게 아픈 편은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아무튼 그로 인해 두 부부가 쌍으로 몸져눕는 상황이 일어났다. 둘 다 목이 찢어지는 듯했고, 비실비실거렸다. 그제야 왜 그렇게 가족끼리도 철두철미하게 마스크를 쓰고 격리를 해야 하는지 진짜 이유를 알게 됐다. 그건 바로 가족 구성원 중 하나라도 사람 구실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하나라도 육신이 멀쩡해야 대신 밖에 나가서 볼일을 보든 밥을 사 오든 할 텐데, 둘 다 몸져누우니 집은 돼지우리처럼 엉망이고, 하루 종일 배달 어플에만 의지해야 했던 것이다.
물론 다행히도 우리 부부는 크게 아픈 편은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특히 나는 원래가 평생을 목감기에 자주 걸려왔던 편이라 그런지 목이 쩍쩍 갈라지는 듯한 인후통도 그다지 낯설지는 않았고, 몸살도 자주 앓아보아 그런지 이 정도 열이나 오한이면 일어나 글도 쓸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실제로도 코로나 기간에 앉아서 글을 썼다.) 잦은 경험이 좋은 건, 그를 이겨낼 무딤을 가질 수 있다는 거다. 기관지가 약해 감기에 익숙한 나에게 코로나는 그저 조금 진상스러운 감기였다. 이까짓게 인류를 위협하고 공포로 몰아넣다니, 오히려 빨리 이겨내버리고 싶어 오기가 생기기까지 했다.
물론 개인마다 편차는 아주 상이하다고 한다. 남편은 열이 없었지만 나는 열이 있었던 것처럼, 남편은 죽만 먹어야 했지만 나는 피자도 씹어 삼켰던 것처럼, 개인마다 증상도 그 깊이도 첨예하게 다른 듯하다.
다만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불편한 게 있다면, 당연히, 외출을 할 수 없다는 것일 테다. 나로 말하자면 타고난 집순이라 원래도 집 밖으로 잘 나가지는 않는 편이지만, 그래도 ‘언제든 나갈 수 있는 것’과 ‘절대 나가지 못하는 것’에는 겪어보니 큰 차이가 있었다. 그냥 기분이 더럽다. 강제로 외출을 제한당하며 이를 어길 시 과태료까지 물어야 한다니, 억울하고 좀이 쑤신다.
이 강력한 집단 의지에 감사하며
격리가 해제되어 내가 바로 실행한 것은, 다름 아닌 집 근처 카페로 나가 고소한 카페라떼 한 잔을 사 마신 일이었다. 아주 잠깐 바깥에 나가는 것만으로도 행복할 수 있다니, 내심 건강의 중요성을 깨닫는다. 이 단순하고도 흔한 일상의 즐거움을 유지하기 위해서라도, 아프지 말아야겠구나...,
카페에 앉아 커피 한 잔을 마시며 창밖의 사람들을 바라보자니, 문득 인간이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언젠가 이런 말을 들었던 게 기억난다. 이 정도면 지구가 너무 아파서 인간을 멸종시키려고 하는데 인간이 눈치 없이 살아남는 거 아니냐고. 공감하지 않을 수가 없다. 이런 강력한 바이러스가 생겨나도, 말도 안 되는 짧은 기간 안에 백신을 만들고, 이겨내고, 곧 마스크도 벗을 수 있다는 말까지 들려오니..., 참으로 대단하고 지독한 생명체가 아닌가. 4세기도 아니고 40년도 아니고 단 4년 만에 말이다.
어김없이 봄이 또 찾아왔다. 내년이면, 마스크를 벗은 벚꽃시즌도 기대해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이 강력한 집단 의지에 감사하며, 앞으로 인류가 보다 더 건강하고 아름답게 지구에 머물기를 바라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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