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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따수운 작가 우듬지 Apr 27. 2022

그녀는 어쩌다
그런 괴물이 되었을까

계곡 살인사건 이은해를 보며 생각하다

     

인스타그램 연재글 @woodumi

         

남자는 여자를 믿었고,
여자는 그 믿음을 미끼로 남자를 조종했을 뿐


남편을 계곡물에 빠뜨려 숨지게 한 뒤 보험금을 타려고 했던 여자가 붙잡혔다. 요 몇 달을 뜨겁게 언론을 달구었던 그녀를, 나는 사실 두 해 전부터 알고 있었다. 워낙 <그것이 알고 싶다>의 열성 팬이었던지라, 두 해 전 방송에서 사건이 처음 소개되었을 때 폭풍 검색을 해본 바 있기 때문이다. 대기업을 다니던 남편, 정상적이지 않았던 결혼생활, 여자의 빚과 씀씀이, 그리고 내연남. 막장드라마에서나 볼법한 재료들이 모두 한 데 섞여 여자의 삶에 녹아있었다.           


일각에서는 눈에 빤히 보이는 질 나쁜 여자를 믿었다가 결국 죽음까지 당한 남자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도 많은 듯했다. 얼마나 순진하면 저러는 거냐고, 왜 빠져나오지 못했느냐고. 하지만 그것은 누군가가 순진하거나 물정을 몰라서가 아니라, 단지 사람과 사람 사이에 오가는 믿음의 문제였다고 나는 생각하고 싶다. 남자는 여자를 믿었고, 여자는 그 믿음을 미끼로 남자를 조종했을 뿐이라고.        

  

팝콘처럼 씹기 좋은 자극적인 사건이지만, 요즘의 나는 자주 생각한다. 정상적이지 않은 방식으로 쌓아 올려진 여자의 인생에 대해서. 어째서 한 인간이 그토록 무감각하고 비열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  

         

수년 전 생활이 어려운 사람들에게 집을 지어주던 예능 프로그램에서, 여자는 어린 효녀로 등장한 적 있었다. 초등학생이 악마일 리는 없는데... 어떻게 그 투명한 어린아이가 그 짧은 시간 동안 괴물이 될 수 있었던 건지 오랜 시간 궁금했다. 따지고 보면 이 흉흉한 사건의 트리거(trigger)가 바로, 그 여자를 ‘변하게 만든 무엇’ 인지도 몰랐다.          



사진출처 ⓒ핀터레스트


잘못된 가치관은 평생
그녀의 삶의 방식으로 작용한 듯 보였다


인터넷으로 전해지는 그녀의 인생은 더욱 파란만장하며 기괴하다. 장애를 가졌으며 기초 수급자였던 부모의 딸로 시작한 여자의 삶에는, 당연했겠지만 늘 물질이 부족했던 것으로 보였다. 가난이 원인이라고 하기엔 너무나 많은 가난한 사람들이 보다 훌륭한 삶을 살아내지만, 어쨌든 그녀는 물질적으로든 정서적으로든 무엇인가 큰 빈곤을 느꼈던 듯하다.           


여자는 이미 중학생의 나이에 가출과 조건만남을 일삼았고, 그렇게 만난 남성들을 통해 생활비를 충당했다고 했다. <그것이 알고 싶다>의 범죄심리학자 표창원은 이런 그녀의 일생을 두고 이렇게 말한다. “그녀는 남성과의 만남을 금전을 편취하는 수단으로 여겨왔다”라고. 이제 막 생리를 시작하고 남자 아이돌과의 판타지 로맨스를 꿈꿀 법한 나이에, 여자는 벌써 닳아버린 어떤 세계에 발을 들이고 있었던 것이다.  

         

이런 걸 보면 사람의 삶 역시, 유튜브나 플레이리스트와 마찬가지로 알고리즘의 법칙을 따르는 게 아닌가 싶다. 어떻게 무엇을 첫 단추로 꿰느냐에 의해 삶 전체가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매일같이 가짜 뉴스를 접하는 사람이 쉽게 음모론자가 될 수 있는 것처럼, 가장 예민하고 불안정한 시기의 청소년기에 가출과 조건만남이 들어찬 한 여자의 인생도, 어쩌면 그때부터 방향성이 정해진 게 아닐까.      

    

여자가 어린 시절 터득한 잘못된 가치관은 평생 그녀의 삶의 방식으로 작용한 듯 보였다. 단순한 성매매로 금전을 획득하던 방법은, 시간이 지나 경제적으로 능력이 있는 남성을 유혹해 결혼을 한 뒤 장기적으로 돈을 갈취하는 방법으로 진화하기에 이르렀으니. 남성을 진심으로 사랑하거나 공고히 믿음을 쌓아나가는 일은 그녀에게 일어나지 못한 듯 보였다. 그녀 인생에 그런 알고리즘은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진출처 ⓒ핀터레스트


그러나 다행히도 꼬리가 길면 밟힌다고, 여자의 날로 심해지는 물질에 대한 갈망은 결국 끝을 보이고 말았다. 두 해 동안 무려 세 명의 남자와 결혼하려 했고, 남편이었던 사람을 숨지게 한 끝에 말이다.    

       

이제 인터넷에는 여자가 편취의 수단으로 삼았던 이들의 목록이 적나라하게 나와 있을 정도다. 그러나 그런 여자에게 속아 돈과 사랑을 주었던 이들에게 죄가 있을 리가 없다. “말도 안 돼 저 여잘 왜 믿어?” 싶겠지만 사실 우리는 그런 아둔함을 아주 잘 알고 있다. 핸드폰이 깨졌다며 허술한 사기 문자를 보내도 돈을 송금하려 하는 사람들이 바로 우리의 부모님들이 아니던가. 부모님들이 자식의 일이라면 이성도 논리도 없이 마음부터 열어젖히는 것처럼, 어쩌면 그 여자를 사랑했을 남성들도 같은 심정이었는지 모른다. 좀 이상하지만 사랑하니까 믿어보자, 믿어보자, 믿어보자...,    

       

때문에 나는 그 여자를 한 때 진심으로 사랑했을, 여자의 뱀 같은 혀를 믿고 싶었을, 그 간악함을 눈치채지 못하고 피해를 당했을 남성들을 조금이나마 이해한다. 다시 말하지만 그건, 사람과 사람 간에 존재하는 믿음의 문제일 뿐이니까. 저 멀리 떨어져 그들의 관계를 냉철히 볼 수 있는 우리는 모르는, 그 어떤 것이 분명 그들 사이에 있었으리라.          




비록 가난하고 볼품없을지라도

이제 여자는 법의 심판을 기다리는 중이다. 그러나 아무리 법과 정의가 그녀를 다스린다고 해도 그녀가 뉘우치지 않으리란 걸 알고 있다. 뉘우침은, 가슴에 무엇인가 남아있는 사람만의 전유물이기에. 아마도 여자는 그것을 아주 오래전에 잃어버렸을 것이다. 남편의 음식에 복어 독을 넣기 전, 아니 여러 명의 남자와 동시에 동거를 하기 전, 아니 더 오래 거슬러 올라가 단 몇 푼에 몸을 내주고 생활비를 충당하던 그 어린 중학생 시절에 말이다.           


나쁜 것들을 쉼 없이 곁에 둔 결과, 결국 투명한 어린이에서 죄인이 되어버린 여자를 용서할 길은 끝끝내 없을 것 같다. 하지만 동시에 이런 생각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가장 어렵고 예민하고 상처받기 쉬운 나이에, 여자가 나쁜 길로 빠지지 않았더라면 그 인생은 어떻게 바뀌었을까. 남자를 돈을 뜯어내는 대상이 아닌 사람으로 볼 수 있도록 컸더라면, 세상엔 돈이나 향락보다 더 가치 있고 아름다운 것들이 많다는 걸 일찍이 배웠더라면, 그래도 그녀는 살인마가 되었을까.      

    

고인은 떠났고, 죄인의 영혼도 이미 파괴되고 없기에 누구도 알 수는 없다. 다만 머릿속에 자꾸만 맴도는 잔상들 끝에 어떤 깨달음을 얻을 뿐이다. 어긋나지 않고 열심히 반듯하게 살아온 우리의 삶이 얼마나 감사한 것인지를. 더불어, 서로의 곁에 있는 연인이나 배우자를 있는 그대로 사랑할 수 있는 우리의 삶이 얼마나 값진 것인지를. 비록 가난하고 볼품없을지라도 말이다.     







글쓰는 우두미

2022 일상의 짧은 글 ⓒ  All rights reserved.

인스타그램 @woodumi  

블로그 blog.naver.com/deumj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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