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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따수운 작가 우듬지 Jul 04. 2022

임신하고 싶은 사람은
임산부만 보인다

[임신일기] 내 주위에 아기 엄마가 이렇게 많았다니 난 왜 몰랐을까


  


인스타그램 연재글 @woodumi



근 1년간 가장 많은 응원의 댓글을 받았다.


이런저런 할 일을 하고 있던 중, 문자 한 통을 받았다. 얼마 전 산전검사를 받았던 산부인과에서 온 문자였다.           

「혈액 검사 결과 나와서 연락드렸습니다. 풍진 항체는 있어서 접종이 필요하지 않은데, B형 간염은 항체가 없어서 접종을 하셔야 될 것 같아요, 좋은 하루 보내세요」      

    

내가 기다리고 있던 소식은 내 몸에 풍진 항체가 있냐 없냐였다. 풍진 항체가 없으면 주사를 맞고 무려 3개월이나 피임을 해야 하기에. (나는 기다리는 게 제일 싫다. 칼 뽑았으면 당장 무를 써는 편) 그러므로 풍진 항체가 있다는 소식에, B형 간염 주사를 맞아야 된다는 말은 자동적으로 내 눈에서 블러(Blur) 처리가 되어버린다. 오예, 기다리지 않고 임신 준비를 할 수 있다! 쇼미 더 머니 합격 목걸이를 받은 것처럼 기뻤다.    

      

임신 계획 소식을 인스타그램으로 알린 뒤, 아니 정확히는 연재의 시작을 알린 뒤, 근 1년간 가장 많은 응원의 댓글을 받았다. 나는 또 그게 찡했다. 매일 눈으로만 조용히 읽고 가시던 분들까지 손가락을 움직여 댓글을 달게 한 그 힘은 뭐였을까.          

 

SNS의 순기능이 있다면, 물리적으로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이들에게서도 정신적으로 큰 힘을 받을 수 있다는 점이 아닐까 싶다. 평소 너무 자주 댓글 왕래를 해서 그 집 딸이 몇 살인지 아는 사이의 SNS 친구들도 있지만, 늘 좋아요만 누르던 인친이 내게 응원하는 댓글을 남겼을 때. 나는 평소보다 댓글들을 더 지긋이, 눈여겨보게 된다. 그날도 그랬다. 「원래 댓글 잘 안다는데 축하하고 싶어서요. 좋은 소식 기대할게요」 하고 적은 선한 마음들이 보였다. 평소보다 조금 더 흐뭇한 마음으로 지긋이, 댓글 하나하나를 정독했다.    

      


사진출처 ⓒ핀터레스트



요새는 모든 사람이 다 아기 엄마라는 생각이 든다.

언제나 느끼는 바이지만, 사람은 관심사에 따라 세상을 달리 보는 참 간사한 동물 같다. 임신을 결심하기 전, 나는 내 주위에 아이를 낳은 사람이 그리 많은 줄 미처 몰랐다. 정말 많은 나의 SNS 친구분들이 아기엄마셨다. 내가 몰랐던 거구나..., 내 관심사가 아니었기 때문인지, 종종 아기 엄마인 사람들을 만나면서도 “하원하러 가야지”하면 나는 화들짝 놀라곤 했다. ‘아 맞다, 이 분 아기 엄마였지’ 하고 말이다.    

 

그런데 요새는 모든 사람이 다 아기 엄마라는 생각이 든다. 모임에서 만난 선생님들, 나의 친구들, 헬스장에서 마주친 분들, SNS 친구들마저 모두 아기 엄마다. 홀몸인 나를 배려해 구태여 아이 얘기를 꺼내지 않았을 뿐이라는 걸 몰랐던 거다. 내가 임신 얘기를 묻자마자 봉인 해제하듯 아이 얘기를 줄줄 꺼내놓는 지인들을 보며 어찌나 미안하던지. 하지만 반성하건대, 요새 나는 임신 얘기해주는 친구가 제일 웃기다. 정말? 임신이 그런 거였어? 진짜 몸이 그렇게 된다고? 몇 개월 전만 해도 내가 제일 재미없어하는 얘기였는데..., 내 친구들의 가녀린 몸을 빌어 세상에 없던 뭔가가 떡하니 나왔다는 게 놀라워 미칠 지경이다. 군대에서 축구한 얘기로 몇 시간을 떠들 수 있는 남자들 마음이 이러겠구나.       


임신 결심 후, 상황은 심각하게 전도되어 육아 선배인 내 친구들은 나 때문에 요새 무지 귀찮다. 나는 툭하면 질문한다.          


“임신하고 달리기 해도 돼? 요가해도 돼?”

“임신하고 커피 몇 잔 마셔도 돼?”

“임신하면 머리 나빠져? 드라마 내용도 기억 안 난다며?”     

“임신하면 피부 나빠져? 여드름 많이 나?”

“임신하면 잠이 막 쏟아져? 나 미라클 모닝 해야 되는데”     


임신 앵무새가 따로 없다. 어쩌면 내 친구들은 내심 나에게 이렇게 말하고 싶지 않을까.  

        

“듬지야, 됐고, 임신부터 하고 얘기해”          


그렇다. 고작 산전검사를 마친 여자가 너무 떠든 것이다. 그러니 김칫국은 그만 마셔야겠지. 따지자면 나는 그저 쇼미 더 머니에서 예선 합격 목걸이를 받은 것에 불과할 테니까. 본선(임신)과 세미 파이널(안정기 정착)과 결승(출산)까지 넘어야 할 산이 정녕 태산만 하다.           


이왕 가지기로 한 거 한 번에 생기면 참 좋으련만.   

       


사진출처 ⓒ핀터레스트


마음 편하게 가져, 그래야 선물이 찾아올 거야.   

앞으로 얼마나 시도를 해야 아이가 생길지는 그 누구도 모르고 오로지 삼신 할매만 알 것이다. 혹자는 어느 날 운이 맞아떨어져서 한 방에 임신했다고도 하고, 혹자는 1년 가까이 노력을 해도 감감무소식이었다는 말을 내게 전해온다. 아이가 생기지 않아 난임클리닉으로 발길을 돌려야 했던 친구들도 있다. “나는 가지기 전에 한 번 유산했었어. 그래도 또 가질 수 있으니까 걱정 마.” 두려운 마음이 들면서도 이내 안심이 되는 건, 먼저 그 길을 지나온 친구들이 자신들의 경험을 꺼내 보이며 용기를 주는 까닭일 테다. 지나온 시간은 각기 다른 결과 모양이겠지만, 그들은 지금 하나같이 고슴도치 같은 아기들을 얻어 행복하게 잘 살고 있다. 그리고 입을 모아 내게 얘기한다.      

     

“마음을 편하게 가져 듬지야, 네가 편해야 해”     

      

그 말이 예뻐서 또 곱씹는다. 무언가를 준비하는 이에게 해줄 수 있는 말들 중 가장 감성적이면서도 이성적인 말이 아닐까.           


생리 어플을 켜서 가장 근접한 배란일이 언제인지 살펴보다가, 문득 내가 나에게 그 말을 되뇌어 본다. 

마음 편하게 가져 듬지야. 그래야 선물이 찾아올 거야.                     





  



인스타그램 @woodumi

블로그 blog.naver.com/deumj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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