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일기] 임신을 하면 일을 포기해야 했던 그 시절의 여자, 엄마.
엄마에게 어쩌면 결혼은 필요하지 않았는지 모른다
엄마는 원래 결혼할 생각이 없었다고 한다. 61년생인 나의 엄마가 젊은 날을 보내던 시절엔 여자가 결혼을 안 한 채로 서른을 넘기면 문제 있는 취급을 받기 일쑤였다. 엄마는 고향이었던 제주도를 벗어나 서울로 올라갔고, 그곳에서 뿌리를 내리고 엄마만의 일을 찾았다. 재능이 있었던 그림으로 취업을 하고, 돈을 벌고, 지금의 나로선 상상도 할 수 없지만 무려 스물다섯의 나이에 책임자 직함을 달게 됐다. 일해서 스스로를 벌어 먹이기에 충분했던 엄마에게 어쩌면 결혼은 필요하지 않았는지 모른다.
그러던 엄마가 별안간 결혼을 하게 된 건 외할머니 탓이었다. 외할머니는 곧 서른을 목전에 둔 딸이 일에만 빠져 살자 흉하다고 느꼈고, 팔다리만 멀쩡하다면 그 누구에게든 시집을 보내기로 작정했다. 그렇게 만난 사람이 나의 아버지였고, 이 클리셰 넘치는 상황을 읽어 짐작하겠지만 엄마의 결혼생활은 힘들었다.
결혼에도 뜻이 없던 엄마는 결혼을 하고 나를 낳아 졸지에 아기 엄마까지 되었는데, 엄마는 아기도 키우도 돈도 벌고 시어머니도 모셔야 했으며, 어떤 의미로는 남편도 키워야 했다. 결혼을 하지 않았더라면 엄마는 더 좋은 곳에 스카우트되어 먼 나라 미국 땅을 밟을 기회도 있었는데 당연히 그것도 하지 못했다. 그래도 엄마가 능력이 있던 때는 우리 세 가족이 부족함 없이 먹고살던 날도 있었지만, 엄마는 점점 나이가 들었고 그렇게 우리 집은 점점 기울었다.
나는 엄마의 유능했던 시절을 기억한다. 커다란 사무실에, 엄마가 거느린 직원 언니들이 나를 반기고, 나는 사무실 한쪽에 앉아 그림을 그리기도 과자를 먹기도 했었다. 명절이면 선물이 쏟아져 들어왔고, 나는 종종 학교에 햄버거나 아이스크림을 돌리며 우리 엄마가 그림 그리는 대단한 사람이라고 자랑을 하고 다녔다. 시간이 지나서 나는 가끔 생각했다. 엄마가 결혼을 하지 않았더라면, 그래서 가족의 생계를 책임질 필요가 없었다면 어땠을까. 훨훨 날아 지금쯤 <유퀴즈> 같은 토크쇼에 나오고 자서전을 쓰는 사람이 되지는 않았을까. 하지만 엄마에게 물으면 엄마는 이 세상에서 제일 잘한 일이 나를 낳은 거라고 했다. 엄마의 잃어버린 반쪽에 대해 생각하는 것 나뿐인 듯했다.
엄마가 가져보지 못한 것들을 너무나 쉽게 차지하고 살아가는 기분이다
어른이 된 나는 결혼을 하고 내 입으로 남사스럽게 말할 수 있을 정도로 행복하게 살아간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게 지지해주며 무한한 사랑을 주는 남편, 예쁜 두 마리 고양이, 전생에 나라를 구해도 얻지 못할 자상한 시부모님. 그리고 아직은 없으나 안정과 축복 속에 살아가게 될 미래의 내 아이.
내가 공기처럼 쉽게 쥐고 있는 이 행복한 조건들을 생각할 때 문득문득 엄마가 떠오른다. 엄마는 나와 다르게 결혼을 하면서 커리어를 포기해야 했고, 엄마는 나와 달리 하고 싶은 일을 지지해주는 남편이 아니라 먹여 살려야 하는 남편이 있었고, 엄마는 나와 달리 가장이 되어 불안정한 상황을 헤쳐나가야 했는데..., 나는 젊은 날 엄마가 가져보지 못한 것들을 너무나 쉽게 차지하고 살아가는 기분이 들어서다.
어쩌면 지금껏 아이에 대한 욕심이 별로 없었던 건 나도 모르게 내 안에 새겨진 어떤 자연스러운 학습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아이를 낳으면 글을 포기해야 할지도 모른다는 일말의 두려움. 그럼 나도 엄마처럼 재능을 썩히고 더 큰 세상으로 나아갈 기회를 져버린 채, 그저 누군가의 엄마나 아내로만 살아가야 한다는 그 뻔한 공포 때문에. 엄마를 닮아서인지 나는 내 것 내 일에 대한 욕심도 엄청난데, 나 마저도 이걸 이루지 못하면 이건 대를 이은 실패가 아닐까. 그런 생각에 임신을 차일피일 미뤄져 왔는지도 모른다.
물론 이건 근거 없는 공포일뿐이다. 나를 전폭적으로 지원하는 식구들 사이에서 내가 아이를 낳는다고 글을 포기해야 할 일 같은 건 오지 않을 것 같으니. 다만 임신과 출산이라는 과정이 상황에 따라서는 누군가에게 큰 희생을 지울 수 있는 일이라는 것을 무겁게 실감할 뿐이다.
어쩐지 나는 자꾸만 엄마에게 보여주고 싶다
나이 든 나의 엄마는 이제 이런 억울함마저 느끼지 못할 정도로 모든 것에 초연한 완연한 어른이다. 엄마는 거창한 꿈도, 잃은 지난날에 대한 이가 갈리는 억울함도, 행복하지 못했던 고된 결혼생활에 대한 자기 연민도, 그 무엇도 가지고 있지 않다. 엄마는 그저 꽃을 보면서, 저녁에 동네 한 바퀴 돌면서 행복하다고 말한다. 그런 탓에, 잃어버린 것을 두고 나에게 “너만큼은 꼭 네 꿈을 이루렴. 절대 아이에 발목 잡히지 말아”하고 말하지도 않는다. 엄마는 아이를 낳아 기르는 그 기쁨을 나 또한 생생히 느껴보기를 바라는 것 같다.
“엄만 다시 선택할 수 있으면 결혼할 거야? 엄마 결혼 안 했으면 잘 나갔을 텐데”
언젠가 카페에서 엄마와 함께 차를 마시다 물었다. 엄마는 몇 초 고민하더니 대답했다.
“음.. 결혼은 별로 안 하고 싶은데 그럼 네가 없잖아? 해야지”
엄마의 말에 숙연해졌다. 미국, 사람들의 존경, 넉넉한 월수입, 자유, 일로서의 성취감. 이런 것들을 내가 이기다니. 여전히 임신과 출산이 여성의 발목을 잡고 더 큰 가능성과 기회를 좁히는 주범이 되기도 하지만, 질량 보존의 법칙이란 게 이런 걸까. 그것을 상쇄할 기쁨 또한 임신과 출산이 주기도 한다는 느낌이 들었다.
나는 알고 싶다. 거머쥐고 싶다. 누군가의 엄마가 아니라 오롯이 내 재능으로 만들어내는 내 삶의 빛나는 결과물들을, 그리고 동시에 엄마가 되어야만 알 수 있는 어떤 기쁨과 성취들을. 모두 다, 쥐고 싶다. 그리고 둘 다를 쥐기 위해 발악하듯 열심히 살아간다.
주어진 삶에 만족하고 소소한 것에서 행복을 찾는 무소유의 경지에 이른 엄마가, 욕심이 그득그득한 이런 나를 보고 대리 만족할 리는 없겠지만, 어쩐지 나는 자꾸만 엄마에게 보여주고 싶다. 엄마가 젊은 날 그렇게 고생해서 키워낸 딸이, 모든 것과 맞바꿔야 했던 딸이, 너무나 대단해서 일도 육아도 다 잘하는 만능 재주꾼이라는 걸 보여주고 싶다. 나야말로 엄마 인생에 유일하게 남은 단 하나의 자산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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