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십대에 오십견 온 남편, 큰맘 먹고 요기(YOGI)가 되기로 하다
드디어 몸이 경고를 내린 것이 분명했다
지난겨울부터 꾸준히 다녀온 요가 수업. 어느 날엔가 처음 보는 아주머니가 수업에 들어왔다. 요가가 처음이라고 하시니 따라 하느라 연신 벅찬 모습이 거울을 통해 안쓰럽게 비쳤다. 헛둘헛둘. 그런데 그 아주머니, 절대로 아플 일 없는 동작에서 연신 ‘아악’하고 소리를 낸다. 요가 선생님이 “왜 그러세요?”하고 물으니 팔이 안 올라간다는 거였다. 아주머니의 팔은 만세도 못한 채 중간 즈음에서 멈춰있었다. 대체 저 위치에서 팔이 왜 아프지?
요가 선생님은 이것저것 물어보고 만져보더니 곧 진단을 내렸다.
“오십견이네요”
사람이 몸을 풀어주지 않은 채로 그렇게 오래 살아오면, 참으로 다양한 방식으로 고장을 일으키는구나 싶었다. 남들 다 쉽게 하는 만세를 못한다던지, 조금만 허리를 뒤로 젖혀도 찌릿하다던지 하면서 말이다. 태어나 제대로 된 스트레칭을 한 번도 안 해봤다는 그 오십견 아주머니의 말에, 나는 뭔가가 무서워져 근육을 더 쥐어짜며 수업을 따라 했다.
그로부터 한 달쯤 지났을까. 침대에 누워 남편이 머리 말리는 걸 지켜보고 있는데, 남편이 머리를 말리다 말고 별안간 ‘아아’하고 신음을 뱉었다. 왜 그러냐고 묻자 팔을 올리면 아프다는 거였다. 순간 한 달 전 요가 수업에서 보았던 오십견 아주머니가 섬광처럼 스쳤다. 어깨 관절에 통증이 생기거나 운동 범위가 감소하는 이 증상은, 흔히 오십 대 이상에게서 찾아볼 수 있는 증상이기에 관용적으로 오십견이라 불린다. 그러나 내 남편은 이제 겨우 서른셋이다. 평소 운동은커녕 퇴근하면 누워서 숨만 쉬기 바쁜 남편에게 드디어 몸이 경고를 내린 것이 분명했다.
나는 진지하게 걱정이 되어 말했다.
“요가 다니자. 요가 다녀야 해”
그러면서 나는 오십견 아주머니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우리 요가 수업에 말도 안 되는 위치에서 팔이 안 올라가는 아주머니가 있었다고, 이대로 운동 안 하고 살면 그게 네 미래라고 말이다. 원래 같으면 퇴근 후 자발적으로 시간을 내서 해야 하는 그 무엇도 하지 않을 남편이었지만, 이번에는 본인도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았던 걸까. 남편은 나와 함께 요가를 하겠다며 머지않아 헬스장을 찾았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영업을 당한 탓도 있지만) 1년 치를 등록했다.
요가를 해보지 않은 사람들은 흔히들 쉽게 생각한다
그리하여 지난주부터 남편과 함께 요가 수업을 다니는 중이다. 남편과 함께한 요가 첫 수업 날. 월요일이던 그날은 하필이면 난이도가 낮은 ‘힐링 요가’ 타임이었다. 초보자도 쉽게 따라 할 수 있는 스트레칭 동작들로 연결된 그야말로 ‘힐링’이 목적인 수업이다. 처음부터 아쉬탕가*나 빈야사* 같은 정식 요가를 무리하게 배우면 겁을 먹고 다음부터 안 올까 봐 차라리 잘됐다 싶었는데, 남편은 의외의 반응으로 내 염장을 질러댔으니..., 생각보다 쉽다는 둥, 대체 요가를 하고 땀이 왜 나냐는 둥, 열받는 소리를 시전 하는 것이 아닌가. 바꿔 말하자면 “이런 난이도의 운동으로 과연 내 몸이 좋아질까?”인 듯했다.
빈야사(Vinyasa) : 6가지 동작을 물 흐르듯이 연속적으로 동작을 이어하는 요가
아쉬탕가(Ashtanga) : 정해진 시퀀스를 끊임없이 반복하는 강도 높은 요가
다시 찾아온 수요일 요가는 빈야사 수업이었다. 요가를 하고 땀이 왜 나냐는 남편에게 요가가 단순한 스트레칭이 아니라 얼마나 근력을 필요로 하는 운동인지 보여줄 수 있는 기회였다. 아니나 다를까. 빈야사 수업 10분 만에 보기 좋게 헉헉 거리는 그를 볼 수 있었다. 연이어 금요일에는 아쉬탕가 수업을 했는데, 마찬가지로 그는 뱁새가 황새 따라가듯 동분서주했다. 뿌듯한 동시에 고소했다. 마! 이것이 요가다!
요가를 해보지 않은 사람들은 흔히들 쉽게 생각한다. 요가가 땀 한 방울 나지 않는 우아하고 쉬운 운동일 거라고. 하지만 해 본 사람은 정말 잘 안다. 극강의 고통을 수반하는 유연함을 갖춰야 하는 동시에, 허벅지가 부들부들 떨릴 정도로 근력을 요하기도 하는 ‘제법 힘든’ 운동이란 걸 말이다. 요가를 한 타임 하고 나면 정말이지 위아래로 요가복이 흠뻑 젖는다. 맨 몸으로 버티고 유지하는 동작들이 얼마나 코어 근육을 필요로 하는지 모른다. SNS에 전시할 예쁜 운동인 줄 알고 온 여자들이 하루 만에 그만두는 이유기도 하다.
수요일과 금요일 이틀간 빈야사와 아쉬탕가로 패대기가 쳐진 남편은, 이제 더 이상 요가가 쉽다느니 땀이 왜나냐 느니 하는 뻘소리를 하지 않는다. 곡소리가 나게 힘든 요가의 참맛을 안 것이다. 하지만 요가의 어려움을 알게 되서인지 그에 비례해 열심히 하고 싶은 마음도 더 커진 듯했다. 건강해지고 싶다는 욕심과 함께 일말의 승부욕이 작동한 게다. 여기 있는 회원들 다 이렇게 잘하는데 나라고 못하겠어? 그래, 나도 그 마음으로 한 주를, 한 달을, 한 분기를 버텨냈었다. 그렇게 자연스럽게 스며들면 어느새 요가에 중독된 요기(yogi:요가 수행자)가 되어있을 거야, 내가 장담해.
좋아하는 것을 가르쳐주고 싶은 건, 좋아하는 이에게 생기는 기본적인 마음일 테다. 지난해 겨울부터 요가를 시작해 조금씩 조금씩 근육이 늘어나고 온 몸의 독소가 풀려 건강해진 나는, 이 운동을 남편이 시작하게 되어 누구보다 기쁘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그와 함께할 수 있어서 어찌나 즐거운지.
여름이 지나 가을이 되고, 가을이 지나 첫눈이 내릴 때 즈음엔..., 각박한 직장생활에 움츠러들기만 바빴던 남편의 근육들이 한껏 늘어나 있기를 바란다. 부드럽게 이완되어 뼈와 근육 마디마디에 여유와 쉼이 깃들기를 바란다. 지난해 겨울보다 한껏 여유를 찾아 가뿐한 내 몸처럼.
(+)
운동에 대한 본격적 욕심의 시작은 역시 장비 세팅일까. 남편은 안다르에서 요가복을 구매했다. 싸게 샀다며 자랑까지 한다. 일주일 차 요린이는 왜 이리 귀여운 것인가.
인스타그램 @woodum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