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일기] 하라는 대로 꼬박꼬박 했는데 왜 때문에 안 되었는가
왜 한 번에 될 줄 알았을까
왜였을까. 한 번에 될 줄 알았다. 지금껏 열심히 착용(?)해 온 피임기구를 벗고 남편과 나 둘의 사랑이 그대로 맞닿으면 그 길로 바로 임신이 될 줄 알았다. 산부인과에서 건강하다는 칭찬을 들어서 더 그랬는지 모른다.
나는 원래 맥주를 좋아하는 사람이다. 못해도 주 1회는 집에서 시원한 캔맥주를 따 마시며 한 번씩 기분을 환기시키곤 했다. 그런 내가 임신 준비를 한다고 통 맥주도 입에 대지 않고 한 달을 버텼다. 혹시나 임신을 했을까 봐. 아니, 수정이라도 됐을까 봐서.
임산부의 음주는 태아의 정신지체와 관련이 있으며 청소년기의 행동장애(ADHD)를 유발할 수 있다. 가임기 여성의 임신 전 음주 또한 임신 및 태아 발달 능력을 감소시키고 기형아 및 거대아 출산율을 높인다.
이런 무시무시한 문구를 보고 나면 누구라도 자동적으로 이렇게 된다.
한 달 간의 금주와 준비 후 드디어 임신 테스트를 할 수 있는 날이 되었을 때, 아니 정확히는 그날이 ‘되자마자’ 나는 테스트를 해보았다. 모두가 알다시피 두 줄이면 임신, 한 줄이면 비임신이다. 고작 소변 한 줌을 묻히는 쉬운 일임에도 매뉴얼을 꼼꼼히 살피며 착실하게 진행했으나, 그리고 거기에 쓰인 대로 3분이나 기다려보았으나, 여전히 한 줄만이 선명했다. 비임신이다.
그날 바로 나는 못 참고 맥주를 땄다. 남편이 사다 냉장고에 넣어놨는데도 한 달이나 외면했던 곰표 밀맥주. 뭔지 모를 아쉬움과 스트레스가 밀려와서 마시지 않을 수 없었다. 사람의 마음은 참으로 간사하기 그지없구나. 불과 몇 달 전까지 임신 같은 건 생각지도 않았던 내가 테스트기를 손에 들고 두 줄이 나오기를 동동 바라고 있다니. 내가 사랑하는 맥주가 그날처럼 밍밍한 적은 처음이었다. 나는 이제, 누구보다 열렬히, 임신을 바라는 여자가 된 것이다.
노력해도 안 되는 것도 있다
내 주변에는 참 다양한 임신 사례들이 있다. 어떤 이는 분위기에 휩쓸려 그냥 한 번 했을 뿐인데 덜컥 임신이 됐다는 이도 있고, 어떤 이는 계획을 세우고 피임을 안 한 채로 몇 년을 지내도 아이 소식이 없었다고 한다. 그리고 어딘가에는 원치 않는데 이루어진 임신들도 존재하겠지. 왜 누구에게는 쉽고, 누구에게는 어려울까. 원하는 이에게 빠르게 생기고, 원치 않는 이에게는 생기지 않게 한다면 얼마나 좋을까. 세상은 언제나 규칙적이게도 불공평한 듯싶다.
겨우 한 달 시도해놓고 속이 상해 여기저기 전화를 돌리자 친구들은 말한다.
“너무 의무적으로 생각하지 마. 엄마가 아빠를 사랑하는 상태에서 관계해야 쉽게 생긴대”
“원래 간절할 때는 안 생기더라. 그냥 별생각 없이 지낼 때 생기는 거 같아”
정말? 내가 남편을 덜 사랑했을까? 너무 강박적으로 해서 그런가? 너무 신경 쓰다 보니 호르몬이 뭔가 이상하게 작용했나? 예전에는 근거 없는 말처럼 들리던 친구들의 말도 이제는 모두 분명한 과학적 사실처럼 다가온다. 곧 머리맡에 물을 떠다 놓고 무릎이라도 꿇을 기세다.
‘노력하면 된다’는 공식이 들어맞지 않는 일이 종종 존재한다지만, 그중 임신도 포함이라는 것을 절실히 깨달아가는 요즘이다. 임신은 인간의 일이기 전에 자연의 성역인가 보다. 어쩌겠는가, 미약한 인간은 자연의 섭리를 따르는 수밖에.
헛헛한 마음을 맥주로 달래며 나는 어쩔 도리 없이 다음 달을 기약해본다. 사실, 맥주도 와인도 좀 마셔댔다. 아무리 가임 여성이 임신 전 음주를 하는 것이 태아에 영향을 미친대도... 그런 무시무시한 문구가 내 머릿속에 파편처럼 박혀있다고 해도... 일단은 임신하기 전에 내가 좀 행복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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