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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따수운 작가 우듬지 Aug 24. 2022

생각해보니 늘 특별한 생일이었어

생일에 늘 실망만 하셨나요? 원하던 화려한 생일을 보내지 못했나요?


 

인스타그램 연재글 @woodumi



기대하지 않으면 실망도 하지 않아


생일에 대한 기대를 하지 않은 지는 제법 오래되었다. 서른이 넘어가니 내가 그다지 특별한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도 있고, 따라서 내 생일도 그다지 화려해야 할 근거나 명분이 없음을 받아들였기 때문이기도 하다.      


20대 때만 해도 참 부러웠었다. SNS에서 흔히 보이는, 큰 파티룸을 잡고 양손 가득 풍선이며 케이크며 들고 축하를 받는 내 또래 여자아이들이. 말하지 않아도 친구들은 자기들끼리 연락을 해서 룸을 빌리고 풍선을 매달아 깜짝 축하를 해주고, 남자친구는 꽃다발에 케이크에 예약하기 힘들다는 레스토랑까지 예약해 나를 그리로 이끄는..., 그런 생일. 누가 봐도 화려함으로 터질 것만 같은 그런 생일을 참 많이 부러워했었다. 하지만 내 생일에 그런 일이 일어난 적은 없다.     

     

남자친구들은 늘 기대에 못 미치는 생일선물을 전해왔고, 여자친구들도 생일이 반나절이 지나서야 축하를 전해왔으며, 파티룸이나 예쁜 레스토랑은커녕 파리바게트에서 급하게 산 케이크 같은 것으로 대충 점철되는 생일. 그게 내 생일의 현주소였다. 그런 일이 매해 반복되면서 나는 아예 기대를 접어버렸다. 타고나길 화려한 사람은 따로 있는 거고, 나는 그냥 이렇게 평범한 사람이라고. 그러니 그에 걸맞은 평범하고 재미없는 생일을 보내는 게 맞다고. 그리 생각했다. 씁쓸했지만 기대를 하지 않으니 마음만은 편안했다. 실망할 일이 전혀 없었으니까.  



사진출처 ⓒ핀터레스트


내가 겪어보지 못해 상상해보지 못한 사정


그러던 재작년 즈음일까. 직장을 다닐 때 알고 지내던 동생이 하나 있었는데, 엄청나게 성대한 생일을 보냈길래 축하를 하며 부럽다는 말을 전한 적이 있었다. 한창 20대이며 워낙 화려한 라이프를 좋아하는 동생에게는 당연한 삶인 듯했다. 그런데 동생은 생일날 친구들과 갈등이 있었다고 전해왔다. 젊은 날 내가 너무도 꿈꿔왔던, 누가 봐도 주인공 파티걸 같은 사진을 찍어놓고, 대체 무슨 연유로 싸웠다는 건지 궁금해 자세히 들어보았다. 사연인즉슨, 생일을 맞이해 동생이 먼저 친구들에게 파티룸을 빌려 생일파티를 하고 싶다는 의사를 전했는데, 그 말을 들은 친구들이 십시일반 돈을 걷어 파티룸을 빌리는 과정에서 ‘누가 돈을 내네 안내네’, ‘너무 비싸네 어쩌네’ 이런 말들을 전해와 감정이 상했다는 것이다. 또 파티룸에서 초과비용이 발생하면서 상황은 더욱 안 좋아졌다고 했다.           


전혀 생각지 못한 사연이었다. 그런 아이들은 파티룸을 빌릴 적에 돈 생각은커녕 어떻게 하면 친구를 행복하게 해 줄까 설레는 줄만 알았는데..., 행복하게 웃고 있는 사진에는 드러나지 않은 발갛고 민망한 속사정. 괜스레 내가 미안해지는 기분이었다. 그때 생각했다. 아, 보이는 게 다가 아니구나. 부러워 미칠뻔했던 사진들도 실상은 연출된 것일 수 있으며, 말하기 민망한 갈등도 존재하는구나. 내가 겪어보지 못해 상상해보지 못한 사정이었을 뿐.          




사진출처 ⓒ핀터레스트


그러던 나는 이제 서른셋이 되었고, 얼마 전 생일을 지나 보냈다. 언제나처럼 내 생일은 성대함과는 거리가 멀게 미지근한 온도로 흘러갔다. 요란하게 나를 축하해주는 이도, 멋들어지게 내 이름이 수놓아진 레터링 케이크도, 꽃다발도 없는 그런 생일. 더구나 이제는 카카오톡 선물하기라는 기능이 있어 친구들도 웬만하면 카카오톡으로 선물을 보내오는 시대가 됐다. 그러나 서글픈 마음이 드느냐면 그건 아니다. 기대하지 않아서가 아니다. 기대하지 않아서 실망할 일이 없어서도 아니다. 그저, 인간이 가지는 그 기대감이란 것이 오히려 상대의 마음을 재단하고, 내가 가진 평범한 행복을 불행으로 축소시키는 고약한 감정이란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나는 이제 나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저마다의 방식으로 축하해주는 그 마음 자체를 보고 느낀다. 바쁜 와중에도 나를 잊지 않고 챙겨주는 선한 마음들을. 감성적인 내가 좋아할 것 같은 컵을 선물로 보내주는 친구의 센스, 언젠가 같이 들른 매장에서 내가 한 번 매보고 내려놓았던 가방을 기억하고 비슷한 가방을 선물해준 친구의 기억력, 귀여운 자두를 보내주신 한 동료작가님. 심지어 내가 용돈을 줘야 할 것 같은 한참 어린 시동생은 무려 10만 원짜리 백화점 상품권을 보내주었다. (나를 백화점이나 좋아하는 속물로 알다니 제법 눈썰미가 좋다.) 비록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화려함으로 치장한 생일파티 주인공은 될 수 없어도, 분명히 나는 나를 사랑해주고 기억해주는 사람들에 둘러싸인 축복받은 존재임을 이제는 안다.    

      


나를 잊지 않고 챙겨주는 선한 마음들


이번 생일에는 또 하나 귀여운 해프닝이 있었다. 내가 워낙에 회 킬러이니 남편이 선물로 오마카세를 사주었는데, 거기 사장님께서 생일이라며 신기방기한 초에 불을 붙여 축하해주신 것. 빙글빙글 돌아가는 초를 보며 나는 모처럼 꺄르르 웃었다. 게다가 옆자리에 앉아있던 친화력 좋은 부부와도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는데, 공교롭게도 그분들도 생일이었으며 이게 다 인연이라며 내게 맥주까지 사주셨다. 기대하지 않았던 방식으로 생겨난 귀여운 생일의 해프닝들..., 그날 밤 나는 모처럼 행복하다는 생각을 했다. 아! 누가 뭐래도 참 귀엽고 행복한 생일이야!          


기대하지 않으면 실망할 일이 없다. 하지만 실망하지 않기 위해 기대하지 않는 것은 슬픈 일이다. 기대하지 않기보다는 있는 그대로를 바라보는 것이 더욱 바람직한 자세라는 걸 느낀다. 무엇보다 이제는 파티룸 빌리고 왕관 쓰고 풍선 흔드는 역할을 하기엔 조금 민망한 나이가 되어간다. 그래서일까, 생일이라고 용돈과 한우를 주고 가는 엄마가 더 반갑다. 





+ 귀엽고 행복했던 생일의 잔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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