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이런 시댁이 있다고? 無간섭, NO터치 시부모님 제보합니다
세상 모든 시댁은 대충 다 그런 모양새인 줄 알았다
드라마에서는 이런 장면이 자주 등장한다. 신혼집에 띡-띡-띡 도어락을 누르고 들어오는 시부모님, 예기치 못한 시댁의 방문에 혼비백산하는 며느리, 어질러진 집, 시부모님의 눈총. 거기에 어울리는 시어머니의 대사로는 “아아니 집안꼴이 이게 뭐니?” 내지는 “내가 내 아들 집에 마음대로 오지도 못하니!” 정도일 것이다. 마무리로는 시부모님이 떠나간 뒤 남편을 몹시 갈구거나, 친구에게 전화해 시댁 욕을 한 바가지 해주면, 그로써 완벽한 한 시퀀스가 완성된다.
결혼 전에 생각했던 시월드란 내게 그런 것이었다. 아무리 드라마가 과장된 것이라 해도, 세상 모든 시댁은 대충 다 그런 모양새인 줄 알았다. 하지만 막상 내가 결혼을 해보니 현실은 지레 겁먹었던 것과는 많이 달랐다. 사전 연락도 없이 도어락을 따고 들어오는 시부모님은 고사하고, 남편을 만나 햇수로 4년간 결혼생활을 유지하는 동안 우리 시부모님이 신혼집을 방문한 횟수는 단 1회였다. 그것도 결혼 후 맨 처음 꾸렸던 신혼집에 와보신 게 다였고, 이사해 2년째 살고 있는 지금의 집에는 한차례도 온 적이 없으셨다. 시댁이 머나먼 강원도라는 걸 감안해도 정말 적은 횟수다.
시어머니와 왕래가 잦은 것이 스트레스인 이들은 이런 나에게 말한다. 넌 정말 복 받은 거라고. 알지 알지, 시댁의 지나친 간섭이 얼마나 큰 불편함을 동반할지는 굳이 겪어보지 않아도 익히 알 것만 같다. 하지만 관계의 역학구조는 정말이지 신비로워서, 시부모님이 너-무 오시지 않자 언젠가부터는 살짝 서운한 감정이 들기 시작했다.
‘우리 사는 게 궁금하지 않으신가?’
‘내가 많이 불편하신가?’
그런 생각이 들며, 나는 어느새 시댁의 방문을 바라는 며느리가 되어간 것이다.
나를 비롯해 결혼한 대부분의 내 지인들은
‘못된’ 시댁이 무엇인지 알지 못한다
그러던 최근의 어느 날, 어머님이 “놀러 갈까?”하고 물어오셨다. 좀처럼 사랑한다는 말을 하지 않는 남자친구에게 기적적으로 사랑한다는 말을 들은 것처럼 나는 “네에에에! 오세요 어머님!”하고 소리를 질렀다. 그리하여 지난 주말. 어머님과 아버님이 결혼 4년 차에 접어든 아들 내외의 집에 두 번째로 찾아오셨는데...,
정말 오랜만에 시부모님이 오신만큼 상다리가 부러지게 9첩 반상을 차려도 모자라겠지만, 우리 시부모님은 손 한가득 회와 매운탕거리를 사 가지고 오셨다. ‘어디 한번 며느리가 밥을 잘하는지 못하는지 살펴보자’는 드라마 속 시어머니 특유의 취지 따위는 찾아볼 수가 없었다. 100%의 확률로, 내가 밥을 차리느라 고생할까 봐 먹을거리를 사 오신 게다. 덕분에 그날 내가 준비한 음식이라곤, 올리브유에 통마늘과 칵테일 새우를 넣고 익힌 ‘감바스’ 뿐. 알다시피 그건 초등학생도 만들 수 있을 정도의 쉬운 요리기에, 대접이라고 하기도 머쓱할 지경이었다.
시부모님이 속초까지 가서 사 오신 회에 술을 마시며, 모처럼 집이 사람의 온기로 가득 찼다. 손님이 놀러 와 즐거워진 고양이들도 펄쩍펄쩍 산양처럼 뛰어다녔다. 문득, 기분 좋은 소름이 오소소 돋았다. 파란만장한 20대를 살아온 우듬지, 결혼 후 그야말로 꽃길을 걷고 있는 것인가. 순한 맛 시월드 속에서 무척이나 안온하게 살아가고 있음에, 무한의 감사함이 밀려왔다.
그러고 보면 미디어가 주는 공포란 때때로 얼마나 허망한 것인가. 어려서부터 지금껏 내가 보아온 영화나 드라마 속에서는, 김치 싸대기와 협박성 돈봉투로 점철된 시월드가 난무했었는데. 살아보니 현실은 어찌나 다르던지, 나를 비롯해 결혼한 대부분의 내 지인들은 ‘못된’ 시댁이 무엇인지 알지 못한다. 소소한 불편함 정도는 느껴도, 드라마의 엔딩을 장식할만한 고부갈등이 무엇인지도 알지 못한다. 하물며 어떻게 된 영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요새는 시댁 어르신들이 며느리의 눈치를 많이 보는 구조가 된 듯하다. (물론 여전히 어딘가에는 혀를 내두르는 시댁을 만나 마음고생을 하는 사람들도 존재할 것이고, 그런 분들께는 심심한 위로를 보냅니다.)
덕분에 안온한 며느리로 삽니다
시대가 변하는 만큼 그에 발맞춰 시댁도 변하는 것일까? 물론 아무리 시월드가 순해졌대도 시엄마가 내 친엄마가 될 수 없다는 것은 지금도 분명하다. 그러므로 내 엄마처럼 뼛속까지 편해지는 날 역시 오지 않을 거라는 것도 안다. 하지만 그래도 며느리를 ‘아들을 뺏어간 천하의 불여우’가 아닌 ‘아들이 아끼는 친한 친구’처럼 대해 주시는 그 너른 마음은 얼마나 감사한가. 뭐라도 하나 흠을 잡아 혼내기는커녕, 맛없거나 불편해도 며느리가 마음 상할까 입밖에 내지 못하시는 그 마음은 얼마나 보드라운가. 바라건대 나는 우리 어머님 아버님이 더 자주 우리 집에 놀러 오셨으면 하는 마음이다. 며느리가 감바스 말고도 할 줄 아는 요리가 많음을 꼭 보여드리기도 해야겠고!
이틑날에도, 어머님 아버님은 아침밥을 차리라고 불호령을 내리는 대신 밖에 나가서 밥을 사 먹자고 하셨다. 물론 그것도 100%의 확률로 며느리가 밥 차리는 게 힘들까 봐서다. 우리는 부모님을 모시고 광교 호수공원을 조금 걷다가 한 한정식집에 가서 밥을 먹었다. 그마저도 당신들께서 사주겠다고 하시는걸 어찌나 간신히 사양해야 했는지. 다시 한번 느끼는 거지만 드라마는 드라마일 뿐인가 보다. 하긴, 이런 슴슴한 시댁이 드라마에 나오면 시청률은 바닥을 찍고 조기 종영의 길을 걸을 테지..., 비련의 여주인공은 되지 못하지만, 신세가 편한 며느리로 살고 있는 나는, 덕분에 오늘도 안온하고, 또 안온하다.
어머님 아버님, 사.. 사랑.. 존경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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