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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따수운 작가 우듬지 Jan 25. 2023

왜 다정해야 하는지 나는 모르겠어

다정함을 버렸더니 나에게 벌어진 일

 

인스타그램 @woodumi




그땐 나도 모든 사람을 사랑했었지


스무 살이 되었을 때의 그 벅참과 설렘을 기억한다. 학교라는 좁은 틀을 벗어나 (벗어나서도 또 대학교를 가야 했지만) 더 무한한 세계로 나아간 나는 세포 하나하나가 활짝 열려 있었다. 그것은 무엇이든 겸허히 받아들이고 겪겠다는 순수함이기도 했다. 인간관계에 대한 자세도 동일했다. 


'누구든 다 들어와, 겪고 싶어 알고 싶어 만나고 싶어!'    


그러나 아무것도 알지 못하는 어린아이는 그 얼마나 겁 없고 해맑던가. 뜨거운 것을 직접 손으로 만져봐야 알기에 필연적으로 손을 데이고, 먹어봐야 똥인지 알기에 똥을 찍어 맛보게 된다. 스무 살의 나도 그러했다. 좋은 사람들도 있었지만, 반대로 전혀 예상할 수 없는 나쁘고 이상한 사람들과도 많이 만나게 됐다.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만난 못된 사람들, 사회생활을 하며 만난 비겁한 어른들에게 까지고 데이면서 스물아홉 살쯤 되니 완전히 인간관계에 학을 떼게 됐다. 그때의 마음가짐은 이러했다. 


'들어오지 마, 내가 경고했다? 노크 안 하고 문 열면 다 죽여버릴 거야!'


  




사진출처:핀터레스트



여전히 사람을 좋아하지만....


여전히 나는 사람을 좋아한다. 문제는 그만큼 경계심도 많다는 것이다. 더 정확히는 모르는 사람에게는 굉장히 날이 서 있고 친구가 되기까지 꽤나 오랜 시간이 걸린다는 것이다. 아주 여러 단계의 문을 거쳐서야 검증이 완료된 자만이 결국 내 곁에 안착할 수 있게끔 내 인간관계의 시스템은 기민하고도 날카롭게 설계 되어있다.     

상처받는 것이 두려워 먼저 가시를 세우고 했던 나는, 언제나 대인관계에서 겪게 될 기쁨보다는 상처받지 않기 위해서 필사적이었다. 가급적 먼저 친해지려 하지 않았고, 상대가 나를 밀어내기 전에 내가 먼저 밀어내고자 했다. 언제 어떻게 공격당할지 모른다고 생각해 약점도 되도록 말하지 않았다. 그렇게 지내다 보니 얼마간은 굉장히 평화롭고 안전했다. 상처받는 일은 현저히 줄어들었고 가벼운 인간관계가 내 삶을 장식하는 일도 없었다. 그러나 그런 태도를 계속 유지한 채 시간이 오래 지나자, 나는 나를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서 이런 말을 듣게 됐다.     


음흉하다, 속을 알 수 없다, 진심이 뭔지 모르겠다, 이중인격자, 두 개의 얼굴, 착한 척하는데 뒤로 호박씨 까는 인간 (등등...)

   

기분이 이상했다. 한때는 진짜로 음흉하고 이중적인 사람들로부터 내가 상처를 받곤 했는데, 이제는 내가 그런 사람이라고 오해를 받고 있다니. 나 알고 나면 되게 진국인데, 내 사람이 되고 나면 나는 못 퍼줘서 안달인 사람인데..., 그런 내가 이중인격자이고 음흉하다니. 참으로 얼떨떨했다.   

       





사진출처:핀터레스트



다이슨 드라이기로 미루어 본 내 성격의 변화



일례로 오랜 친구와 최근에 나눈 대화에서 나는 내 성격이 얼마나 폐쇄적이고 날이 서 있는지를 깨닫게 됐다. 최근 수영장을 다니고 있는 친구가 머리를 말리려고 보니 수영장 탈의시설에 비치된 드라이기가 너무 후졌더라는 거였다. 집에 있는 다이슨 드라이기를 가져갈 걸 후회가 됐다고 했다. 그런데 함께 수영수업을 들은 사람 중 한 명이 다이슨 드라이기를 꺼내 머리를 말리더라는 것이었다. 


내 친구는 반가워서 “집에서 가져오신 거예요? 와, 저도 집에 다이슨 있는데 가져올 걸 그랬나 봐요”하고 인사를 건넸단다. 그랬더니 그 여자는 짧게 답변하고는 후다닥 머리를 말리고 나가버렸다고.      


친구는 내게 말했다. 

“나 같으면 빌려줬을 텐데 그냥 휙 나가버리더라. 너라면 내가 그렇게 물으면 빌려주고 싶지 않겠어?”     


그러나 내 대답은 이것이었다. 

“아니! 내가 왜? 야, 한 번 빌려주기 시작하면 한도 끝도 없다. 거깄는 사람 다 빌려 달라 그러고, 나중에는 안 빌려주면 욕할 걸?”     


정말 그랬다. 굳이 모르는 사람에게 내 드라이기를 빌려주고 싶지 않은 게 요즘 내 마음가짐이었던 거다. 괜히 선한 마음으로 빌려줬다가 나중에 안 빌려주면 욕이라도 먹지 않을까, 나를 괜히 호구로 보지 않을까, 내 드라이기를 고장내지는 않을까 등등. 나는 상대로 인해 내가 상처받거나 피해 받을 일을 구태여 만들지 말자는 쪽이었던 것이다.      






사진출처:핀터레스트



경계심을 조금 덜어내야 할 때가 되었나 봐요


하지만 친구와 헤어져 집에 돌아와 생각해보니 그런 생각을 하는 나 자신이 좀 과하게 방어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나를 잘 모르는 사람들이 나를 음흉하고 호박씨 까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던 것도 일리가 있겠다는 생각도 함께 들면서.     


스무 살의 나라면 어땠을까. 나는 아마 모두에게 나의 다이슨을 빌려주었을 것이다. 혹시나 머리를 안 말리고 나가는 사람이 있다면 행여 감기라도 걸릴까 뛰쳐나가서라도 빌려주었겠지. 그때의 나는 경계심보다는 사람에 대한 반가움, 호기심, 유대감 같은 것들로 가득 채워져 있었으니까 말이다.     


그때의 순수함과 투명함이 이제 와 그립다면 주책일까. 요즘의 나는 다시 스무 살의 내가 되기 위해 노력 중이다. 더이상 상처받지 않을 만큼 단단해져서가 아니다. 상처는 어쩔 수 없이 평생 껴안아야 하는 숙제란 걸 이제 인정하는 바다. 다만 상처받지 않는 것보다 중요한 것들이 있음을 알게 되어서다. 열린 마음으로 사람을 바라보고, 상처받을지라도 온기를 건네 보는 그 따스운 풍경들이 그리워져서다.     






사진출처:핀터레스트



뮤지션 겸 작가인 ‘요조’와 작가 ‘임경선’이 쓴 교환일기에는 이런 문장이 적혀 있다. 다정하고 친근한 스스로를 탐탁지 않아 하는 요조에게 임경선이 건넨 말이다.     


남들보다 조금 더 마음이 헤퍼서 조금 더 손해 보고 상처 입는다 해도, 그래도 역시 ‘줄 수 있는’ 사람, ‘주는 법을 아는’ 사람은 더없이 근사한 거 아닐까.      


그동안 가시를 세우며 나를 잘 보호하는 것이 근사한 것이라고 믿어왔던 나날들이 부끄러워지는 대목이었다. 그렇다. 정말로 근사한 건 마음이 더 헤픈 사람, 다정함의 가치를 아는 사람인지도 모른다.    

 

나는, 과연 다이슨을 서슴없이 빌려주는 사람으로 거듭날 수 있을 것인가. 

음흉한 나에게 건승을 빈다.              






                 




고민 많고 마음 여린 어른이들을 위해 따수운 글을 전합니다.



■ BOOK

연애 결혼 힐링 에세이 『사연 없음

현실 직장 생활 에세이 『어쩌다 백화점


■ CONTACT

인스타그램 @woodumi

유튜브 『따수운 독설

작업 문의 deumji@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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