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꼭 그 미용실만 가는 이유는 말이죠...
동네 미용실에 앉아 있노라면 말이죠
머리를 할 때면 언제나 프랜차이즈 미용실을 찾는 편이다. 리챠드, 준오헤어, 이철헤어커커 같은 누구나 아는 프랜차이즈 미용실. 그곳이 동네 미용실보다 화려하고 웅장해서 좋은 것도 있지만, 정작 내가 그곳들을 마음에 들어 하는 이유는 바로 깔끔하게 규격화된 시스템 때문이다. 그 규격화된 시스템이 좋은 이유가 또 남다르다. 어쩐지 나를 ‘덜 눈치 보게 만들어서’다.
동네의 자그마한 미용실에 가 앉아있노라면 참 여러 가지가 신경 쓰인다. 내 머리에 싸구려 약을 발라 상하게 할까 봐서가 아니다. 분명히 내가 먼저 예약했는데 예약도 없이 찾아온 다른 아주머니가 사장님을 보챈다. 나와 동시에 다른 사람을 처리하느라 시간이 길어지기도 한다. 직원도 없이 홀로 그 많은 손님을 어르고 달래며 영업을 하는 사장님. 나는 그런 상황이 매우 신경 쓰인다. 그렇다고 다른 손님 없이 사장님과 둘만 앉아있어도 그것대로 힘들다. 적막이 미치겠는 것은 둘째고, 나 때문에 밥을 거르시는 건 아닌지, 이렇게 해서 가게가 잘 운영은 되는 것인지까지 망상이 뻗어 나가서다. 그런고로, 정겹지만 여러모로 마음이 불편한 동네 미용실은 잘 찾지 않게 된다.
프랜차이즈 미용실이 좋은 까닭은 바로
반면 비까번쩍 프랜차이즈에 가면 오히려 마음이 편하다. 조용한 가게에 혼자 들어서서 주목을 받기보단, 사람들로 시끌벅적한 매장에 가야 마음이 놓이는 것과 같은 이치다. 그곳에는 배운 대로, 정석대로, 시스템대로 바삐 돌아가는 직원들이 있으며, 잘 나가는 프랜차이즈니 일차원적인 생계걱정을 할 필요도 없다. 내 예약시간에 겹치게 찾아와 똥줄을 타게 만드는 다른 손님도 없고, 모든 시술과 서비스들은 더도 덜도 없이 회사의 방침대로 매겨진다. 미안한 마음 없이 반품을 할 수 있는 대기업의 상품처럼 나를 편안하게 만드는 그 시스템이 무척 마음에 들어, 나는 머리를 할 때면 오로지 프랜차이즈 외길인생을 걷는 중이다.
수원에 정착한 지도 어언 2년이 흘러간다. 그동안 나는 내 집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이철헤어커커’의 단골이 되었다. 하지만 아무리 내가 좋아하는 프랜차이즈라고 할지라도, 디자이너 선생님이 말을 너무 많이 걸거나 반대로 내 요구사항을 전혀 반영해주지 않는 곳과는 오래 인연을 맺기가 힘든데, 이곳에서 만난 B실장님은 정말이지 내가 ‘딱’ 좋아하는 온도의 친절함을 지닌 분이셨다.
B실장님은 언제나 나를 웃으며 맞이해 주신다. 세상에는 호의적이지만 갈 때마다 나를 알아보지 못하는 사람들도 참 많다. 하지만 호들갑 떨지는 않지만 나를 알아보고 웃는 실장님의 그 눈을, 나는 귀신같이 알아챈다. 적당한 인사, 친절한 손길, 나의 요구사항을 구체적으로 들어주시는 두 귀, 그리고 숙련된 스킬로 언제나 만족스러운 시술을 해주시는 능력까지 겸비하신 분. 그리고 이 모든 것을 제치고 내게 제일 중요한 것. 필요 이상으로 대화를 시도하지 않는 그 센스! 시술시간이 길면 세 시간까지도 넘어가는 미용실에서는, 그런 온도가 맞지 않는다면 정말이지 가시방석이 따로 없기 마련인데, 그 부분이 정확히 맞아떨어져서일까. 나는 나를 편안하게 만들어주는 B실장님에게 반한 이후로, 오로지 이철헤어커커의 B실장님만을 찾게 되었다.
곱슬 지옥의 해결사 B실장님
이 B실장님의 진가를 알게 된 결정적 계기가 또 하나 있었다. 나는 타고나길 머리가 구불구불 휘는 반곱슬이라 3-4개월 간격으로 머리를 매직시술로 펴주어야 하는데, 문제는 머리카락은 또 얇고 아래로 쳐지는 모질이라 매직을 하고 난 일주일 간은 그야말로 머리가 물에 젖은 미역 같다는 것이었다. 곱슬을 펴기 위해 매직을 했는데, 매직으로 달라붙은 머리를 다시 자연스럽게 띄우기 위해 넉넉히 2주를 소요해야 하는 이 말도 안 되는 곱슬 지옥. 그것은 아무리 경험해도 짜증나는 지난한 과정이었다.
그런데 희한하게 이 B실장님에게서 매직을 받은 이후부터는 매직을 해도 머리가 젖은 미역처럼 달라붙지 않았다는 것이다. 첫 시술에서는 인지하지 못했고, 그것이 서너 번 반복되었을 때서야 나는 비로소 인지하게 되었는데. 알고 보니 B실장님이 이런 내 모질까지도 고려해 모발이 자라나는 반대 방향으로 둥글게 매직을 해주고 계신 것이었다. 어쩐지! 희한하게 곱슬은 펴지면서도 전체적으로 머리에 볼륨감이 살아 있더라니. 근 20년을 매직을 해왔음에도 이렇게 시술할 수 있다는 사실 자체를 몰랐는데, 나를 면밀히 파악하고 이해해 주신 B실장님 덕분에야 나도 깨닫게 된 것이었다.
작은 관계들이 주는 일상의 힘
얼마 전에도 오랜만에 B실장님을 찾아 매직을 했다. 아니나 다를까 이번에도 곱슬기만 마술처럼 펴졌고, 볼륨은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나를 잘 이해하는 헤어디자이너 선생님, 내 손에 피를 내지 않는 네일숍 사장님, 자주 가는 단골 카페의 친절한 직원, 나만 보면 서비스를 주시는 맛집 사장님 등등. 이런 분들은 내 삶에서 가히 대단한 인연이라고 할 수는 없겠지만, 내 일상을 풍요롭게 해주는 참 감사한 인연들이라는 생각이 든다.
오늘은 이런 일도 있었다. 유튜브 촬영을 할 때면 자주 찾던 스튜디오가 하나 있었는데, 정말 오랜만에 이용하게 되었다. 거의 두 달만이었을까. 그런데 내 이름이 특이해서였을지, 나를 기억한 사장님이 이렇게 연락이 오셨다. 문을 열어두었으며, 뒤에 손님이 없으니 1시간 더 이용해도 된다고. 이 작은 친절에 기분이 좋아, 스튜디오를 평소보다 더 꼼꼼히 치우며 돌아 나왔다. 그리고 생각했다. ‘더 자주 이용해야지’
믿고 나를 맡길 수 있는 단골 가게들이 있다는 것. 그 작은 신뢰관계가 일상을 조금씩 밝게 물들이기에, 사람에 치여 힘이 들다가도 인연의 감사함을 문득 문득 깨닫는다. 조금만 둘러보면 세상에는 참 좋은 사람들이 많은 것이다.
고민 많고 마음 여린 어른이들을 위해 따수운 글을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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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 결혼 힐링 에세이 『사연 없음』
현실 직장 생활 에세이 『어쩌다 백화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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