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받기 싫은 마음 누구나 똑같지, 근데 나는 과연 따뜻한 사람이었을까?
나한테는 왜 이리 나쁜 사람이 꼬일까
나는 살면서 왜 이렇게 나쁜 사람들을 많이 만났을까 원망을 했던 적이 있었다. 자기 연민이 하늘을 찌르던 시절이었다. 돌이켜보니 원망할 필요가 없었다. 첫째는 내가 사람 보는 눈이 없었기 때문이고, 둘째는 나 역시 그만큼 좋은 인간이 아니었기 때문이었으니까. 나이가 들며 서서히 사람 보는 눈이 생기고, 스스로를 정돈하고 개선해 나가자 끼리끼리가 과학이라는 말처럼 나의 인간관계는 전보다 훨씬 나아졌다.
세상을 향해 원망을 쏟아내던 시기를 지나, 스스로를 멀찌감치서 들여다볼 기회가 생기자 그동안은 하지 못했던 생각을 하게 되었다. '과연 나는 타인에게 얼마나 좋은 사람이었을까' 생각의 결과는? 말해 뭐 하겠는가. 당장이라도 숨고 싶을 만큼 부끄러운 기억이 많았다. 좋은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상처받고 싶지 않아 하면서도, 정작 나는 내가 힘들고 피곤할 때 타인을 향해 어김없이 이빨을 드러내는 모순 덩어리였으니.
다음 사연들은 과거의 이기적인 나를 반성하고, 더 나은 관계를 위한 앞으로의 각오를 다지기 위해 짚어보는 사연들이다.
1. 편의점 사장님, 무책임했던 저를 용서하세요
집에서 15분 남짓 거리에 있는 프랜차이즈 편의점에서 일한 적이 있었다. 밤 12시부터 다음날 아침 7시까지 밤을 꼴딱 새우며 근무하는 조건이었지만, 당시 절박했던 나는 남자들만 지원하는 야간 자리에 덜컥 지원을 했다. 순박하게 생긴 인상이 마음에 들었을지 사장님은 단박에 나를 채용하셨는데, 죄송하게도 나는 결과적으로 그 마음에 보답하지 못했다.
처음엔 할만했다. 드라마를 정주행 하느라 잘만 샜던 밤, 편의점에서 새는 건 뭐 다를까. 응, 많이 달랐다. 여성이다 보니 스산한 새벽의 거리가 무섭기도 했지만 문제는 따로 있었다. ‘정적인 일’이라고 생각했던 것과 달리 새벽에 배송되는 물류박스를 이고 지고 나르고 제법 몸을 쓰는 일이었던 것이다. 컵라면과 과자는 할만했지만 술과 음료는 정말이지 무거웠고, 드라마를 볼 땐 잘만 흐르던 새벽은 무척이나 길게 느껴졌다. 1년은 거뜬히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한 마음은 채 3개월이 가지 않았다. 결국 나는 새 알바생을 뽑을 때까지만이라도 있어달라는 사장님의 부탁도 들어드리지 못한 채 관두게 되고 말았다. 아직까지도 나는 그 근처를 지나가지 못한다. 켕기는 사람의 업보다.
2. 백화점 동생들아, 나는 원래 무서운 언니가 아니야
평생을 통틀어 언제 가장 날카로웠느냐 묻는다면, 나는 단연 백화점 데스크에서 일하던 시절을 꼽는다. 서비스직에 근무하는 사람들이 왜 그리 심드렁하거나 까칠한지 열렬히 공감한 날들이었다. 나도 처음에 입사했을 땐 ‘둥글둥글하고 유순한’ 직원에 속했다. 초짜였으므로 뭐든 잘 보여야 했기에 굽신거렸던 탓도 있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손님들의 온갖 진상짓과 업무 스트레스에 푹 절여지기 전이었으니까.
하지만 한 해가 지나면서 나는 서서히 동화되었다. 스트레스로 인해 불평불만은 늘어났고, 죄 없는 손님들에게 까칠하게 대할 때도 많았다. 이런 내게 가장 피해를 본 사람들은 내 밑으로 들어온 동료동생들이었다. 살면서 단 한 번도 누군가에게 ‘무섭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 없는 찌질한 나였는데, 동생들은 어느새 나를 무서워하고 있었던 것이다. 내 기분을 건드리지 않으려 눈치 보는 동생들을 알면서도 나는 나를 바꿀 수 없었다. 내가 죽겠어서 타인에게까지 관대할 여력이 없었기 때문에. 이제야 그때가 후회된다. 그때 그 동생들은 아직도 나를 ‘무서운’ 사람으로 기억할까? 그곳이 아닌 다른 곳에서 만났다면 나는 더 잘해줄 수 있었을까? 후회해 봐야 소용없겠지만 가끔 그때의 미안함이 사무친다.
3. 이유도 듣지 못한 채 손절당한 사람들
나는 손절의 여왕이다. 잘 지내다가도 누군가와 거리를 두고 싶어 질 때가 있다. 나와 가치관이 너무 안 맞아서일 수도 있고, 그 사람이 내게 사소한 실수를 해서일 수도 있지만, 무엇이 됐건 내 마음이 갑자기 식는 것을 느끼면 나는 조용히 그 사람과 결별한다. 문제는 왜 내 마음이 떠났는지 그 사람에게 말해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말해주면 그 사람이 상처받을 것 같아서다. 손절당한 사람의 입장에서는 어처구니가 없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전할 자신이 없었다. 네가 나를 만날 때마다 너무 네 자랑을 늘어놔서 이제는 못 들어주겠다거나, 너의 지나친 부정적인 기운 때문에 나까지도 축축 쳐져서 만나기 싫다는 말을. 나는 이유를 말해주지 않는 게 내가 해줄 수 있는 배려라고 ‘착각’했고, 그렇게 조용히 내적 손절을 택해왔다.
물론 다시 그들과 연락해 잘 지내고 싶은 생각은 없다. 식은 마음이 돌아오기 힘들다는 것을 알기에. 하지만 영문도 모른 채 손절당해야 했을 그들의 당황스러움이나, 항변의 기회도 얻지 못한 억울함을 배려하지 못했던 점은 무척이나 미안하다. 최소한 알려줄 수는 있었는데. 네가 문제가 아니라, 우리의 관계가 거기까지였노라고. 너와 내가 달랐을 뿐이라고. 손절에도 다양한 방법과 배려가 있다는 걸 그때는 몰랐던 탓이다.
원래 사람은 이기적인 동물이지만 그럼에도..
사람은 원래 제 손톱 밑의 상처가 제일 아픈 법이라지 않던가. 이렇게 돌이켜보니, 살면서 나는 ‘좋은 사람’이 내게 다가오기만을 바랐을 뿐, 나 스스로가 ‘좋은 사람’인지에 대해 깊이 생각한 적은 없다는 걸 깊이 깨닫는다. 나의 모자람을 발견할수록 대단하게 느껴지는 건, 내가 아무리 모나게 굴어도 내 곁을 지키고 버텨주는 나의 사람들이다. 나를 내칠 수도 있었을 텐데, 그들은 어떻게 매번 나를 용서하고 한번 더 믿어보기로 한 걸까.
그들을 통해 나를 돌아본다. 그리고 자주 부끄러워한다. 나를 판단하지 않는 마음, 나를 지겨워하지 않는 마음, 나의 작은 실수를 그저 실수로 덮어두는 마음. 그 사려 깊음에, 나는 오늘도 더 좋은 사람이 되어야겠다 다짐한다. 물론 쉽지 않은 일이다. 그래도, 매일 조금씩 한 발자국을 떼는 것이 중요하다고 믿는다.
고민 많고 마음 여린 어른이들을 위해 따수운 글을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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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 결혼 힐링 에세이 『사연 없음』
현실 직장 생활 에세이 『어쩌다 백화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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