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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따수운 작가 우듬지 Feb 06. 2023

학창시절 나 괴롭힌 연진아
잘 지내고 있니?

<더 글로리>를 보며 느낀 내 기억 속의 연진이들, 잘 살고 있을까

인스타그램 @woodumi

   

사진출처:넷플릭스



<더 글로리> 고데기 고문 실화라더라?


요 몇 달 사이 넷플릭스를 뜨겁게 달군 드라마 <더 글로리>를 안 본 사람이 있다면 아마도 간첩일지 모른다. 학창 시절 자신을 비인간적으로 학대하고 괴롭혔던 동창 ‘연진’을 향해 차근차근 복수의 스텝을 이어나가는 어떤 여성의 이야기다.           


어디 어린 시절에 소위 일진이라는 애들의 그늘을 안 겪어본 이가 있을까. 물리적인 괴롭힘까진 아니더라도, 하다못해 빵셔틀을 하거나 그 애들에게 밉보일까 눈치 본 경험 정도는 누구에게나 있을 거라 생각한다. 하지만 드라마가 화제가 된 건, 주인공 여성인 ‘동은’이 겪은 학교 폭력이 보통의 수준이 아니기 때문이다. 극속의 ‘연진’이라는 가해자는 마땅한 이유도 없이 자신의 눈에 들어온 동급생 동은을 악의적으로 괴롭히는데, 그중에서도 가장 끔찍한 괴롭힘은 단언컨대 펄펄 데워진 고데기로 동은의 몸을 지지는 일이었다. 본적도 들은 적도 없는 학폭의 수위에 그만 입이 떡하니 벌어지고 만다. 드라마니까 그렇겠지, 하고 치부했던 이 고데기 고문은 놀랍게도 청주의 어느 중학교에서 실제로 일어났던 일이라고 했다.    

       

다행히(?) 드라마에서는 복수의 칼날을 갈아온 피해자로부터 학폭의 가해자가 앙갚음을 당하는 방향으로 흘러가고, 시청자는 그 복수의 과정을 지켜보며 카타르시스를 연신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드라마는 드라마일 뿐이다. 실제 고데기 고문을 당했을 피해자가 가해자를 처단했다는 뉴스는 접해보지 못했으니까. 뿐만인가, 세상의 수많은 학폭 가해자들이 법적 처벌이든 사적인 복수든 경험하지 않고 ‘잘만’ 살아가고 있음은 자명하다. (요즘에 들어서는 사회적 매장 분위기가 생겨났지만) 실제로 한 조사에 따르면, 학교폭력을 경험하는 학생들의 절반 가량이 복수는 고사하고 피해 사실을 주변에 알리지조차 않는다는 결과가 있었다. 어쩌면 이러한 씁쓸한 현실 때문에 드라마의 복수과정이 더 쾌감 있게 와닿았던 걸지도 모르겠다.     

     



사진출처:핀터레스트



누구에게나 연진이가 있지


학교폭력이라 할만한 이슈는 없는 감사한 학창 시절을 보냈지만, 내 기억 속에도 또렷이 자리 잡고 있는 일진 아이들은 몇몇 있다. 바야흐로 내가 중학생이던 시절, 옆학교에는 질 나쁘기로 유명하다는 J라는 아이가 있었다. 그 애는 그 학교에서 뿐 아니라 무려 행정구역 단위인 ‘D구’ 차원에서 이름을 날리는 애였다. 어느 날 나는 방과 후 친구들과 놀다가 집에 들어가는 길에, 소문으로만 전해 듣던 그 애를 마주친 적이 있었다. 유명한 아이니 나도 모르게 쳐다보게 되었는데, 그 애는 내가 쳐다보기가 무섭게 “뭘 야려 개년이...”라고 내뱉고는 나를 스쳐 지나갔다. 맞지 않은 걸 감사해야 하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주 짧은 순간이었는데도 그 기억이 강렬하고 무서워 며칠 동안 곱씹었던 기억이 난다.           


세월이 흘러 30대가 되어서 우연히 동창으로부터 그 애의 소식을 들은 적이 있었다. 워낙 오래전 기억이라 내 관심사에 속한 적도 없었고, 미안하지만 워낙 놀던 아이라 보나 마나 막장 인생을 걸었을 거라 생각했었다. 그런데 동창이 인스타그램으로 보여준 그 애의 삶은 너무도 충격이었다. 술과 담배와 싸움과 정학으로 도배된 학창 시절을 보냈던 그 아이가, 멀쩡히 결혼을 해서 아이까지 낳았으며 심지어 유치원 교사로 일하고 있는 것이었다. 유치원 교사? 나는 그만 어이가 없어서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물론 편견은 갖지 말아야 할지어다. 그렇게 질 나쁘던 아이라고 개과천선을 하지 못하리란 법은 없으니까. 하지만 어쩔 수없이 드는 생각은, ‘역시 현실에 권선징악 따위는 없구나’ 하는 씁쓸한 생각이었다. 어릴 때 기억과는 달리 무척이나 청초한 얼굴로 아이와 찍은 J의 사진을 보며, 기분이 참으로 이상했다. 방황했던 과거를 접고 반듯한 궤도에 오른 그 애의 삶을 축하해줘야 할지, 수많은 영혼들을 갈취하고 조롱하던 주제에 벌 받지 않았음을 개탄해야 할지 혼란스러웠기 때문이다.     




사진출처:핀터레스트



네가 잘 살든 못 살든 내 알바는 아니지만


물론 나는 그 애와 직접적 연관이 없으므로 그 애가 잘살든 못살든 내 알바는 아니다. 하지만 그 애에게 직접적으로 괴롭힘을 당했던 아이들이 그 소식을 듣고 어떤 기분이 들었을지는 내심 걱정이 되었다. 완벽하게 과거를 세탁해, 자애로운 유치원 선생님이자 한 아이의 엄마로 살아가고 있는 모습을 보며 어떤 무기력함을 느끼지는 않았을까.           


어렸을 땐 참 순진한 생각을 했다. 저렇게 무서운 애들, 노는 애들은 다 벌을 받거나 교도소나 들락거리며 형편없이 살 거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그건 영화나 드라마를 통해 학습한 규칙일 뿐 현실은 언제나 불규칙하지 않던가. 형편없이 몰락하는 애도 있었지만, 보란 듯 잘 사는 아이들도 참 많았다. 어떤 경우엔 ‘어린 시절 철이 없었다’는 말로 과거의 경험이 가볍게 회개되기도 했다. 


꼭 J 뿐만은 아니다. 고등학교 시절, 장애가 있던 동급생 얼굴에 침을 뱉었던 A라는 아이는 현재 벤츠를 몰며 잘만 살고 있으며, 대학시절 몽골유학생에게 사정없이 쌍욕을 해대던 K라는 아이는 유명항공사의 스튜어디스가 되어 기내에서 ‘친절’을 서비스하고 있다. 그런데 참 이상하다. 가해자가 잘 산다는 소식은 몇 다리만 건너면 쉽게 들리지만, 피해자가 잘 산다는 소식은 어쩐지 들려오지 않는다. 괴롭히던 애들은 만천하가 알도록 잘 사는데, 상처 입은 숱한 영혼들은 지금쯤 어디서 어떻게 살고 있는 걸까. 보이지 않을 뿐 잘 지내고 있는 거라고 믿고 싶은데...,        

  



사진출처:핀터레스트



그 시절에만 통용되던 권력


돌이켜보면 학창 시절은 참 치열했던 것 같다. 아침부터 밤까지 공부를 해야 했던 건 둘째 치고, 뚜렷한 권력 사이에서 희생자가 되지 않으려는 생존본능이 그 어느 때보다 강했기 때문이다. 새 학기가 되면 행여라도 무서운 애들에게 찍히지 않을까 노심초사해야 했고, 그 애들의 눈밖에 나지 않으려 늘 마음 한편에는 ‘나대지 말아야지’하는 각오가 들어있었으니. 나는 잘 피해왔으며 늘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지만, 그럼에도 누군가는 끝끝내 괴롭힘을 당했겠지, 동은이처럼.     


성인이 된 이 세상의 질서는 그때와는 사뭇 다르기에, 이제 누가 더 술을 잘 마시고 담배를 잘 피우느냐 싸움을 잘하느냐는 더 이상 권력의 도구가 되지 못한다. 당연히 나 또한 새로운 질서 앞에서 그때처럼 눈치 보고 살 필요가 없어졌다. 하지만, 어린 시절의 기억은 참 강력하다. 가끔 인스타그램을 통해 훔쳐보는 그 애들에게서 아직도 모종의 위압감이 느껴지는 걸 보면 말이다. 사라지지 않은 기억 속의 권력. “미안한데 나는 더 이상 그때의 찐따가 아니야”라고 말한들, 왠지 그 애들은 아직도 나를 보고 코웃음을 칠 것만 같다. 다만 소심하게 바랄 뿐이다. 그 애들이 가족과 함께 <더 글로리>를 보며 편하게 웃지만은 못했기를.           



                





고민 많고 마음 여린 어른이들을 위해 따수운 글을 전합니다.



■ BOOK

연애 결혼 힐링 에세이 『사연 없음

현실 직장 생활 에세이 『어쩌다 백화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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