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에 대한 상념

비가 내리면 짜증부터 나는 1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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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에서는 '전국적으로 비가 온다'라는 말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한다. 워낙에 광대한 대륙이니까. 하지만 오늘 중국인들의 입장이 이해가 됐다.


나는 세종시에 살고 있는데, 대전에서 친구들을 만나고 세종 집으로 넘어가는 길에 갑자기 폭우가 쏟아졌다. 최근에 본 빗방울 중에 가장 굵었으며 이러다 홍수가 나는 건 아닌가 싶은 무지막지한 비였다. 양산 겸 우산으로 들고 다니는 내 작은 우산으로는 어림도 없어 보일 만큼 큰 비에, 나는 도저히 버스와 지하철 그리고 다시 버스로 이어지는 귀갓길을 감당할 자신이 없어 엄마를 호출했다.


그런데 대뜸 전화를 받은 엄마가 "거기 비 와?"라고 묻는 게 아닌가. 이미 엄마가 퇴근한 세종 집에는 전혀 비가 내리지 않는다고 했다. 나는 미친 듯이 퍼붓는 비에 발이 젖은 상태였다. 세종에서 차로 겨우 20분 정도 떨어진 이 곳 대전 반석역에는 세상이 종말 할 것처럼 비가 오는데, 세종시는 멀쩡하다니. 소의 등 앞 뒤 사이로 비가 오고 안 오고 한다더니 정말 그런 모양이었다.


어쨌든 빗줄기의 위력에 나는 기어이 비가 안 온다는 곳에 편히 있던 엄마를 호출했고, 조금 편하게 집에 갈 수 있었다. 그런데 정말로 집 근처에는 한 방울의 비도 내리지 않은 마른 아스팔트 바닥만이 있었다. 바로 전 동네에 쏟아붓던 비가 거짓말 같을 정도로 말이다.


이만큼 나이를 먹고도 아직도 빗줄기 하나에 어린아이처럼 엄마를 찾는 나는 과연 불효녀다. 그치만 나는 어릴 적부터 비 오는 것이 참으로 싫었다. 물론 집에서 쾌적한 상태로 있을 때 밖에 내리는 비를 구경하는 것은 가끔 운치 있기도 하고 알 수 없는 감성을 불러일으키기도 하지만, 실외로 나가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어딘가로 이동할 때마다 우산을 펴고, 접는 그 귀찮은 과정. 우산을 접고 들어가는 그 짧은 몇 초 사이에는 반드시 정수리에 빗물이 강타한다. 정수리에 떨어진 빗방울이 두피를 타고 흘러내리는 그 끔찍한 느낌이란.


발은 또 어떤가. 비가 올 것을 예상하고 발이 뻥 뚫린 슬리퍼나 샌들을 신었다면 모를까, 운동화나 젖는 재질의 구두를 신었다간 엄청나게 찝찝한 상태의 발을 경험하게 된다는 것.


그뿐만이 아니다. 빗줄기가 세다면 바지의 하단은 젖기 마련이고, 작은 우산으로는 커버되지 않는, 등에 맨 가방이나 핸드백의 모서리도 운이 나쁘면 비의 침범을 당하고 만다. 결국 비에 몸의 일부분이 젖는다는 것은 인간에게 엄청난 불쾌함으로 작용한다.


아까 집에 올 때에는 세종시에 비가 오지 않았는데, 지금은 세종시에도 비가 내리고 있다. 이제 정말 전국적인 호우인 모양이다. 중국인들은 이해하지 못할.


비가 싫다고 할 때마다 나의 엄마는 이렇게 말하곤 한다.


"아이고 비가 와야 풀들도 목을 축이지. 비는 와야 해"


해마다 듣는 엄마의 이야기지만, 비가 귀찮고 싫은 나는 아직도 엄마의 말이 낯설다. 그리고 사람이 아닌 식물까지 생각하는 생태학적인 엄마의 사고가 조금 존경스럽다. 그래, 엄청난 더위에 풀과 나무들은 메말라가고 있었을 텐데, 인간이 이다지도 귀찮아하는 비는 식물들에겐 얼마나 반가운 존재일까. 거기까지는 차마 생각이 발전하지 못하는 나는, 엄마의 그 말 덕분에 비의 정당한 존재 이유에 대해서 잠시나마 생각해본다.


그렇지만, 매우 이기적인 인류의 개체로서, 부디 내가 집에서 편히 자는 동안에 식물이 필요한 만큼의 비가 충분히 내려주길, 그리고 내가 내일 일어나 도서관을 가기 전에는 뚝 그쳐주길 기도해본다. 내일마저 발이 젖기는 정말 싫다. 아무래도 나는 비와 친해질 수는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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