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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장고 푸른 숲

한 입의 위로

우리집 냉장고엔 푸른 숲이 있다. 삭막한 도시에서 싱그러운 자연이 그리워서일까? 신선한 잎사귀, 채소들은 나의 그리움을 채운다. 2년 전 채식을 결심하고 나서부터 고기는 절대 먹지 않기로 했는데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사람들 사이에서 이리저리 부대끼는 날엔 꼭 고기가 먹고 싶다. 육즙이 착착 흐르는 기름진 맛은 잊을래야 잊을 수 없는 법. 먹자마자 도파민이 쫙쫙 나오는 쾌락적 식사는 이미 과학적으로 입증된 바 있다. 비만을 연구하는 여러 논문에서 행동학적, 심리적인 이유로 많은 사람들이 기름진 것, 고칼로리의 음식을 선호한다는 결과다. 그리고 이런 쾌락적식사는 중독성으로 이어진다.


하루 한 끼는 꼭 비건으로 먹기로 나와 약속했지만 이건 고기를 먹기 위한 치졸한 명분에 불과하다. 결국 육고기는 제외하고 생선까지 먹는 페스코 채식으로 나와 합의를 봤지만 셀프 약속이 잘 지켜질리 없다. 특히 고기를 좋아하는 남편의 식사를 챙기다보면 단단했던 약속이 담장 허물어지듯 흐트러져버린다.


고기를 꼭 먹어야 한다는 남편은 영양사인 나에게 영양소 불균형에 대해 운운한다. "뭐든지 골고루 먹어야지." 그렇다. 이건 나도 잘 알고 있다. 영양사 선생님 누구를 만나든 똑같이 이야기 할 것이다. 동물성에서만 얻을 수 있는 특별한 영양소들이 있고 설사 식물에서 얻는다해도 더 많은 양을 먹거나 쉽게 얻어지지 않는 것들도 있다.


하지만 건강하게 먹으려면 어떻게 먹어야 하는지는 AI도 얘기할 수 있지 않을까? 몇 년만 지나면, 아니 그보다 더 짧은 시간 안에 전문가보다 더 상세히 얘기해 줄 날이 머지 않았다. AI영양사, AI의사, AI변호사. 인공지능들은 전문적인 지식을 쌓으며 건강해지는 법, 재판에서 승률이 오르는 법 등을 착착 연마해나갈 것이다.


난 이런 인공지능이 아니다.


사람으로서 드는 양심과 후회, 죄책감들은 그동안 나를 채워왔던 쾌락적 식욕에 대한 반성일 것이다. 내 건강을 조금이라도 더 양보하고 다른 사람들과 함께 살아갈 수 있다면. 누군가 숨이 끊어지는 순간에도 나의 건강만 지키려는 이기심과 욕심들이 난무하는 세상이라면 그건 아마 야만의 세상일 것이다.


홍수 속에 떠밀려 가는 스리랑카 사람들을 보면서 죄책감이라는 감정이 고개를 떨구게 만들었다. 불구덩이 속에서 괴롭게 울부짖으며 죽어가는 코알라의 눈물은 나에게 인간으로 태어났다는 미안함을 안겨주었다.


그리고 몇 년이 지나지 않아서 그런 고통들은 해외에서 국내로, 동물에서 사람으로, 먼 이웃에서 친척으로 다가왔다. 시간차이만 있을 뿐 곧 나와 가족의 일이 될 것이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생태계라는 하나의 고리로 연결돼있다. 멀게만 느껴지는 누군가의 과거는 곧 나의 미래로 이어진다.


나는 나만 건강하게 살고자 하는 이기심이 미래세대의 기회마저 빼앗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인간으로서 깊은 고민에 빠질 때가 많다. 90세를 살든, 100세를 살든, 120세를 살든 나이 듦에 대한 귀중한 가치를 이기심에 쏟고 싶지 않다. 그래서 내가 가진 얄팍한 지식이나마 나만의 건강과 이기심을 채우는 도구가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건강하게 먹고 사는 법은 TV만 켜도, 유투브를 봐도 홍수처럼 쏟아진다. 그런 홍수들은 어쩌면 가엾은 스리랑카 사람들을 죽음으로 몰아간 이기심의 홍수인지도 모른다. 그 속에서 나는 죄책감을 느낀다.


영양소의 균형을 운운하기엔 나는 너무 야만적으로 잘 먹어 왔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쾌락만을 채워왔던 식사는 내 몸을 돌보지 않았다. 심지어 내 주변, 멀리 나아가서는 지구를 함께 공유하는 다른 생명들을 죽음으로 내몰았다.


SNS가 활개치는 오늘날, 주변을 향한 무관심은 곧 야만이라고 생각한다. 인간적이지 못 한 것, 욕심과 야만으로 채워갔던 나의 뱃 속에 한 입이 푸릇한 미소는 위로가 된다. 마음도 몸도 푸른 숲으로 채워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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