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기디톡스로 나아가기 위한 채식더하기
3년 전 채식지향을 결심했다. 하루 한끼는 비건, 전반적인 식사는 페스코채식. 혼자서 하는 일은 어렵지 않았다. 남편이 출근하면 첫끼는 간단히 비건으로, 그가 들어오기 전에는 생선을 구워 저녁을 먹었다.
남편이 밤늦게 퇴근하면 따로 상을 차렸다. 그가 좋아하는 스팸을 굽고, 소시지도 구웠다.
건강을 생각하면 해주고 싶지 않았지만 고생 끝에 마주하는 따끈한 집밥에 스트레스를 주고 싶지 않았다.
햄, 소시지, 육류가공식품. 남편은 동물성 가공식품을 너무나 좋아한다.
'어차피 따로 먹는 밥상이니까.'
이때만 해도 우린 식구가 아니었나보다. 각자의 밥상은 겹치지 않았다. 그래서 먹을 걸 가지고 갈등을 빚으리라는 건 생각조차 못 했다.
문제는 남편이 가게를 정리하고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생겼다. 이제는 함께 마주해야하는 밥상. 남편이 주문한 식재료는 나의 냉장고를 뒤바꿔놓았다.
아니, 처음부터 나의 냉장고가 아니라 '우리'의 냉장고였던 것을. 함께 먹고 산다는 건, 나의 공간을 일부 떼어내서 공유하며 살아간다는 뜻이었다.
더군다나 남편의 발가락이 뿌러지고 나서부턴 칼슘섭취를 위해 우유를 주문하기 시작했다. 영양소 보충을 위해 계란도 주문했다.
페스코 채식의 범위는 우유와 계란도 허용하고 있음에도 난 그것들을 보면 죄책감이 들었다. 그래서 왠만하면 자제하고 싶었는데. 그렇게 식재료의 범위가 넓어져버렸다.
비단 남편 뿐만이 아니라 세상엔 너무도 다양한 사람들이 산다. 그리고 아직 채식에 대한 편견과 이상한 고정관념을 갖고 있는 사람도 많다.
그리고 채식이 무조건 건강하리라는 잘 못 된 믿음도 많다. 난 무엇을 해야할까? 나조차도 잘 지키지 못하는 혼자만의 채식이 과연 소용이 있는 걸까? 마음 속에 작은 폭풍이 일었다.
환자인 남편은 올해 말 발가락에서 나사를 빼는 2차 수술을 앞두고 있다.
세상엔 다양한 사람, 다양한 식생활이 존재한다.
고른 영양소가 필요한 병환자, 풍부한 단백질 섭취가 필요한 노인. 임산부는 말할 것도 없고 임신을 준비해야 하는 가임기 여성. 성장기 어린이들은 물론 청소년까지.
본인들이 원한다고 해도 이런 분들에겐 채소만 먹는 것을 권하고 싶진 않다. 하지만 건강하면서도 영양적으로 균형잡힌 다양한 채식이 존재한다는 건 알리고 싶다.
더군다나 충분하지 못 한 채소섭취로 인해 영양불균형이 일어나는 일도 있다. 비만이나 고혈압, 당뇨의 원인은 일부 이런 것 때문일 수 있다.
많은 사람이 공감하고 실천가능한 채식. 다양한 채식으로 채식이 조금 더 대중화 된다면 어떨까? 채식에 대한 편견을 벗겨주고 싶었다.
내 주변엔 채식에 대한 이상한 편견과 고정관념을 가진 사람들이 많다. 채식하면 무조건 비건을 떠올리고, 엄격하게 지켜야 한다는 생각때문에 시작조차 두려워하는 사람들도 있다.
"오늘 회식하셨어요? 그럼 내일부터 다시 페스코 채식하시면 됩니다."
"명절이라 고기 많이 드셨나요? 그럼 샐러드로 가볍게 드시는 건 어떨까요?"
채식에 정답은 없다. 실패해도 괜찮다. 자신만의 스타일을 만들어 가는 것도 한 가지 방법이다.
채식을 시작하려는 누군가에게, 실패할까봐 시작하지 않은 사람들에게 용기를 주고 싶다. 실패로 넘어지면 다시 일어서면 된다고.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면 실패가 아니다. 진짜 실패는 모든 걸 포기했을 때다. 나의 채식도 여전히 진행 중이다. 다만, 아무것도 하지 않았던 과거가 내 채식의 흑역사였다고 말하고 싶다.
채식에는 7가지가 있다. 식물성만 먹는 비건, 유제품까지 먹는 락토베지테리언. 달걀과 식물성만 먹는 오보, 이 둘을 함께 먹는 락토오보. 생선까지 먹는 페스코, 붉은 육류는 제외한 닭고기까지 먹는 폴로.
그리고 붉은 고기까지 다양하게 먹는 플렉시블 베지테리언. 고기만 먹고 채소는 먹지 않는 사람은 베지테리언이 아니다. 채소까지 골고루 먹어야 베지테리언이다.
항상 공부한다는 마음으로 채식을 대하려한다. 난 아직 배울게 많다.
'난 뭐 때문에 채식을 하는걸까?'
처음 야심차게 시작했던 '완벽한 비건'은 1일 1비건으로. 고기에 대한 욕구는 생선까지 먹는 것으로 스스로와 합의했지만 절대 완벽할 수 없었다.
남편과의 다툼도 잦아졌고, 여러 사람들과 어울려 산다는 건 그만큼 다양하게 먹어야한다는 의미였다. 특히 페스코 채식임에도 선택에 한계가 있는 외식은 정말 고역이었다.
먹을 것으로 자신만의 신념을 지킨다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완벽한 비건인 척, 신념을 제대로 지키고 있는 척. 거짓말로 누군가를 속이고 싶진 않다.
솔직하게 나의 경험을 반성문 삼아 이야기하고 조금 더 발전된 식생활을 만들어 나가고 싶다.
그래도 3년 전을 바라보면 고기 섭취량은 확연히 줄었다. 다양한 채소와 콩, 두부가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먹을거리가 더 풍부해졌다.
"채식은 왜 하는 거야?"
이 전자책을 준비하면서 연습장에 그림을 그리고 있는데 남편이 옆에 와서 물었다. 그림에 열중하고 있던 터라 내가 뭐라고 답했는지 기억이 안나지만 결론은 이것이었다.
"고기 디톡스."
그동안 먹어왔던 삼겹살, 소고기, 치킨을 대신해서 몸을 가볍게 비우는 것. 너무 차고 넘치게 먹어서 이제는 좀 안 먹어도 되겠다싶었다.
대신 빈자리를 싱싱한 채소들로 채우고 싶었다. 몸과 마음을 더 가볍게. 자연, 숲과는 더 가깝게. 그리고 또 하나의 이유는 '건강' 이다. 나의 건강도 중요하지만 '지구의 건강' 때문이라고 남편에게 이야기했다.
이번 여름 겪었던 극한의 더위를 남편도 느껴보지 않았냐며. 3년 간 채식지향하면서 내가 얘기했던 건 한 귀로 흘려들었냐며. 이제와서 기후변화를 직접 체감해보니까 발등에 불이 떨어진 것 같냐며.
고기 좋아하시는 당신의 발가락을 붙이면서 함께 할 수 있는 7가지 채식을 준비하고 있다며... 남편을 째려봤다.
"신념이군."
그동안 나를 지켜봐왔던 남편이 이렇게 말해줬다. 비건이라는 말에 발작버튼이 눌리던 사람이.
게다가 내가 함께 고기를 안 먹어주면 자신도 죄책감이 든다며 입이 대빨 튀어나오던 사람이. 하지만 신념이라고 이야기하기엔 너무 이르다. 신념이란 죽을 때까지 지켜야하는 법, 그 말은 나중에 내가 죽을 때 해줘라 남편아.
나 혼자하는 채식은 화탕지옥 같은 여름이 불바다로 가는 것을 지연시키기엔 역부족이다. 하지만 가볍게라도 채식을 실천하는 여러사람 모인다면 어떨까?
10명, 100명, 1000명, 만 명....?
소고기 안창살이 모여 갈비와 내장을 연결하고, 우족이 모여 뒷다리가 되고. 이렇게 소 한마리를 살리고. 제품처럼 빠르게 소비되던 소고기, 돼지고기가 천천히, 조금은 덜 생산된다면 이산화탄소도 줄고. 산불도 덜 나고,
숲도 더 헤치지 않아도 되고.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방식에서 최소한의 것을 최대로 실천하고 싶다. 그리고 혼자만의 채식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같이 할 수 있는 방식이었으면 좋겠다.
소 한마리에서 숲을 살리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