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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야기 빚는 영양사 Feb 12. 2022

요즘 내가 판관포청천을 다시 보는 이유

포청천에서 사법부 민주화를 보다

"개작두를~ 열어랏~!!"

서릿발 같은 위엄있는 목소리로 '개작두'를 외치는 포대인에게서 나는 묘한 카타르시스와 후련함을 느낀다. 그건 어렸을 때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1990년대, 대만드라마

내가 요즘 다시 보고 있는 '판관포청천' 시리즈는 1990년대에 대만에서 방영된 드라마로 우리나라에선 1993년 인기리에 방송 돼 국민적 사랑을 받았던 외화시리즈다.


난 당시 초등학생으로 늦은밤 방영되던 포청천을 보기 위해 12시가 다 되도록 잠을 자지 않았고, 당연히 다음날 천근만근 절대 떠지지 않는 눈꺼풀을 억지로 떼가며 지옥 같은 고통 속에서 학교에 가야만했다.



#말도 안 되는 이야기, 촌스러운 CG

그 당시엔 느끼지 못 했지만 지금 보면 엄청나게 후잡(?)스러운 CG는 기괴할 정도로 이상해서 지금으로선 도저히 봐줄 수 없는 수준이다.


게다가 흐리멍텅한 화질과 잘 맞지 않는 화면 비율. 하지만 난 거기서도 색다른 즐거움을 느낀다. 90년대 비디오 콘텐츠에서만 느낄 수 있는 그 시대만의 촌스러움랄까?  


아무튼 지금으로선 도저히 봐줄 수 없는 CG와 시작부터 김이 빠지는, 너무도 뻔한, 그러면서 가끔 가다 어이없기까지도 한 말도 안 되는 스토리전개라인.


사건이 시작하자마자 모든 진상을 낱낱이 꾀고 있는 포대인은 지금으로 따지자면 FBI에 행동심리학전문가+수준급 프로파일러+심리를 꿰뚫어 보는 신묘한 힘?이 있는 자가 분명하고


물론 논리정연한 질문과 허를 찌르는 그의 심문은 역시 후대에도 칭송 받을 만한 명판관임이 분명하지만 어쨌든 드라마 내용 상 죽은 사람이 귀신으로 나와 포대인 앞에서 증언을 할 때도 있는 해괴망측한 부분도 있는 게 사실이다.   


포청천의 개가 아니냐? 는 악당의 질문에 '나는 고양이다!' 라고 답하는 전조. 그는 황제가 임명한 어묘, 즉 황제를 지키는 고양이(호위무사) 다.


#공손책, 전조는 어떻고?

또 그 옆에 있는 공손책은? 지금으로 따지자면 CSI가 할 일을 혼자서 다하고, 도학에도 뛰어나 온갖 도술도 부리며 (부적으로 귀신, 요괴도 잡음) 약학, 의학, 역술...드라마를 보다 보면 엄청난 지략과 도서관 하나를 머리 속에 이고 사는 듯한 박학다식이 소름돋게 만든다.


전조는...말이 길어 지니까 여기서 그만 멈추겠다. 그냥 그는 엄청나게 잘생긴 불사의  같다. (그러다가 꼭 부상을 당하면 예쁜 여자 앞에서 쓰러진다.) 이렇게 말도 안 되며 시각적으로도 어마어마한 노동력과 댓가를 치르고 있음에도 난 왜 판관포청천을 보는 것일까?


내가 생각하는 판관포청천의 명언들


#저스티스 바오(JUSTICE BAO), 정의를 얘기하다

얼마전에 안 사실인데 판관포청천을 영어로 하면 '저스티스 바오(JUSTICE BAO)란다. 놀랍기도 하면서 대학시절 주구장창 읽었던 마이클샌델 교수의 '정의란 무엇인가?(JUSTICE)'가 생각났다. 그리고 내가 지금에와서 다시 판관포청천 시리즈를 찾는 이유는 '정의', '공정'과 맞닿아 있음을 깨달았다.


요즘 뉴스를 보다보면 가슴이 답답해지면서 기분이 우울해진다. 누가 잘 못한 일인지 뻔한 일인데 벌 받아야할 사람은 제대로 벌 받지 않고 특히나 사회고위층이나 고위직공무원, 경제력 있는 고위층 일수록 의 무게가 깃털처럼 가볍다는 게 사람을 열받게 한다. (유전무죄, 무전유죄는 정말 시대의 명언이다.)

 

사람마다 법이 다르다면, 세상에 무슨 정의가 있겠소?

국민들은 바보가 아니다. 다 알고, 다 지켜보고 있다. 다만 표현하지 않을 뿐이다.



#포청천, 송나라 시대 사법부 AI?

예전엔 아버지가 왜 뉴스보다 욕을할까? 생각했는데 지금은 내가 욕을 하면서 뉴스를 본다. 오늘 뉴스엔 원청 대표가 무죄 판결을 받은 고 김용균씨 사건, 대선을 앞두고 계속 회자되는 '대장동 개발 사업 논란', 김건희 도이치모터스 주가 조작 등등.


돈 좀 있다, 고위층이다 싶으면 집행유예, 무죄, 심신미약. 한층 더 강력해졌다는 음주운전 처벌법은 온데간데 없고 다시 시작된 누군가의 죽음의 질주 때문에 소중한 생명이 또 희생됐다.


누가 잘 못 했는지, 누가 벌받아야 하는 지 뻔히 들여다보이는 사건들은 제대로 조사가 이뤄지지 않고 법의 칼날은 항상 현실에선 주인공(?)의 모가지를 피해간다.



#현실 뉴스의 답답함! 포대인이 풀어준다!

황족, 귀족, 심지어 죄를 지었다면 자신의 친구, 친척들도 작두형에 처한 포대인 덕분에 난 오늘도 뉴스에서 쌓인 스트레스를 '판관포청천'을 보며 푼다.


포대인은 지방 순시를 나갈 때도 항상 작두 3종세트(용작두, 호작두, 개작두)를 싸가지고 다닌다. 과연 철면판관의 모습이다. '작두'는 포대인에게 '청렴함'과 '공정', '정의'의 상징이다.


할 수만 있다면 송나라 시대 포대인을 불러다가 우리나라 각 지방 법원에 앉히고 싶은 마음이다. 그러나 송나라 시대, 999년생이신 포대인(포증)이 자꾸 드라마화 되고


2000년이 넘은 지금에도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걸 보면 역시 우리나라도 그렇거니와 대만, 중국에서도 공정하면서 정의로운 판관은 나오기 어려운가보다.



#판관포청천에서 사법부 민주화를 보다

포청천을 보다보면 개봉부윤, 지금의 서울시장 격인 포대인법의 집행, 판결을 모두 담당하는 행정부이자 사법부였다. 그러나 시민사회에가 점차 발달함에 따라 권력은 분산됐고 오늘날은 권력기구가 나눠진 구조를 이루고 있다.


나도 우리나라가 입법부, 사법부, 행정부가 독립된 '3권 분립'의 나라라고 배웠다. 그런데 현실은 아니다. 뉴스를 보면 입법부와 행정부의 고위관료들이 죄를 판단하는 사법부와 손잡고 사건을 은폐, 형량을 낮추거나 무마 시킨다는 느낌을 받는다.


법을 세우는 입법부, 판결을 내리는 사법부, 법을 집행하는 행정부가 한통 속이 된다면 과연 정의, 공정을 이 세상에서 찾을 수 있을까? 판사들을 싹다 AI로 갈아치워서 철면판관, 송나라 시대 포대인으로 만들어 버릴 수도 없고.



#사법부 민주화 가능할까?

점점 낮아지는 성범죄 형량, 고위층에게 난무하는 집행유예, 무죄판결. 얼마전엔 '법조계카르텔'이라는 말까지 나와서 사법부 내에서도, 그리고 법조계 내에서도 은밀한 청탁과 비리, 전관예우가 암암리에 행해지고 있다는 의심이 든다.


고위직관료, 정제계 고위층들이 사법부 윗선을 손에 쥐고 흔드는 건 '사법부 민주화'가 되지 못 해서다. 입법부에 속한 국회의원 300명을 국민의 손으로 뽑고, 행정부의 수장 대통령도 국민들이 뽑는데 아직 사법부만 국민의 손으로 뽑지 못하고 있다.


아동 성범죄 형량으로 400~500년씩 때리는 미국은 이미 많은 주에서 선거로 법관을 뽑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투명한 판결, 국민의 법감정을 운운하기 전에 빨리 사법부 민주화가 되야 벌 받을 사람이 제대로 벌 받는 공정하고 정의로운 사회가 되지 않을까?


국민들이 두 눈 시퍼렇게 뜨고 법관들 뽑을 날만 기다린다면 철옹성 같던 사법부 장벽도 조금씩 낮아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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