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도라의 상자

12

“그건 세상 어디에도 없는 거야. 마지막으로 받은 선물이니까.”


짧은 침묵이 욕실의 습기를 따라 가라앉았다.

그는 입술을 깨물고, 벽에 등을 기댄 채 아주 오래 묻어둔 이야기를 꺼냈다.


“내 마지막 콘서트에서 갑자기 정전이 됐고, 무대가 무너졌어. 완전 아수라장이었지. 그때 한 소녀가 내 쪽으로 뛰어들었어. 날 구하려고. 바보같이.”


목소리가 낮게 긁혔다.


“정신을 차렸을 땐, 그 소녀가 내 눈 앞에 쓰러져 있었어. 피투성이가 된 채로. 난 그날 이후, 많은 걸 포기했어. 밴드도, 무대도, 그때의 나도.”


그는 눈을 감았다 떴다.


“더 우스운 건, 내가 그 소녀의 이름도 모른다는 거야. 병원도, 집도, 가족도. 나중에 기획사 통해 전달받은 게 저 구슬이야. 사고가 나기 전에 나에게 마지막으로 보낸 선물이라고.”


연두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군중들이 몰려들면 숨이 막혀 오는 그의 증상, 공황장애.

그녀는 이제 원인을 알 것만 같았다.


오랜 시간 그의 가슴을 짓눌렀던 죄책감. 투명한 구슬 속 문양이 그의 시간을 붙잡고 있었다.


“몰랐어. 그런 사연이 있는지.”


연두는 미안했다.


“구슬...비슷한 거라도 구해볼게.”


“됐어.”


그는 말을 짧게 잘랐다.


“이만 나가. 꼴도 보기 싫으니까.”


말은 거칠었지만, 눈빛은 금방이라도 흐트러질 것처럼 붉었다. 연두는 샤워타월로 몸을 가린 채 조용히 욕실을 나왔다.


‘꼭 말을 해도 날선 말로 남에게 상처를 줘야만 덜 다칠 수 있는 사람.’


그녀는 그의 등 뒤에서 그렇게 생각했다.


**

3층으로 돌아온 연두는 드라이기로 머리를 대충말린 뒤, 침대에 털썩 몸을 던졌다.


천장을 보며 휴대전화를 집어 들고 ‘어린왕자 콘서트 사고’ ‘해체 이유’ 같은 검색어를 연달아 찾아봤다. 포털은 깨끗했고, 대신 후계자 행보 기사만 가득했다.


사고의 흔적은 의도적으로 정리된 것 같은 느낌.


‘그날, 정말 무슨 일이 있었던걸까?’


끝없는 의문은 답을 찾지 못했다.

그에게 따져 물을 수도 있었지만 그렇게까진 하기 싫었다.


누구에게나 꺼내지 못하는 상처가 있었고 그 상처에 발을 들이려면, 기다림이 필요했다.

그리고 욕실에서의 민망한 마주침은 또 다른 기억을 남겼다.


‘발기부전은 아니었군...’


적어도 그의 몸이 보여준 사실은 그랬다.


**


밤이 오자 집은 한층 더 고요해졌다.


3층 다락방에서는 키보드가 딸깍거리고, 노트북 화면만이 그녀의 얼굴을 환하게 비췄다.

연두는 노트북을 켜고 콘서트장 사고를 다시 검색해봤다.


‘어린왕자 해체...콘서트장 사고...’


다른 멤버들의 프로필과 활동기사 모두 삭제되거나 거의 찾을 수 없었다.


고언의 기사가 검색되는 건 제일건설에 입성한 이후의 일들 뿐이었다. 기사가 의도적으로 지워진 것 같다는 찜찜한 기분이 지나갈 즈음, 연두는 가까스로 흔적을 찾을 수 있었다.


‘갑작스러운 해체...이유는 결국, 콘서트장 사고?’


손끝이 미세하게 떨렸다.


오래 잠겨 있던 판도라의 상자가 열리려는 것처럼, 화면 속 기사들이 서늘하게 흘러들었다.

내용은 기대한 것보다 간단했다.


무대 일부가 붕괴됐고, 소녀 팬 한 명이 크게 다쳐 응급실로 이송되었다는 글.

다행히도 보컬 ‘프린스’는 가벼운 타박상만 입었다는 결론.


기사 전체가 고언의 무사함을 확인하는 데 집중돼 있었다. 소녀에 대해서는 단 한 줄도 써있지 않았다. 이름도, 나이도, 그날의 일도, 어디에도.


연두는 화면 속 문장사이, 빈칸을 오래 바라보았다. 거기엔 알 수 없는 침묵이 자리하고 있었다.


‘어떤 소녀였을까? 예뻤을까?’


키는 작았을까? 목소리는 맑았을까? 인어공주처럼 거품이 되어 사라졌다면, 남아 있는 건 누구의 기억일까?

왕자의 눈에만 머물러 있는 존재.


‘유리구슬은 아마 그의 눈물일거야.’


연두는 그렇게 생각했다.


누군가의 존재를 오래 잡아두기위해, 투명한 구슬 속에 작은 하늘과 꽃무늬와 초승달을 가둬둔 사람. 그게 고언이라는 남자였다.


**


‘욕조 사건’ 이후로 두 사람의 생활 반경은 더욱 명확히 나뉘었다. 같은 집을 쓰되, 서로의 얼굴이 마주치지 않는 동선.


만날 일은 더욱 드물었고, 필요한 대화는 메신저와 짧은 통화로만 오갔다.


연두는 거의 3층 다락방에서만 살았다. 창고를 치워 만든 둥지. 그곳만큼은 자신의 존재를 허락해주는 공간이었다.


그녀는 냉장고에서 차갑게 식은 캔맥주를 꺼내 한모금 마셨다. 시원한 맥주가 목을 적시자 팍팍했던 피로가 싹 달아나버렸다.


노트북을 열고, 빈 문서의 흰 화면. 오늘도 깜박거리는 커서를 노려봤다.


‘어떤 이야기를 써야하나?’


그녀는 가만히 숨을 고르다가, 키보드를 두드렸다.


타닥- 타닥-


단어들이 깜박거리는 커서 앞에 놓였다 지워지기를 반복했다.


가정주부도 아닌 가정부 취급을 받는 이곳에서 글쓰기는 유일한 낙이자 탈출구였다.

그녀가 쓰는 웹소설 제목은 ‘왕비를 사랑한 저승사자’.


모두가 아는 왕과 왕비, 후궁들의 이야기로 시작해, 저승사자와의 로맨스로 끝을 맺는 이야기였다.

숙종에게 버림받은 인현왕후가 저승사자와 썸을 타게 된다는 파격의 판타지 웹소설.


장희빈이 사약을 받아 마시는 장면은 수십 번이나 고쳐썼다.


분노의 심정으로, 또는 울분을 삼키며 이 문장을 수십번이나 고쳐 페이지를 채웠다.

혼신의 힘을 다한 글은 그녀의 또다른 분신이었다.


하지만 조회수는 초라했고, 관심수는 민망하기 그지 없었다. 그럼에도 언제나 커서가 찍는 작은 불빛은 그녀를 숨쉬게했다.


‘그래도 두 줄은 썼네.’


그렇게 마음을 단단히 먹고 있을 때, 메신저 알림음이 짧게 울렸다.


[잠깐 얼굴 좀 보자. 2층에서.]


보자마자 알 수 있는 상대. 연두는 단순한 문장에 한숨을 뱉으며 노트북을 덮었다.

2층에서 마주한 고언은 오랜만에 본 것처럼 무의미한 인사부터 던졌다.


“요즘 바쁜가봐?”


“용건이 뭐야?”


연두의 질문 앞에 그는 준비해둔 계약서를 꺼냈다.


“내가 만든 스타트업, 거기 주주명단에 네 이름 넣었어. 우리 회사 주식의 35%가 네 몫이야. 우리 어머니보다 지분이 많을 거야. 확인해 봐.”


촤르르-


새로 작성된 주주명단엔 연두의 이름이 들어가 있었다.


“내 허락도 없이 이래도 되는 거야?”


“우리가 작성한 계약서 내용 잊었어? 합의금 25억 중 일부는 회사 주식으로 지급한다고.”


300페이지가 넘는 두꺼운 계약서 안에서 얼핏 본 거 같기도 하고. 복잡한 글씨들과 법률용어 사이에서 연두가 놓친 부분은 한두가지가 아니었다.


연두는 가물가물한 기억을 들추다 슬슬 화가 나기 시작했다.


‘자기 맘대로 내 이름을 주주 명단에 넣은 것도 서러운데...게다가 회사까지 망하면?’


고언이 만든 스타트업이 망하기라도 하는 날엔. 주식이 똥깞이 될 건 뻔했다.


‘내 25억은 어디로 가는거지?’


불안해보이는 그녀의 눈동자 앞에서 고언은 담담히 말했다.


“조만간 정부투자도 들어올 예정이고, 해외투자금도 500억 원 가까이 유치했어. 주식은 오를거니까 갖고 있다가 팔든 어쩌든 그건 네맘대로 해.”


단호한 어조가 미래를 증명이라도 하듯 그는 확신을 갖고 장담했다.


“내가 받은 주식이 25억이 되긴 하는 거야? 고 상무, 회장님 투자도 못 받아서 대출로 회사차린 거잖아? 주식가치가 그 정도나 돼?”


“주식이 싫으면 월급으로 25억을 받아가든가.”


‘이 지긋지긋한 가정부 노예생활을 더 하란말야?’


연두는 입술을 꽉 깨물었다.


“그런데 고 상무네 회사 망하면? 나까지 깡통 차는 거 아냐? 아무리 생각해도 그깟 주식이 25억이 된다는 보장이 어딨는데!”


“그러니까 내가 준 계약서를 잘 봤어야지. 눈은 뒀다 뭐해?”


‘25억을 받지 못 한다면 이혼은 절대 할 수 없어.’


그것만은 분명했다.


“난 25억 제대로 지급해주기 전까지 이혼 절대 안 해줄거야!”


“주식계약서는 다시 정리해서 보내줄게.”


후-


‘젠장. 잘 못 하면 거지되게 생겼네. 계약서 좀 잘 살펴볼걸. 합의금을 주식으로 줄 거란 생각은 한 번 도 못 했는데. 이러다 정말 길바닥에 나 앉는 거 아냐?’


주식 값이 똥값이 된다면 새 직업을 찾기 전까지 이곳에서 가정부로 살아야하는데.

그렇다고 고 상무랑 계속 같이 있을 생각을 하면 눈 앞이 캄캄해져왔다.


그날 밤, 연두는 다시 글 속으로 도망쳤다.


소설의 인물들이 살아 숨쉬는 동안에는 현실의 고언도, 주식도, 합의금도, 가정부라는 사실도 잊을 수 있었다.


**


그렇게 새벽을 뜬눈으로 보낸 뒤 비몽사몽 간에 아침을 맞았다.

간신히 잠든 사이 걸려온 전화.


“로즈마리 작가님 전화 맞나요?”


로즈마리 작가를 찾는 다정한 여자의 목소리. 로즈마리는 연두의 필명이었다.


웹소설 ‘왕비를 사랑한 저승사자’의 작가가 맞느냐는 확인. 그리고 드라마 제작국 소속이라는 여직원이 미팅을 제안해왔다.


잠은 순식간에 달아났고, 연두는 뺨을 몇 번이나 때려보면서 현실인지 꿈인지 확인했다.


“갑자기 전화드려서 놀라셨죠? 미팅관련 자세한 사항은 문자와 메일로 다시 보내드릴게요. 그럼 답장 주세요.”


통화 후 도착한 문자에 적힌 주소와 담당자의 이름, 오후 두 시라는 구체적인 시간.


‘드디어! 나에게도 기회가 온건가?’


자신을 투명인간 취급하던 고언과의 계약을 집어치울 수 있는 일생일대의 기회!


연두는 두 주먹을 불끈쥐었다.


미팅을 앞두고 시작된 오랜만의 풀메이크업. 생각만으로도 마음이 벌써 방송국 앞까지 뛰쳐나갈 듯 들떴다.

그때 메신저 알림이 울렸다.


[커피.]


툭 던져진 두 글자 뒤에,


[오늘 오후 출근이라 집에서 커피 마시고 나가는 거 알지?]


얼른 2층으로 와 커피를 내리라는 고언의 명령조가 이어졌다.

연두는 치솟는 분노에 미간을 찌푸렸다.


‘아! 사람 바빠죽겠는데.’


그녀는 뷰러를 내려놓고, 쿵, 쿵, 쿵. 대리석 계단을 내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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