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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야기 빚는 영양사 Nov 19. 2022

에세이를 쓴다는 건

글로 쓰는 누드화

브런치공모전을 거치면서 소확행(소중하고 확실한 행복)을 얻었다면 바로 다른 사람들의 에세이에서 느낀 위안과 행복, 재미다. 얼마나 좋은 글들이 올라왔나? 참여자로서 내심 염탐도 하며 둘러봤던 글들은 나의 정보성 글따위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완성도가 높았고, 전문적이기까지 했다. 


이미 등단한 작가들도 많았고 책을 여러권 출판한 작가들도 있었다. 심리적으로 위축이 될 수밖에 없지만 내심 마음에 와닿았던 건 솔직하면서 감동적인 이야기였다. 누군가의 글은 정말 이래도 괜찮나? 싶을 정도로 진솔했으며 심지어 적나라하기까지 했다. 


작가들은 포장 하나 없이 끝까지 발려진 자신의 삶에 의연했고, 불행을 부끄러워 하지 않았다. 부끄러움 하나 없는 것처럼 삶의 민낯을 드러낸 글. 그런 글들이 다음 내용도 궁금케하는 에세이였다. 남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내면을 드러내지만 깊은 통찰력과 시선으로 남다른 감동을 주는 글. 


행복한 것처럼 거짓 웃음을 지으며 껍데기를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울음과 웃음, 희노애락을 보여주는 인간의 솔직한 민낯이 나를 다시 되돌아보게 만들었다. 반대로 내 글은 화장이 덕지덕지 붙어 있다는 느낌. 왜 그럴까? 어투부터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많이 의식하고, 친절이라는 과장된 배려 속에 민낯을 드러내는 이야기는 하나도 없었다. 


친절, 겸손, 정직. 내 카카오톡 프로필에 적혀 있는 문구 중 어느하나라도 진실성 있게 지켜지는 글들이 아니었다. 친절과 겸손으로 위장한 오만과 과장이 거짓 웃음을 짓고 있었다. 위선이었다. 글 한자 한자에서 느껴지는 꾸밈과 사치스러움. 


음식으로 치면 너무 많은 MSG를 쳤고, 화장은 가부키 화장처럼 두껍고 진했으며 인성으로 치면 가식적이었다. 그거였다. 내 글은 가식적이었다. 무언가라도 대단한 사람인냥 사람들을 가르치려고 하고 진정으로 겸손하지 못 했으며 동시에 거짓된 친절로 정직하지 못했다.  

 

꾸밈이 과한 글 속에서 읽혀지는 건 '나 꼭 공모전에서 상받고 싶어요. 수상하고 싶어요.'라는 욕심이었다. 욕심이 과했다. 나를 내려놓는 글로 솔직담백함의 공감대를 얻어야 다른 사람들도 내 글을 봐줄 것이다. 과한 걸 덜어내야한다. 


솔직담백이란 키워드에서 찾아 낼 수 있었던 건 혼잣말이라는 표현방식이었다. 모든 것이 어투 하나로 해결되는 건 아니지만 혼잣말로 한 발자국씩 나를 툭툭 내려놓다 보면 내면으로 향하는 힘이 생긴다. 반말이라는 어투가 줄 수 있는 진솔함.  


혼잣말로 이어지는 글은 분명 나에게 던지는 의문처럼 한없이 민낯을 드러내게 만든다. 에세이는 거기서부터 시작인 것 같다. 숨겨왔던 부끄러움들이 까발려지면서 부끄러운 게 아닌 후련함으로 변모하는 글. 또 그런 글들이 감정을 쏟아내는 감정 쓰레기통이 아니라 누군가에게 위안과 감동을 주는 연료로서 가치를 가지는 글. 


그냥 나로서의 에세이. 난 아직도 수치심이 너무 많다. 


얼굴에 치명적인 상처가 있을 때 화장을 덧칠하게 되는 법. 나에게 치명적인 불행은 무엇일까? 나도 이제 내 안의 판도라의 상자를 열어보려한다. 내 안에서 뭐가 나올지 나도 모르겠다. 한가지 분명한 건 나에게 글은 숨과 같다는 거다. 


나에게 글을 쓰지 말라는 건 숨을 쉬지 말라는 거와 같다. 글을 못 쓰는 건 곧 나에게 죽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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