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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야기 빚는 영양사 May 03. 2023

라면에 무슨짓을 한거야?

씁쓸한 高나트륨사회

라면에 무슨 짓을 한 거야?


쉬는 날, 라면을 끓이고 있는 저의 뒤통수에 대고 남편이 다짜고짜 소리를 지릅니다. 제가 좋아하는 비건 라면라면스프절반만. 국물양은 적게 조절한 다음 마지막에 매생이블럭 하나를 넣으면! 세상 건강하면서 간도 잘 맞는 매생이라면 완성! 남편의 눈엔 초록초록한 국물이 이상해보일지 몰라도 시원하면서 고소한 매생이 칼국수처럼 꾸덕한 국물이 부드럽게 넘어가는 맛. 남편은 왜 이 맛을 모를까?


해장이니까 건강하게 해야하지 않겠나?


어제 남편과의 회식으로 팅팅 부어있는 나의 얼굴. 나름 외식이라면 남편의 쉬는 날, 일주일에 1~2차례 술과 곁들이는 식사가 전부. 하지만 그외에는 건강한 집밥으로 빌드업 해놓지 않는다면 우리의 신장과 간은 어떻게 되겠나? 게다가 라면 한봉지에는 나트륨 하루 섭취 권장량 80~90%에 달하는 어마어마한 양이 들어 있는데 술 마신 다음날 또다시 나트륨 폭탄을 쏟아 붓는다면 해장이 아니라 독이 될 걸세. 남편양반.



#라면을 왜 요리해?

"대기업에서 다 연구한 이유가 있겠지!" 라며 라면 봉지를 뽀시락 거리는 남편. 뒷면에 나와 있는 조리방법 그대로 끓여야 맛있다면서 항상 자신의 라면 집도는 저에게 맡기지 않습니다. 반면 라면 한봉도 스프 맛에 어울릴만한 채소를 골라 넣고, 그대로 끓여먹지 않는 저로서는 저게 무슨 맛일까? 싶죠.


얼마전에는 남편의 최애라면 짜파게티에 양파와 양배추를 썰어 넣었다가 남편이 손도 대지 않는 참사가 일어나기도 했습니다. 그리곤 남편은 짜증을 내며 자신의 라면을 따로 끓여 먹었지요. 짜고 아무맛도 나지 않는 조미료로 범벅된 밀가루면의 맛. 남편이 끓였던 짜장라면은 저에게 그런 맛이었습니다.



#온전히 끓인 라면 한봉지, 맛있나요?

그렇다면 당신은 짜게 먹고 있는 겁니다. 하루 나트륨 섭취 권장량의 80~90%가 들어 있는 라면 한봉지. 거기에 들어 있는 분말스프를 온전히 넣어서 끓였는데 맛있다고 느낀다면? 당신은 짜게 먹고 있는 겁니다. 국, 탕류가 기본인 식생활, 게다가 라면 없이는 살 수 없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高나트륨사회로 가고 있는 지름길이죠.


나날이 늘어가는 고혈압과 신장질환. 요즘은 배달음식이 일반화되면서 젊은 고혈압 환자들이 크게 늘고 있다는데 이들이 노년층이 될 앞으로는 어떻게 될까요? 여보, 다른 사람이 아니라 당신이 걱정되서 하는 소리입니다.



#라면을 건강식으로 튜닝하는 이유

다채로운 채소의 향과 맛으로 라면 맛을 보완하고, 분말스프는 덜어내되 해조류나 기타 다른 맛으로 짠맛을 보완하는 게 잘 못 된 걸까? 하지만 잘 생각해보면 저도 남편처럼 대기업의 짠맛을 고수했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고시원에서 자취를 하던 시절, 신선한 식재료건 뭐건 아무 것도 없을 땐 무료로 공급해주는 라면 하나도 감사히 먹었던 적이 있죠. 조리도구도 마땅히 없어서 작은 프라이팬에 물을 적게 넣어 짜글이처럼 끓여놓고 밥한공기까지 뚝딱 말아서 짜디짠 공짜 김치에 같이 먹던 적이 있었습니다.


회사다닐 때는 스트레스 받는 다며 엄청 매운 불닭볶음면을 주식처럼 먹으며 일터로 나갔죠. 건강한 입맛을 찾을 수 있었던 건 결혼하고 나서부터였습니다. 심심한 반찬에 건강한 먹을 거리를 챙겨주시는 시댁 입맛을 따라가다 보니 저절로 건강한 입맛을 찾게 되었고, 이건 어릴 때부터 챙겨주시던 저희 친정 어머니 반찬과도 비슷한 맛이었어요.


시간과 비용도 중요하지만 주변에서 누가 챙겨주지 않으면 건강하게 먹기란 쉽지 않음을 이제서야 깨닫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어머님들에게 더 감사한 마음이 들죠. 혀를 길들인 다는 건, 생각보다 쉬운 일은 아니지만 습관처럼 길들이다 보면 어느새 가랑비에 옷 젖듯 입맛이 바뀌어 있을 겁니다. 여보.


 

#아는 만큼 맛이 보인다.

"분말 스프를 적게 넣으면 맛이 없잖아!" 네, 여보. 그럼 물을 적게 넣으면 됩니다. 550ml를 300ml로 자박하게 끓이고 분말스프는 1/2만 넣으세요. 간의 농도는 똑같지만 스프의 절대량은 줄어서 나트륨 섭취도 줄게 됩니다. 어차피 당신은 국물을 다 드시지 못 하니까요.


국물을 좋아하시는 분들이라면 콩나물, 순두부, 숙주 등 입맛에 맞는 부재료를 넣어서 염도를 낮추세요. 매운 라면에 냉동 손질오징어 한마리와 콩나물을 넣어 먹으면 건더기 먹는 맛에 국물과 면은 자연스레 먹는 양이 줄어들게 됩니다.


분말스프 양을 줄이고 식초나 레몬즙을 넣어서 동남아식 똠양꿍 라면으로 먹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건강한 맛'이라고 하면 다들 맛없는 맛으로 생각하던데 그건 맛을 몰라서 하는 소리입니다. 간을 맞춘다는 건 단짠단짠의 조화를 맞춘다는 거겠죠? 우리는 지금 그 역치를 낮출 필요가 있습니다. 여보.

 


매생이 비건라면 레시피 보기

https://youtu.be/G08ChrUf2Y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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