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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야기 빚는 영양사 Jun 25. 2023

채식이 가져다 준 선물

브런치하다 요리연구가 된 사연

병아리콩국수


#1일1채식, 나와의 약속

1일 1채식을 결심한 지 1년 정도가 돼 간다. 엄밀히 따지자면 채식 레시피를 개발한지 1년이 되었고 1일 1채식이 안정적으로 자리잡은 건 6개월 정도다. 핑계라면 채식을 하고 싶어도 도와주지 않는 주변 환경 탓에 어려움도 많았고, 힘들었던 일 때문에 나와의 약속을 지키지 못 할 때도 있었다.


집안 행사 때마다 만나는 시댁 어르신들과 곁에서 이해해주지 못하는 남편의 불만은 채식을 위한 준비운동에 불과했다. 각종 모임에서도 채식지향이라거나 비건이라면 까탈스러운 사람으로 취급하면서 이상하게 바라보는 시선들. 나홀로 외식을 할 때도 메뉴가 굉장히 제한적인, 차별 아닌 차별(?)을 받아야했다.

 

유투브 레시피나 SNS에 달린 험악한 댓글들은 물론이고 심지어 욕을 하면서 채식을 비아냥거렸던 사람들도 있었다. 반면 내 글을 통해 채식을 결심했다거나 처음부터 건강한 채식을 위해 나의 글을 찾아왔다는 분들의 응원은 사막의 오아시스처럼 달콤했다.



#잘 몰라서 생기는 편견

솔직히 말하자면 나도 한 때는 '비건'이나 '채식'에 대한 편견이 있었다. 사회생활을 할 때도 채식지향인이나 비건인들은 함께 밥먹기 힘든 사람으로 오해해서 일부러 식사자리를 피하곤 했다. 하지만 그런 일들을 고수한다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채식을 시작하면서 알게 되었다.


삼시세끼부터 간식까지, 먹는 것 100%를 식물성으로 바꾼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양념 같은 작은 식재료부터 여러 가공식품, 외식메뉴에도 동물성식품은 조금씩 들어가기 마련이다. 최근에서야 비건인들을 위한 식재료가 나오고 있지만 아직 선택의 폭이 그렇게 자유롭진 못 한 것 같다.


어쩌면 비건인이 까다로운 것이 아니라 취향에 대한 존중과 배려가 없는 세상이 비건인을 까다롭게 만들어 온 건지도 모른다. 지구환경 위기나 극심한 기후변화에 채식이 조명 받고 있지만 카페에서 두유나 오트밀크에 추가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는 건 조금 씁쓸한 일이다.


어쨌든 채식의 이유는 다양하지만 많은 것을 포기한 비건인들의 진정성을 더 존중해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건강을 위한 채식

처음보는 사람에게 채식을 한다고 하면 예민한 사람으로 보거나 동물권을 위해 싸우는 활동가로 오해하면서 거부감부터 드러내고 본다. 심지어 곁에서 지켜보는 남편도 자신은 극단적인 것이 싫다며 '비건'이라는 말을 극혐한다고 했다.  


사실 '비건'이라는 뜻을 정확히 이해한 건 채식을 시작하면서 부터다. 채식에는 식물성만 먹는 비건부터 우유, 계란, 어패류까지 먹는 페스코 채식, 가끔은 고기도 먹지만 식생활 전반적으로 채식을 지향하는 플렉시테리언까지. 채식에도 여러 단계가 있단 걸 결심을 굳히고서야 알게 됐다.


동물성 재료 0%, 들깨미역국

솔직히 채소를 좋아하는 입맛 덕분에 채식지향이 어렵진 않지만 주위의 시선들과 비협조적인 환경때문에 어려움을 많이 느낀다. 그래서 혼자 있을 땐 비건, 남편과의 식사는 페스코 채식. 외식이나 바깥에서는 어쩔 수 없이 분위기에 맞추는 편이지만 왠만하면 페스코 채식을 먹으려고 노력한다.


가끔가다 남편의 성화에 못 이겨 고깃집을 찾을 땐 거의 채소 위주로 먹는 편이다. 미나리 주는 삼겹살 집에선 거의 미나리만 먹는 식. 고기도 몇 점 먹지만 역시 내 입맛에는 고기보단 미나리가 맛있다.  


그런데 사람들은 알까? 요즘 현대인들이 겪는 대사성 질환에는 동물성식품보단 건강한 채식이 보약이란 걸. 남편은 우리의 밥상이 100% 풀밭으로 변해버릴까 노심초사 하고 있지만 어쨋든 동물성 음식을 먹는 횟수가 줄었고, 그전보다 풍부한 채식으로 남편의 배도 많이 들어간 상태다.


 

#회, 삼겹살 언제 먹었지?

채식을 시작하기 전에는 일주일에 두번이상 배달음식으로 회를 시켰다. 달콤매콤한 초장에 회를 찍어 먹으면 그만한 맛이 없었는데 이제는 알 수 있다. 나는 초장과 간장 맛으로 회를 먹었단 걸. 그리고 신기하게도 채식 결심을 굳히고 나선 회가 당기지 않았다.


삼겹살에서 나는 누린내도 언제부턴가 역해져서 지금은 한 두달에 한번정도? 남편의 성화에 못 이겨 외식으로 삼겹살을 찾는 편이다. 그덕에 삼겹살에서 득템했던 동물성지방을 도로 빼기위해 격한 운동은 안 해도 되고 쉽게 걷기 운동만으로 체중을 유지하고 있다. 외식비도 아끼고, 건강한 채식으로 다이어트도 하면서 1석2조의 효과를 누리게 됐다.



#채식이 가져다 준 선물, '요리연구가'

채식이 가져다 준 선물은 이뿐만이 아니다. 몇 달 전, 브런치를 통해 원고 요청 메일을 받았고 현재는 일정 고료를 받고 하남시에서 운영하는 블로그에 채식레시피를 기고 중이다. 하남시 보건센터에서 운영하는 고혈압, 당뇨 교육센터에 맞게 내용을 요청 받아서 고혈압, 당뇨 환자들이 이용할 수 있는 건강채식을 개발 중이다.

https://blog.naver.com/hanam_story/223086737760


처음에 필진 소개를 위해 사진과 프로필을 요청하셨는데 감사하게도 나에게 '요리연구가'라는 타이틀을 붙여주셨다. 그렇게 프로필에 '요리연구가'라는 타이틀이 생겼다. 자신의 부르짖음이 아니라 누군가 이름을 불러줬을 때 의미를 지니는 꽃처럼 나의 채식에도 의미가 생긴 것이다. 


하남시에서 붙여준 '요리연구가'라는 타이틀을 보며 남편에게 "여보, 내가 요리연구가래!" 신기해했더니 남편이 "응, 너 요리연구가 맞아."라고 대답해줬다. 생각해보니 브런치 프로필에 계속 '당뇨+신장 질환 시어머니를 위해 레시피 연구 중'이라고 써놓고 있었다. "아! 나 요리연구가 맞네!" 남편에게 맞장구 치듯 웃으며 말했다. 난 그렇게 요리연구가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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