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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야기 빚는 영양사 Jan 26. 2024

초코파이 숨겨 놓고 먹는 남편

딱 걸렸어!



1. 사건의 발단

어느날 인덕션이 필요했다. 2년 전 이마트에서 산 빨간색 인덕션은 가성비로 보나 뭐로 보나 요모조모 참 쓸모가 많았다. 손님이 오시면 전골요리 접대 겸 오늘처럼 찬바람 쌩쌩 부는 날씨엔 상에 꺼내놓고 뜨끈한 국물을 끓여가면서 먹기 딱 좋다.


그래서 인덕션을 꺼내려 주방 선반을 열었다. 선반 맨 윗칸, 손이 닿지도 않는 저곳은 꼭 의자를 밟고 올라가야 손이 닿았다. 아니면 남편을 불러 꺼내달라 해야만 인덕션을 꺼낼 수 있다. 그러나 요즘 내 허리상태가 말이 아니라서 남편은 시댁에 피접(나의 화풀이성 짜증을 피하기 위해)보내 놨고, 결국 내가 꺼낼 수밖에 없었다.


혼자서야 이것저것 대충 먹으면 그만이지만 레시피 콘텐츠를 만들려면 그래도 아픈 몸을 끌고라도 열심히 움직여야 한다. 안 그럼 더 병이 날 것만 같았다.



영차, 영차. 의자를 선반 앞에 갖다 놓고 딛고 올라 선 순간. 고개를 들자마자 언뜻 보기에도 인덕션 빨강과 비슷한 빨강의 상자 하나가 눈에 보였다. 동그란 초코파이 모양, '오리온'이라는 글자와 함께...



2. 사건의 전말


"아니! 이건 뭐야!"


양문을 열자마자 드러나는 초코파이 박스의 자태. 설마 저기 오만원짜리가 가득 들어있지 않겠나? 하는 환상을 품기엔 남편은 틈만 나면 초코파이를 입에 물고 다니는 초코파이 애호가다. 나와 함께 하는 커피타임에도 꼭 저 초코파이를 어디선가 물고 나타나는데...난 희안하게도 그게 어디서 나는 지를 찾지 못 했다.


남편...보고 있나?


"여기였군, 여기였어!" 이곳이 원흉이었다.


간식박스에서 2~3개씩 눈에 띄던 초코파이들이 계속해서 끊임없이 사라지지 않던게! 여기가 바로 초코파이의 원산지! 마그마처럼 초코파이가 솟구치며 화수분마냥 끊어지지 않던 이유가 있었구나!



3. 더 열받는 이유


남편과 10년 째 살고 있지만 난 아직 이 남자를 잘 모르는 것 같다. 당신의 거짓말과 속임수는 어디부터 어디까지인지? 난 가늠할 수가 없다.  


이렇게 숨겨 놓고 먹을 줄은 상상도 못했다.


당신! 미친 거 아니야! 라고 남편이 있었으면 어마어마한 갈굼을 당했을텐데. 다행인지 불행인지? 남편이 시댁에 있다는 게 본인에게는 천만 다행이겠지? 난 다시 아픈 허리를 부여잡고 사진으로 증거를 남친 체 의자아래로 내려왔다.


의자 아래 내려와서 한참을 고개를 젖혀가며 초코파이 상자를 쳐다봤다. '저게 그렇게 먹고 싶었을까?'


꼭 인덕션을 꺼내려 의자를 딛고 고개를 들어야만 볼 수 있는 상황, 선반 문을 열고도 목을 꺽어 고개를 들지 않으면 절대 알 수 없는 높이였다. 게다가 중간에 교묘히 '초코파이'라는 큼지막한 글자를 가려놓는 치밀함. 작은 키를 갖고 있다는 나의 약점과 자신은 손을 뻗으면 닿을 수 있다는 강점을 교묘히 섞은 여우 같은 작전이었다. 그게 더 열받게 만들었다.



4. 쬬꼬덕후 남편의 간식박스


곰돌이 푸우처럼 배가 튀어나온 남편의 건강을 위해 라면은 가급적 자제하고 저칼로리 쌀국수로 바꿔온지 어언 1년 째. 거기에 콩밥, 잡곡밥을 싫어하는 남편의 입맛을 위해서 곤약쌀을 한박스 사서 쌀국수와 함께 쟁여놨는데!


그런데!! 어느틈에 시댁에서 한 두 봉지씩 주섬주섬 챙겨온 남편의 쪼꼬 간식들이 그 자리를 차지하더니...

(남편이 항상 요기에 올려 놓더라고요. ㅠㅠ 다른 자리도 많은데...)


초코파이 3~4개는 항상 여기에 둥지를 틀게 되었다. (아버님이 쪼꼬과자, 달달구리 간식을 좋아하세요. 어머님은 당뇨라 그걸 못 드시는데 얼마나 드시고 싶을까요? 정말 남편들은 하나 같이 도움이 안 된다는...어머님의 말씀을 인용해봅니다.)


어쩌다 시댁에서 2~3 개씩 가져다 놓고 커피 마실 때 조금씩 먹는 거라고 생각했는데...저렇게 박스째로 가져다 놓고 나 몰래 먹고 있을 줄은 몰랐다. 그러니 화수분 마냥 계속 어디선가 초코파이를 물고 튀어나오지. 여기저기 간식을 숨겨 놓은 강아지마냥 하는 짓이 꼭 그렇다.



5. 청개구리 남편의 반항심


내가 먹지말라고 해도, 아니 먹지 말라고 하면 반항심(?) 같은 게 생기는 지 더 먹는다.


우리는 10년 전 동거 초기 때부터 먹는 걸로 싸움을 많이 했다. 화장실 문제, 경제권 문제, 집청소 등등 다른 일은 싸움이 전혀 없었다. 오로지 먹는 것. 요고 하나로 엄청나게 싸웠다. 햄버거, 초코파이, 짜파게티, 마요네즈 등등. 남편은 내가 1년에 한 번 먹을까 말까한 음식들을 매우 자주 그것도 일주일에 여러번 즐겨 먹었다.


쌈채소들은 나를 만나기 전엔 입에도 대지 않았다. 당시 남편의 배도 상당히 나와 있었는데 곰돌이(?) 같이 귀여워 보이는 외모와는 달리 복부비만이 걱정되는 치명적인 식습관이었다. 나는 같이 살게 되면서 이것을 어떻게든 뜯어 고치고자 해썼는데. (연애만 했다면 이렇진 않았을텐데...결혼까지 하게되서...나도 내가 이 남자랑 이렇게 될 줄은 몰랐따.)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고했나? 식습관도 그렇다. 어릴 때 들인 식습관은 어른이 되서도 고치기가 어렵다. 그래서 남편은 아직도 나에게 혼나고 있다.



6. 초코파이, 뭐가 문젠가요?

초코파이 원료 중 쇼트닝이란 것이 있다. 제과제빵에 들어가는 과자, 밀가루 부분을 바삭바삭하게 만들어 준다.


결론만 말하자면 쇼트닝은 식물성기름으로 만들지만 포화지방보다 더 안 좋은 부작용을 가지고 있다.


포화지방은 혈관을 막히게 하지만 (이건 운동으로 빼면되요.) 경화유는 사람혈관 자체를 딱딱하게 만든다.


다른 과자도 잘 먹고, 가공식품도 특별히 가리지 않는 내가 난리치는덴 이유가 있다. 자주, 안심하고, 즐겨 먹을만한 음식은 아니라는 거다.


쇼트닝은 액체로 된 식물성기름을 인공적으로 고체화 시킨 가공기름(가공유지)다. 제과업체들이 일부러 기름을 고체화 시켜 쓰는 것에는 보존기간을 늘리고, 생산단가를 줄이기 위해서다.


이 과정에서 식물성경화유(쇼트닝, 마가린)은 트랜스지방산 구조를 갖게 되는데 동맥경화, 심혈관 질환을 일으키는 부작용을 가지고 있다.


요즘에는 이런 경화유를 정제하는 기술이  발전했다고는 하지만 변형된 부분이 조금이라도 남아 있을 경우 식품가공공정에서 다시 다른 기름들까지 변형시키기 때문에 과연 끝까지 안전할까? 란 의구심이 남는 건 어쩔 수 없다.


그리고 미국 FDA에선 이미 2015년에 모든 가공식품에서 쇼트닝과 같은 가공유지를 퇴출시켰다.


https://www.hani.co.kr/arti/society/health/696587.html

https://naver.me/x2hx8AhE

https://naver.me/xvtVA5i7

*출처: 식품과학사전



7. 결론


남편은 제가 아무리 이렇게 얘기를 해줘도 귓등으로도 듣지 않습니다.


검색창에 '마가린, 쇼트닝'만 쳐봐도 어떤 성분인지, 어떤 내용인지 잘 나오기 때문에 "검색해봐라. 내 말이 맞다." 올바른 정보를 전달해줘도 어디선가 초코파이를 물고 나타납니다.


뭐? 가끔 먹는 거 맛있게 한두벅 먹을 수는 있지만 앞으로의 건강을 위해선 횟수를 좀 줄이는 게 어떨까요? 


여보, 시댁에 가서 아버님 초코파이 뺏어 먹는 집에서도 보인다. 그만 먹어라, 그만.


*저도 다른 과자들, 가공식품류를 잘 먹고 있습니다. 하지만 트랜스지방은 포화지방보다 부작용이 훨씬 더 심각합니다. 학계에서 특별히 연구한 건 이유가 있겠죠?


*동물성이나 팜유와 같이 상온에서 고체화 되어 사람 몸 속에서도 고체가 되는 지방들은 혈관을 막히게 만들지만 트랜스지방사람의 혈관 자체를 딱딱하게 굳어버리게 만듭니다.


*그래서 미국 FDA에서도 모든 가공식품이 퇴출명령을 내렸습니다. 맛이 좋다면 왠만해선 쓸텐데...부작용이 너무 심했고, 그게 의학적인 증명으로 나왔으니 그런 거겠죠?


*아무튼 트랜스지방이 들어가지 않은 다른 과자류, 가공식품보다 위험성이 말할 수 없이 훨씬 더 높습니다. 저는 달달이 과자, 짭짤이 과자도 가끔 잘 먹습니다. 하지만 성분을 꼭 확인 한 뒤 쇼트닝과 마가린 들어간 건 왠만하면 피하는 편입니다. 그래서 성분표시를 확인하는 습관이 꼭 필요합니다!


성분을 꼼꼼히 확인하고 체크해보는 소비자들의 노력이 안전한 식품관련법을 만드는 것 같습니다.


*트랜스지방산의 부작용은 다른 포화지방산들에 비해 훨씬 심각합니다. 가끔 먹을 수는 있어도 저는...거의 먹지 않습니다. 남편! 초코파이 몰래 먹을 거면 보험료 수혜자는 내 이름으로 당장 바꾸길 원한다.


*초코파이는 정精이란 마켓팅을 참 잘 한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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