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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야기 빚는 영양사 Jan 22. 2024

트리플 붕세권에 산다는 것

남편이 없으면 붕어빵을 못 먹는가?


2024.01.22 갓 잡아 올린 붕어빵

오늘 나가서 붕어빵 7마리를 사왔다. 3마리에 2000원, 총 6마리에 4000원을 주고 샀는데 사장님께서 한 마리를 덤으로 주셨다.


우리집 근처엔 붕어빵 노점상이 3곳 있다. 첫번째는 걸어서 1분 거리에 있는 버스정류장 뒷편의 노점상. 두번째는 조금 더 걸어서 10분 거리 아파트 단지 상가 앞에 있는 찰 잉어빵집. 마지막은 걸어서 15분 걸리는 지하철역 스타벅스 앞의 붕어빵 트럭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1분 거리에 있는 붕어빵집이 제일 맛있다. 말 그대로 겉바속촉! 사진에서 느껴지듯 겉은 바삭바삭하면서 엄청 고소하고 속은 그리 달지 않은 팥앙금이 꽉 차있어서 한 입 베어물면 세상을 다 가진 기분이 든다. 팥 알갱이가 그대로 살아 있어 씹히는 맛도 좋고 팥 본연의 맛도 너무 잘 느껴진다.


게다가 중년의 여자 사장님은 엄청 친절하신데 갈 때마다 덤으로 한 마리씩 더 주신다. 영하 7도의 찬바람을 쌩쌩 맞아도 그곳 노점상 앞에만 서면 훈훈한 기운이 감돈다. 그리고 언제나 식지 않은 따뜻한 붕어빵을 내어 주시면서 밝게 웃어주신다. 그런 붕어빵을 가슴에 품고 오면 마음까지 따뜻해지는 기분이다.


나는 이곳의 붕어빵을 정말 좋아한다. 사장님이 어떻게 만드시는 지, 어떤 기분으로 만드는지, 붕어빵을 만들 때 어떤 마음인지...그 마음들이 붕어빵을 통해 전해져온다. 음식은 마음을 전하는 통로다. 마음과 정성은 맛으로 제일 먼저 느끼고 혀로 제일 민감하게 느낄 수 있다.



문제의 발단은 지지난주 일요일. 지지지난주였던가? 아무튼 난 갑자기 이 붕어빵이 먹고 싶어졌다. 남편에게 얘기했더니 본인먹고 싶었던지 붕어빵을 사오겠다며 군말 없이 맨발로 뛰쳐나갔다. 그런데 1~2분이면 벌써 갔다왔을 거린데 남편은 15분이 지나도...20분이 지나도 돌아오지 않았다.


혹시 눈길에 미끄러진 건 아닌가? 날도 추운데 양말도 신지 않고선 구멍이 뻥뻥 뚫린 크록스를 신고 나갔는데...2분이면 후딱 다녀올 거리를 왜 20분이 지나도록 오지 못하고 있는가? 순간...길가에 나뒹굴고 있는 남편의 크록스가 떠오르면서 맨발로 쓰러져 있는 남편의 모습이 떠올랐다.


설마 배달 오토바이가? 우리 남편을 치고 달아난 건 아니겠지? 아님 추워서 뇌경색이라도? 요즘 젊은 사람들도 추운 날씨에 뇌출혈이나 뇌경색이 온다던데...설마 심장마비? 정말 별의별 생각이 다들어서 남편에게 전화를 해보려는 순간...



남편이 집에 돌아왔다. 그것도 추위에 새빨개진 얼굴과 차가운 맨발로. 품에는 하얀색 붕어빵 봉지가 들려있었다.


"요 앞 붕어빵 가게가 문을 닫았더라고, 그래서 아파트 단지 상가까지 걸어갔었는데...거기도 문을 닫아서 차몰고 지하철역까지 갔다왔어."


여기저기, 이곳저곳. 아무리 10분, 15분 거리더라도 추운 날씨에 왕복으로 왔다갔다하면 그게 얼마나 먼 길인데? 게다가 우리집 주차장까지 도로 와서 결국 붕어빵을 먹겠다며 차를 몰고 15분 거리의 지하철역까지 운전하고 갔다왔다고?


누가 당신을 이렇게 만들었는가? 붕어빵이 대체 무엇이건데! 트리플 붕세권이 무엇이간데!! 결국 트리플 붕세권은 붕어빵에 대한 남편의 집념을 집착으로 만들어 버렸다. 집.착. 그것도 엄청난 집.착. 트리플 붕세권은 몸에 해롭다. 자꾸만 붕어빵을 떠올리게 만들어서 정신 건강에도 좋지 않다.


차곡차곡 쌓인 붕어빵이 남편의 발자국처럼 느껴졌다.


문제는 내가 홀로 있던 오늘이었다. 며칠전에 양치를 하다가 허리를 삐끗해서 정형외과까지 다녀오며 요양 중이었다. 앉지도, 서지도, 눕지도 못하고 겨우 신경주사를 10군데나 맞고 나서야 거동이 수월해졌다. 아직 허리를 좌우로 돌리는 게 힘들지만 점차 나아지는 중이다.


근데 문제는 이 붕어빵이었다. 집안일을 거의 할 수 없어서 할 수 없이 남편을 시댁에 맡겨(?) 놓고 이산부부처럼 지내고 있는데 딱 오늘 붕어빵이 생각났다. 한낮 최고기온 영하 7도, 남편은 없고 내가 직접 사와야만했다. 남편이 없으면 붕어빵을 못 먹는가? 갑자기 이상한 오기가 생겨났다.


게다가 불규칙한 붕어빵 노점상의 휴일. 나에게 이 아픈 허리를 끌고 밖으로 나간다는 건 도박이나 다름 없었다. 붕어빵에 대한 집.착. 그게 나에게도 도졌다. 트리플 붕세권은 병을 도지게 만든다. 모자에 롱패딩을 입고 장갑까지 낀채 마스크까지 하고 전투를 하듯 붕어빵을 사러 갔다.


6개 4000원, 한 개는 덤. 손시렵게 장갑까지 벗고선 계좌이체까지 하면서 나는 붕어빵을 사왔다. 아픈 허리를 부여잡고 따뜻한 붕어빵을 바라보다가

문득 시댁에 가있는 남편의 맨발이 생각난다.


따뜻한 붕어빵의 온기가 마치 남편 발바닥의 온기 같아서...눈물이 앞을 가린다. 냠냠



여보, 보고 싶어. 남편이 사다 준 붕어빵 한 마리, 한 마리는 남편이 한걸음 한걸음 온기를 품어 가져온 사랑이었음을. 나는 사랑을 먹고 있음에 감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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