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야기 빚는 영양사 Nov 19. 2024

좋은 날엔 소가 된다.

소고기뭇국


채식지향 2년


채식지향을 본격적으로 시작한지 2년이 지났다. 채식지향은 고기보다 채소를 많이 먹는 플렉시블한 채식주의를 말한다.


식단의 70%는 식물성으로, 30%는 동물성을 유지하고 있다. 확실히 고기 먹는 양은 예전보다 많이 줄었다.


2년 전엔 온라인마트에서 세일 스테이크가 있다면 무조건 사서 일주일에 1~2번씩은 꼭 구워먹었다.


자주 먹었던 돼지고기 앞다릿살, 뒷다리살 먹는 횟수도 크게 줄었다. 대신 두부, 콩을 먹는 횟수는 많이 늘었다.


밭에서 나는 쇠고기라고 서리태, 동부콩, 호랑이콩을 냉장고에서 잔뜩 불려놨다가 밥에 넣어 먹기도 하고, 따로 밥솥에 간편하게 쪄서 샐러드에 곁들이거나 따로 먹기도 한다.




소고기 먹어라. 소고기.


하지만 아직까지 고기를 완전히 끊기가 어렵다. 웬만하면 소고기는 먹고 싶지 않고, 돼지도 먹고 싶지 않고. 닭도 싫고. 햄 같은 가공식품은 건강에 안 좋으니 피하고 싶고. 치즈는 원래 안 좋아하고.


우유도 그닥 좋아하지 않는데. 그런데 주위엔 소고기 애호가 2분이 계신다. 분은 우리 친정어머니, 분은 우리 남편이다.


솔직히 말하면 남편은 잡식이다. 육식을 좀 더 선호하긴 하지만 채소도 마다하지 않고 우적우적 먹는다. 문제는 친정 어머니다.


"이 서방 밥 잘 챙겨주고 있지? 기운나게 소고기 맥여라. 소고기!"




용기 없는 채식지향주의자


남편의 밥을 잘 챙겨주는 건 모두 여자의 의무인 듯 엄마는 항상 그렇게 말하신다. 유교주의 사상이 뚜렷하신 우리 엄마는 사위의 밥부터 걱정이다.


딸이 못 먹으면 사위까지 못 먹을까봐. 밥을 차리는 건 여자의 책임이고 그 의무를 다 하지 못 했을 때 마치 자신의 질책으로 돌아올까봐 걱정하신다.


남편이 어린애도 아니고. 잘 먹이고 있다 말씀드려도 못 미더우신지 소고기를 택배나 퀵서비스로 보내겠다고 말씀하신다. 싫다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다가 뜨겁게 가라앉는다.


"아이, 뭘 소고기까지~ 소고기는 엄마 드세요~ 기운나게."


채식잘 알려지지 않은 사회에서 주변 사람들과 잘 지내려면 채식주의가 아닌 채식지향에 머물러야한다.




채식주의자로 남을 용기


난 용기가 없다. 자신을 다스릴 용기, 꾸준히 채식주의자로 남을 용기. 그것을 번복할 용기도 없거니와 주변과 뚜렷하게 대립할 용기도 없다.


한강 작가님의 '채식주의자' 속 주인공은 굉장히 대단하단 생각이 든다.


"You are what you eat"


'당신이 먹는 것이 곧 당신이다.' 라는 말이 있다. 그럼 소를 먹으면 소가 되나? 란 이상한 질문이 든다. 돼지를 먹으면 돼지가 되고, 닭을 먹으면 닭이 되는 건가?


닭이 되는 건 왠지 기분이 나쁘다. 연어를 먹으면 연어가 되고, 오징어를 먹으면 오징어가 되나? 그나마 바다에서 뛰노는 해산물들이 기분이 덜 나쁘다.


가급적이면 페스코 채식으로 유지하길 잘 했다는 웃기기도한 생각이 든다. 얼마전엔 삼치를 먹었고, 갑오징어도 먹었다.


일식조리사 실기를 준비 중인데 거기엔 소고기가 들어간 메뉴들이 꽤 있다. 확실히 해산물이 더 많긴 하지만 고기를 구입하고 조리할 생각에 그 과정이 싫어진다.




오늘은 좋은날


오늘은 친정 엄마의 생신이다. 소고기 좋아하시는 엄마가 생각나서 소고기뭇국을 끓여봤다.


요즘 시댁 어르신들은 생신 때 미역국 대신 소고기뭇국을 드신다. 그래야 건강하시고, 장수하신다고.


그 생각이 떠올라서 뭇국을 끓였다. 국을 끓인 건 벌써 일주일 정도 됐고, 그때부터 엄마의 생신을 기다리고 있었다.



뭘 드시던 항상 건강하시고 아프지 않으셨으면 좋겠다. 기분 좋은날, 가끔은 한번씩 소가 되어도 좋다. 용기가 없는 나는 아직까지 그렇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