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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야기 빚는 영양사 Sep 17. 2023

오늘 뭐 먹고 싶어?

당신에게 보내는 레시피 선물

취준생시절, 한 신문사에서 면접을 보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기자라는 꿈에 부풀어 있었지만 험악스런 면접관들의 표정 앞에서 준비해 간 대답도 못 해보고 잔뜩 주눅이 들어 돌아왔다. 게다가 토론대회에서 우승을 했다던 유학파 출신의 경쟁자는 나를 더 초라하게 만들었다.

 

자존감, 자존심, 자존으로 시작하는 것들이 모두 땅바닥에 떨어졌다. 속도 상하고 아무것도 먹고 싶지 않았는데 마침 지하철역 입구에서 맞딱드린 분식집 포장마차가 나를 잡아당겼다. 솔솔 풍겨져나오는 어묵국물 냄새, 그리고 새빨깐 떡볶이는 하루종일 끼니를 거른 나의 입안에 침을 고이게 만들었다.


작지만 아늑한 온기. 낡은 리어카 주위에 주황색 천막을 친 허름하기 그지 없는 점포였지만 그때 나에겐 더 없이 따뜻한 곳이었다. 가족과 떨어져 지내던 좁은 고시원생활은 단절된 인간관계 그 자체였다. 아무도 나를 도와줄 수 없었고, 그 어느누구의 위로도 마음에 와닿지 않았다. 나 자신도 나에게 보내는 응원 한마디가 인색하던 시절이었다.


11월의 추운겨울, 정장구두 속에서 꽁꽁 언 발을 녹이며 떡볶이를 기다리던 나에게 주인 아주머니가 어묵국물을 건네며 말을 걸었다.  


"면접보고 오나봐요."


대학생들이 많이 오가는 지하철역은 취준생들이 오며가며 끼니를 떼우기 좋은 곳이었다. 그리고 하얀색 점퍼 아래 검은 정장과 검은 구두, 찬바람이 스미는 발목 스타킹 그 자체로도 난 취준생이었다.


"면접 잘 봤어요?"


아무말 없이 종이컵에 담긴 어묵국물을 후르륵 마시던 나에게 아주머니가 재차 인사를 건네듯 물었다.


"아니요. 잘 모르겠어요."


난 아주머니에게 살짝 미소를 지어보였다. 내 생각엔 불합격이었지만 단 0.0000001%의 기대만 있어도 희망을 품어보고 싶었다. 그래서 잘 모르겠다고 했다. 어떻게 될지 모르는 거니까.


비닐로 싼 초록색 플라스틱 접시에 빨간 떡볶이가 나왔고, 매콤쫀득한 떡을 입에 넣는 순간 행복이 찾아왔다. 면접장에서 얼어버린 내 마음과 몸이 동시에 사르르 녹는 기분이었다. 나는 그렇게 아무말 없이 오물오물 떡볶이를 씹고 있었다.


"이렇게 예쁜 아가씬데 꼭 합격하겠지~ 어묵국물 더 줄까?"


훈훈한 포장마차 안보다 더 따뜻했던 한 마디.


"하얀 점퍼가 너무 잘 어울리네. 아가씨가 아주 깨끗하게 생겼어."

 

아주머니는 그러고선 떡볶이 몇 점을 접시에 더 놓아주셨다. 별것도 아닌 그저 나의 생김새나 옷차림에 관한 칭찬이었지만 그 순간 나는 왈칵 눈물이 나올뻔했다.


'내가 너무 힘들었구나.'


그 시절 나는 너무 힘들었다. 넉넉지 않은 집안 사정 때문에 스스로 학비를 벌어가며 취업준비까지 해야했고, 장학금이 아니고서야 비싼 학비를 해결할 수 없던 나는 매일 도서관에 공부, 방학엔 알바에 치여살아야했다. 낭만적인 캠퍼스 생활은 환상이었을 뿐. 1학년 때는 널널했던 평상시 도서관 자리가 4년이 지나면서 평일에도 모자른 지경에 이르렀다.


토익에 외국어, 학점 채우기 바빴던 우리들은 대학생활의 낭만도 느낄 새 없이 이 사회가 취업경쟁으로 몰아갔다. 난 외로웠다. 그래서 떡볶이 한 그릇에 온기를 느꼈고, 훈훈한 아주머니의 한 마디에 위로와 응원을 받았다.  


어린 아이들의 걸음마 속에 행복이 깃든 것처럼 소소한 우리의 삶에도 행복이 스며있단 걸. 그리고 예쁘다 칭찬해주시는 한 마디에, 따뜻하게 건네주시는 어묵국물에 위로가 담겨있단 걸.

  

마음 담은 레시피를 글과 엮어 내면서 제일 마음에 남는 기억이다. 아직도 그 주황색 포장마차만 생각하면 눈물이 시리고 마음이 따뜻해져온다. 난 빨간 떡볶이를 볼 때마다 추억을 먹는다. 그래서 누군가에게도 나의 레시피가 따뜻한 위로가 되고 응원이 된다면 더 없이 바랄게 없다.


가족들에게도 글과 레시피로 선물을 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걸 긴 에세이로 담아보고 싶었다.


외할머니를 그리워하며 엄마가 먹고 싶어했던 외할머니표 고등어조림, 탈모가 싫은 남편에겐 검은콩국수, 무더운 여름 고생하셨을 택배기사님께는 시원한 수박주스까지. 채식을 좋아하시는 시어머님껜 채식 물김치를 선물로 드렸고 술 좋아하시는 시아버님에겐 술을 빚어드렸다. 추석을 앞두고 발간한 나의 전자책이 마음을 보름달처럼 채우는 좋은 선물이 됐으면 좋겠다.


독자 분들에게도 사랑과 위로, 응원의 선물이 됐으면 좋겠다.


https://brunch.co.kr/brunchbook/loveis0kcal



"오늘 뭐 먹고 싶어?"


어릴 때 엄마가 해줬을 말. 이 말 한마디에는 관심과 배려, 사랑이 듬뿍 담겨있다.


에세이를 쓰기 전에는 남편에게 뭐가 먹고 싶냐고 한번도 물은 적이 없었다. 남편은 주는대로 먹었고, 나는 냉장고에 있는 식재료에 맞춰서 요리를 했다. 남편이 친구들과 속이 쓰리게 술을 먹고 들어와서도 나는 다음날 해장국 한번 끓여주지 않았다. 오로지 '냉장고파먹기'에 맞춰 요리를 했을 뿐이다.


긴 글을 쓰면서 이제서야 비로소 다른 사람에게 묻게 됐다. 오늘 뭐 먹고 싶냐고. 나의 기준에 맞춰서 차려내는 음식은 나만의 것이다. 그건 마음으로 나눠먹을 수 없다. 하지만 친구와 가족들, 구독자님들에게 글과 레시피로 선물을 드리면서 사랑과 온정을 나눠먹고 싶다.




드시고 싶은 음식과 사연이 있으시다면 댓글로 남겨주세요. 누군가에 보내고 싶은 레시피도 좋습니다. 기억에 남는 음식과 추억을 적어주셔도 되요.


시간은 좀 걸리겠지만 마음을 담아 맛있는 레시피가 담긴 멋진 스토리로 선물해드리겠습니다. ^^


긴 글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항상 건강하시고 행복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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