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 알아봐서 미안해

그렇게 꽃이 필 줄은 몰랐어

by 자몽맛탄산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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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슷한 듯 다른 듯 아리송한 하루하루를 살아가면서, 특히나 매일 똑같다고 느끼는 순간.

다들 언제신가요?


저에게는 출근길이에요.

회사에 도착한 순간부터 퇴근하고 잠들기까지는 그 안에서 조금씩의 변주가 있는데,

이 짧은 출근길만큼은 정말 항상 똑같더라고요.


같은 길 위에서, 같은 방향으로, 같은 이어폰을 끼고, 뉴스를 들으며, 빠른 걸음으로 총총.


이 길의 순간을 기록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던 건,
매일 같은 길이라도 조금씩 변하고 있지는 않을까 싶었던 건,
매일 똑같은 이 길이 너무 내 일상과 닮아있어서,
이 길 위에서라도 내 일상에 대한 작은 위로를 찾고 싶어서였던 것 같아요.


예전에, 인스타그램에서 제가 다니던 학교 건물의 오전 풍경을 찍어서 공유하는 인스타그램을 본 적이 있어요.

모아놓고 보니 매일 똑같아보였던 그 길에도 참 여러 색이 스쳐 지나가더라고요.


때는 마침 겨울.

이 겨울이 지나면, 저 길에도 형형색색 꽃이 피겠지?

앙상한 가지에서 풍성한 꽃이 되기까지, 그 순간들을 모아 보면 참 예쁘고 신기하겠다-

내 출근길도, 뭔가 살아있다는 느낌이겠다-


그런 꿈에 부풀어,

(보잘것없는 골목길을 찍는 것이 조금은 민망하고 때로는 까먹을 때도 많았지만)

매일 아침 이 길을 찰칵- 하고 기록해보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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짠,

결과는 이랬습니다.

모아놓고 보니 꽤 그럴싸하죠.


아무도 보지 않는 저만의 인스타 계정이었지만,

매일매일 올리는 재미가 쏠쏠했죠.

가끔 해시태그를 통해 소소한 좋아요를 받기도 했고요.


꽃아, 어서 피어라.

그렇게 하루하루를 기다렸는데.


이게 웬 걸요.

저 나무들은 꽃나무가 아니었습니다.

푸르른 초록색도 분명 싱그럽고 예뻤지만,

제 기대가 너무 컸던 것인지, 저는 금세 흥미를 잃어버렸습니다.


아무리 기다려도 꽃은 피지 않는 듯했고,

이렇게 푸르게 녹음진 나무로 끝이라면, 이제는 결국 잎이 지는 일만 남았다는 것이니까요.


혼자 기대하고 혼자 실망한 채,

저는 더 이상 이 길에 눈길을 주지 않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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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던 어느 날,

무심코 고개를 돌린 골목길에는 새빨간 꽃들이 피어있었습니다.

나무에서나 필 줄 알았던 꽃이,

사실은 그 아래에서 자라나고 있었던 거죠.


왠지 모를 반가운 마음에 그 자리에 멈춰 사진을 찍어댔습니다.


와- 드디어 꽃!


반가운 마음도 잠시,

저의 좁디좁은 생각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왜 나는 나무에서만 꽃이 필 것이라고 생각했을까?
왜 벚꽃이 필 때, 모든 꽃이 다 필 것이라고 생각했을까?



내가 기대하는 것들이

내가 상상하는 그 모습 그대로 나에게 올 것이라고 생각하는 건,

어쩌면 참 순진한 생각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생각지도 못해서,

그래서 더 행복한,

무언가를 느끼며 사는 일상이 되기를.


저는 요즘 새로운 사진 스팟을 찾는 중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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