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일 글쓰기 8일차 (17.08.30)
"국 안 먹어요?" 함께 점심을 먹는 팀원분들은 내게 종종 묻는 질문이다. 난 밥을 먹을 때 국을 먹지 않는다. 혹독했던 다이어트가 남긴 작은 흉터같은 습관이랄까. 주걱으로 밥을 푸는 찰나, 얼마나 퍼야 200~300kcal 사이를 맞출 수 있을지 가늠하는 내 눈빛은 아마 다들 모르실거다.
어렸을 땐 순진하게도 일확천금의 삶을 꿈꿨다. 무언가를 완벽하게 해내면 그로 인해 내 삶에 드라마틱한 변화가 생기는 그런 삶 말이다. 내게 다이어트는 그 강력한 무언가 중 하나였다.
다이어트에 그런 환상을 품게 된건 스물 한 살 즈음. 기숙사에서 나와 언니와 함께 자취를 시작하게 되면서 바뀐 것은 비단 물리적 위치만은 아니었는데, 관악 언저리에서 깨작거리던 나의 작은 세상은 신촌의 거리만큼 넓고 복잡해졌다. 하필 이대 앞에서 자취를 했던게 문제라면 문제였다. TV에 나오지 않는 평범한 여자 중에도 예쁘고 날씬한 사람들이 이렇게나 많다는 걸 스물 한 살이나 되어서야 깨닫게 된거다.
다이어트를 하면 남자친구가 생길거야, 라는 특별한 목표가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통통할 때도 남자친구는 있었으니까. 다만 좀 더 당당하게 거리를 오가고 싶었다. 누구나 자신만의 아름다움이 있다고들 하지만, 타인에게 그 아름다움을 어필하기에 외모만큼 효율적인 것은 없다. 냉정히 말하면 외모와 자신감은 뗄레야 뗄 수 없는 사이다. 적어도 나에겐 그랬다. 이대 거리를 메운 수많은 상점들의 쇼윈도가 비추는 내 모습을 나는 쉽게 긍정할 수 없었다. 어떻게든 그 쇼윈도에 자연스럽게 녹아들고 싶었다.
그렇게 한 2년을 체중계 앞에서 마음 졸이며 살았다. 행복하기도 했고 불행하기도 했다. 나조차 스스로를 이해할 수 없는 별의별 일들도 많았다. 8-9kg를 빼기도 했고 다시 그만큼 찌기도 했다. 나에겐 오로지 양극단만이 존재했는데, 끝장나게 먹거나 끝장나게 굶었다. 외식 몇 번 했다고 온종일 굶다가도, 어느 날은 오늘만 사는 사람처럼 폭식을 일삼았다. 엄마는 볼 때마다 달라지는 내 모습에 알게모르게 걱정스런 눈치였다. 쉽게 지갑을 열지 않는 엄마인데, 어느날 거금을 들여 다이어트 관리 프로그램을 끊어주시기도 했다. 안타깝게도 성공적이진 않았지만.
백만원에 가까운 관리 프로그램보다 더 효과적인건 따로 있었다. 그건 딱히 기한도 없고, 돈도 안 들고, 강제성도 없었다. 의외의 해결책,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는 것이었다. 예쁘지 않아도, 날씬하지 않아도, 똑똑하지 않아도, 돈이 많지 않아도 자신감 넘치게 사는 사람들이 참 많았다. 그런 사람들은 쇼윈도 밖에서도 반짝반짝 빛이 났다. 일확천금이 인생을 바꿀 수 있을지 말지와는 별개로, 일확천금이 없어도 행복한 사람들이 있다는걸 뒤늦게 깨달은 바보같은 나. 그저 지나치면 그만인 쇼윈도에 나를 가두려고 했던 바보같았던 나.
아직도 체중계에 올라서는게 썩 달갑지 않고, 더 아름답고 날씬한 몸을 갖고 싶다는 욕심은 여전하다. 혹독한 다이어트가 남긴 트라우마도 완전히 지워지지 않았다. 다만 이젠 쇼윈도에 비친 내 모습이 나를 결정하지 못한다는 걸 안다. 아니, 결정하게 해서는 안된다는 걸 안다. 이건 내 삶에 플러스가 될 수 있을지언정 마이너스가 될 수는 없다. 쇼윈도에 비친 내 모습을 보고 '요즘 살 좀 쪘나?' 쿨하게 넘길 수 있는 그런 마인드, 건강한 다이어트의 시작은 거기서부터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