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커뮤니케이션 이민호 강사님의 강연을 듣고
학생때는 개떡같이 말해도 찰떡같이 알아듣는 사람들이 많다면,
직장인에겐 찰떡같이 말해도 개떡같이 알아듣는 사람들이 많다.
"그...그거...있잖아 그거" 하고 두루뭉술하게 말해도 "그거! 알지알지!"하고 알아듣는 또래들로 가득했던 학생때의 마인드는 버려야 한다. 회사는 다르다. 찰떡같이 말해도 개떡같이 전달되고, 개떡같이 말하면 개떡에 ㄱ도 전달하지 못한다. 누군가 개떡같이 말해도 찰떡같이 알아들은 척을 해야 할 때도 (많이)있다.
회사에서 오가는 말에는 보이지 않는 많은 것들이 담겨있다. 말의 의도, 말의 문맥, 말로 얻어내려는 결과, 말을 하는 사람의 태도, 말을 듣는 상대방의 기분, 말의 파워까지. 표면 상의 글자만으로 그 의미를 해석했다가는 눈치없는 사람이 되기 십상이고, 마음의 소리를 솔직하게 내뱉었다간 예상치 못한 상황을 맞닥뜨리기 일쑤다.
말을 듣는 사람도 달라진다. 옆자리 팀원부터 시작해서 가벼운 업무 요청이 오가는 회사 사람들, 우리 서비스를 이용하는, 그래서 일면식도 없지만 늘 안녕하고 감사해야하는 사용자들까지. 내 말이 닿는 범위는 기하급수적으로 커져버리고, 공기같은 랜선을 타고 뻗어나간 말은 다시 주워담기도 어렵다.
아이러니하게도, 말의 중요성을 알아갈수록 말은 점점 더 어렵기만 하다. 목구멍까지 차오른 말을 채 내뱉지 못하고 멈칫하는 순간이 잦아지고, 키보드 위에서 손가락이 방황하기 일쑤다. 어떻게 하면 말을 '잘' 할 수 있을까 고민이 깊어질 무렵, 사내에서 기획자를 위한 말하기 특강이 열린다는 반가운 소식이 들려왔다. 역시 말하기는 기획자의 평생 숙제 중 하나구나.
이민호? 처음 들어보는 이름인데? 강사님이 누구인지도 모른 채 강연에 들어갔으니 큰 기대는 없었다. "말을 잘하려면 이렇게, 저렇게, 요렇게 해보세요!" 하는 스킬풀한 강연이겠거니, 속기나 열심히 해야겠다고 생각하며 노트북 위에 두 손을 장전한 찰나에 정중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혹시, 다들 바쁘신게 아니시라면 오늘 이 강연에서는 노트북은 접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방금 들었던 내용도 잘 까먹는 나. 뭐라도 하나 건져가긴 글렀구나 싶었지만, 강연이 끝나고서야 알았다.
이 강연은 노트북 속기 따위는 필요없었다.
첫번째 이유, 머리가 아니라 '몸'이 기억하게 하는 강의
활자로 적으면 A4 절반이 채 안 될 정도로 강의 내용은 심플하다. "상대방의 눈에 보이게 말하라"는 것이 주된 요지인데, 내가 말하고 싶은 바를 상대방이 제대로 볼 수 있도록 도와주는 몇 가지 장치들을 알려준다. 하나의 장치를 배울 때마다 옆사람과의 실습 시간이 주어지기 때문에 내가 잘 써먹을 수 있는 것과 앞으로 더 연습해야 하는 것을 빠르게 캐치할 수 있다. 가만히 앉아서 듣고 있을 땐 모든게 쉬워보여도 실제로 써먹으려고 하면 마음같지 않을 때가 얼마나 많은가. 강연 중에 맛보는 작은 실패들은 몸이 기억하는 좋은 자극이 된다.
두번째 이유, 좋은 스피커의 표본이 눈 앞에 있는 강의
강사님이 그 자체로 하나의 완벽한 말하기의 표본이다. 선한 눈매만큼이나 편안한 어투, 어휘, 억양을 구사하는 것은 물론이요, 말 한마디로 청중들을 들었다 놨다 롤러코스터를 태우는 모습을 보고있노라면 이 분에게 묵언 수행과 죽음 중에 하나를 택하라면 죽음을 택할 것 같은 느낌적인 느낌이다. 무엇보다도 말하기를 '즐기는' 강사님의 모습은 그 자체로 말하기의 힘을 느끼게 해준다.
세번째 이유, 강연 내용을 정성스레 코팅해서 주는 강의
괜히 손 아프게 속기할 필요 없다. 나중에 다 준다. 요렇게. 커뮤니케이션이 제대로 안 될 때마다 부적삼아 주문을 걸어볼 심산으로 회사 모니터 옆에 붙여놓았다.
사내 강연에 이어 신촌에서의 정식 강의를 들을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좋은 영화는 다시 볼수록 감동이 깊어지고, 좋은 노래는 수백번 들어도 질리지 않듯이 이 강연도 두 번 들으니 더 마음에 와닿았다. 토요일 황금 저녁을 바친게 전혀 아깝지 않았다.
"제가 20대로 다시 돌아갈 수 있다면 이 문장은 꼭 기억하고 싶어요. 눈에 보이게 말하라."
아무리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도 기름때 묻은 후라이팬에 담아냈을 때와, 음식에 어울리는 멋진 접시에 담아냈을 때 상대방의 반응은 확연히 다르다. 말도 마찬가지다. "내가" 말하고 싶은 "내용"을, "상대방이" 원하는 "그릇"에 잘 담아내는 것이 좋은 말하기의 핵심이다. 강연에서 배운 아홉가지 그릇을 살짝 소개하자면,
A를 전달하고 싶다면,
"이건 A야"라고 말하기 전에
A에 대해 말하고 싶은 이야기의 꼭지를 미리 알려주고, (ex. A에 대해 세 가지를 알려줄게)
A와 반대되는 B를 가져와서 A가 더 잘 드러나게 해주고, (ex. B는 이게 없는데 A는 있어)
A에서 특히 강조하고 싶은 부분을 구체적으로 알려주고, (ex. A에서는 특히 a를 주목해야해)
A에 대해 믿음직한 정보들을 알려주고, (ex. 유명한 학자는 A에 대해 이렇게 말했어)
A에 대해 상상할 수 있도록 밑밥을 깔아주고, (ex. A를 시작하면 a, a', a''같은 상황을 만나게 될거야)
A에 대해 스스로 생각할 수 있도록 질문을 던져주고, (ex. 만약 A가 없다면 어떻게 될까?)
A에 대한 나의 실제 경험을 공유해주고, (ex. 나는 A에 대해서 이런 일이 있었어)
A와 비슷한 특성을 지닌 메타포를 통해 미리 간접경험하게 해주자. (ex. A는 마치 C같아)
실제 강연을 들으면 이 9가지 스킬에 대해 더 잘 이해할 수 있으니, 시간과 금전의 여유가 된다면 꼭 한번 들어보기를 추천한다. 아래 영상은 간단한 맛보기.
https://www.facebook.com/3sotong/videos/1918157911777331/
사실 어떤 그릇이 가장 효과적일지는 상황과 대상에 따라 다를 테다. 결국 이러한 방법론에 선행되어야 하는건, 나와 대화하고 있는 상대방이 어떤 사람인지에 대해 관심을 갖고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자세다.
나에게 말이 어려웠던 이유는, 어떤 말을 해야할지 몰랐던 것이 아니었다. 내 말을 들을 상대방에 대한 이해와 관심이 부족해서 도대체 어떤 그릇에 담아내야 할 지를 몰랐던 것이다. 나와 대화하는 이 팀원은 어떤 사람인지, 나의 서비스를 사용하는 이용자는 어떤 사람인지에 대해 더 깊고 넓게 고민하는 것이 지금 나에게 가장 필요한 일이 아닐까.
어떤 사람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사람의 '말'을 경청하는 것이 필수다. 아이러니하게도, 좋은 말하기는 좋은 리스너에서 출발한다. 강사님은 아내의 별명이 '모모'라고 소개하면서, 누구보다도 자신의 말을 잘 경청해주는 모습에 반했다고 말했다. 경청의 힘을 아는 강사님은 인생에 있어 최고의 파트너를 만난게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