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함을 정의하는 방법
* 이 글은 개인적인 연애 경험을 바탕으로 느낀 소소한 깨달음을 적은 글입니다. 상황에 따라 누군가에겐 맞을수도, 맞지 않을 수도 있겠지요. 그저 어떤 26살 처자가 사랑해나가는 이야기구나, 하고 편하게 읽어주세요.
매번 턴이 돌아갈 때마다 거대한 블록 탑에서 그저 작은 블록 하나를 빼는 놀이일 뿐인데.
그게 쌓이고 쌓여 그 거대한 탑이 한순간에 무너지고 맙니다.
돌이켜보면, 지난 연애나 지지난 연애다 비슷했던 것 같아요.
언제까지나 우리일 거라고 믿었던 둘의 사이가 멀어지는 건 드라마틱한 어마 무시한 그런 사건 때문이 아니라, 작은 실망 혹은 투정이 쌓이고 쌓여 마지막 인내심까지 몽땅 잃었을 때였죠.
매번 만나는 곳이 지겨워 조금 색다른 곳을 찾았고, 맛있는 밥을 먹었고, 어김없이 예쁜 카페에 갔습니다.
그 좋은 해가 다 질 때까지 서로 한마디도 없이, 모니터만 쳐다보고 있을 거라곤 생각도 하지 못한 채요.
곧 남자 친구의 생일이었기에, 저는 무언가 특별한 것을 해주고 싶었어요. 늘 같은 곳에서 만나고, 같은 것을 먹고, 같은 일을 하는 우리였기에 뭔가 특별한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동기를 찾고 있었던지도 모르겠네요. 왜 그리 유난스럽게 굴었는지. 무튼 요즘 들어 바쁘고 힘들어 보이는 그 애에게 조금이나마 힘이 될 수 있는 것을 선물해주고 싶었습니다. 무엇이 갖고 싶냐고, 혹은 무엇이 하고 싶냐고 계속 물어왔지만 제대로 된 대답을 주지 않았던 남자 친구. 얼굴 맞댄 지금 정하면 편하겠다, 싶어 또 얘기를 꺼냈습니다.
하지만 돌아온 대답은 꽤나 무심하고 뾰족했습니다.
- 나 지금 그런 거 생각할 시간 없어.
모니터만 응시하는 눈, 쉴 새 없이 움직이는 타자 위의 손가락, 귀찮음과 짜증이 묻어나는 말투.
몇 주째 그 애의 대답만 기다리며 이것저것 찾아봤던 저를 한순간에 실망시키기에 적절한 조합이었죠.
- 내가 지금 나 좋자고 이렇게 계속 물어보는 거야?
너 생일이잖아. 너 생일날 내가 해주고 싶다는데 그거 하나 정하는 게 그렇게 어려워?
저에게는 무엇보다도 특별하다고 생각했던 것이, 아무것도 아닌 '그런 거'로 치부되는 순간.
정말 소중하다고 생각했던 사람에게도 화를 내게 되더군요.
그렇게 긴 침묵이 찾아왔습니다. 해가 다 지도록 서로 키보드만 두드리며 그렇게 아무 말도 없었어요.
- 저녁 어떻게 할 거야?
- 먹어도 되고 안 먹어도 돼.
-......
- 집에 갈래? 너 버스 어디 타?
-... 밥 먹자.
이대로 헤어지면 다시 또 일주일을 못 보는데, 이렇게 찜찜한 마음으로 헤어지긴 싫어 늦었지만 저녁을 먹자고 했고, 근처 식당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여전히 둘은 말이 없었고, 남자 친구는 종종 핸드폰을 들여다보았죠. 저는 내가 실망한 이유를 어떻게 설명해야 하나 머리가 아팠고, 왜 내가 이렇게 마음이 아플까 마음도 쓰렸고, 이 상황에서 핸드폰이 보고 싶나 원망스럽기도 하고, 복잡한 마음이었어요.
저는 원래 남자 친구 앞에서 잘 우는 편인데, 타코를 앞에 두고 저는 또 눈물을 흘려버렸어요. 우리의 일상이 매일 똑같으니까, 너 생일날이라도 특별하게 보내고 싶었다고 말하는데 왜 이렇게 눈물이 나는지. 어쩌면 저는 직감적으로 느끼고 있었는지도 모르겠어요.
남자 친구는 자기가 생각보다 할 일이 많다, 너와 시간을 내서 만나는 것도 점점 부담이 되지만 만나려고 노력하고 있다, 나도 힘들다, 그런 얘기들을 했던 것 같아요. 그건 나도 다 아는 얘기인걸. 그냥 너 마음 잘 알겠다, 뭐 할지 한번 찾아보자,라고 얘기해주면 내 마음은 정말 쉽게 풀렸을 텐데.
그 애가 무슨 말을 했는지도 중요했지만 더 힘들었던 건 변한 남자 친구의 사소한 행동이었어요. 제가 앞에서 눈물을 흘리고 있는 데도, 여전히 핸드폰으로 누군가와 대화를 했고, 아무렇지 않게 타코를 먹고. 제 손을 잡아주거나 눈물을 닦아주지는 않았죠. 분명 이전과 같은 부드러운 목소리로 제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말을 하고 있는데, 그 애와의 거리가 그토록 멀게 느껴졌던 것은 처음이었습니다. 남자 친구가 지쳤다는 걸 그리고 예전과 달라졌다는 걸 한순간에 깨달아버렸습니다.
무엇이 그 애를 그렇게 지치게 만들었던 걸까요.
왜 저는 그걸 눈치채지 못했을까요, 아니 부정했던 걸까요.
잠시가 될지, 영원이 될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그 애를 다시 만나기까지는 그동안의 우리 사이를 한번 곱씹어보기로 했습니다. 이건 무엇보다도 저를 위해 가장 필요한 일이니까요.
다음 글은, 꽤 빠른 시일 내에 쓸 것 같네요.
이상하게도 눈물이 나지 않는건 왜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