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주의란 없다, 단지 ‘퍼펙트’한 시스템이 있을 뿐
모든 일을 빈틈없이 완벽하게 처리하려는 사람이 있다.
지독할 정도로 꼼꼼하다.
어쩌다 작은 실수라도 하나 하면 자책으로 밤잠을 설친다.
이런 사람에게 협업은 늘 불안의 연속이다.
타인의 작업은 내 손에 잡히지 않고, 내 마음대로 스케줄링되지 않기 때문이다.
관리자 위치에 있다면 체크 빈도는 더 잦아진다.
그리고 꼼꼼함은 어느 순간 피로가 된다.
일은 성공적으로 끝날지언정 과정은 늘 살얼음판 같다.
주위 사람들은 조금씩 지쳐간다.
그러다 ‘좋은 게 좋은 거지’라는 원만주의자를 만나면
갈등이 폭발할 것 같지만, 의외로 난리는 잘 나지 않는다.
손뼉도 마주쳐야 소리가 나는데, 도무지 마주쳐지질 않으니까.
완벽주의자는 원만주의자를 보며 스트레스가 쌓인다.
‘저래도 괜찮을까?’라는 의구심이 들지만, 이내 털어버린다.
원만주의자도 마찬가지로 스트레스를 받는다.
‘그냥 하면 될 텐데 왜 저렇게 꼬치꼬치 따질까. 나를 무시하나?’
그래도 꾸역꾸역 서로를 맞추며 세상은 돌아간다.
세상에 정말 완벽이 있을까?
우리가 떠올리는 ‘완벽’은 어떤 틀에 빈틈없이 꽉 끼워 맞춰지는 상태다.
길고 짧고, 굵고 얇은 모든 홈에 딱 들어맞는 상태.
말 그대로 완벽이다.
영어로는 Perfect다.
그런데 실무에서 이 단어는 종종 ‘완벽’이라기보다 ‘좋다’, ‘통과다’, ‘잘 됐다’에 가깝게 쓰인다.
“Good job”, “Nice” 같은 칭찬으로도 수시로 튀어나온다.
단어는 같은데, 우리가 짊어지는 무게는 다르다.
미국식 회사는 시스템으로 돌아간다.
그 시스템은 ‘퍼펙트’하게 작동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결코 ‘완벽’하게 돌아가진 않는다.
삐걱거리고 예외가 나도 시스템이 버텨준다.
완벽하지 않아도 일이 돌아가니까, 여기저기서 “퍼펙트”가 나온다.
그게 시스템이다.
나는 완벽하고 싶지만, 결코 완벽할 수 없다.
내가 모든 환경을 통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돈 좀 모으려 하면 사고가 나거나 몸이 다친다.
틈만 나면 아이들이 아프다.
우리 애들뿐 아니라 직원들 아이들까지 아프다.
일 년 내내 감기를 달고 산다.
계약하려던 회사는 갑자기 방향을 선회한다.
이만큼 하기로 해놓고 저만큼의 요구사항을 들이민다.
이 돈이 들어오면 저걸 하려 했는데, 돈은 제때 들어오지 않는다.
계획은 창대하지만, 계획대로 되는 법이 없다.
이제 그만 내려놓자.
원래 계획대로 안 되는 게 정상이다.
내가 날씨를 조절할 수 있는가.
정책과 시장을 내 뜻대로 꺾을 수 있는가.
막힌 도로를 뚫고, 사람을 바꾸고, 침범을 완벽히 차단할 수 있는가.
못 한다.
인정하자.
완벽이란 건 없다.
그럼 이제부터 대충 살아야 할까?
아니다.
똑같이 성향대로, 성격대로 하던 일을 계속하면 된다.
단지 ‘완벽할 수 없음’을 인정하기만 하면 된다.
그 인정을 거치는 순간 숨통이 트인다.
꽉 막혔던 시야가 넓어지고, 주위를 돌아볼 여유가 생긴다.
여유가 생기면 역설적으로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다.
더 큰 일을 감당할 수 있다.
그러니 이제,
나 자신을 좀 살게 해줘 보자.
완벽이라는 환상을 걷어낸 자리에
비로소, ‘여유’라는 시스템이 들어온다.
이제야 진짜 일을 할 준비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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