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숙함이라는 이름의 상자, 그 안은 안전한가

편해진 자리에서 멈추지 않기 위해

by 데브 마인드

회사에 2년, 3년, 5년쯤 다니다 보면

일은 손에 붙고, 익숙함은 곧 능숙함이 된다.


예전에는 시간을 들여야 하던 일도

이제는 큰 힘을 들이지 않고 처리할 수 있다.

어지간한 일에는 잘 흔들리지도 않는다.

시간이 남고, 여유도 생긴다.


가끔 다른 부서의 일을 맡아도 몇 번 해보면 금세 감이 온다.

어디를 가도 크게 당황하지 않고, 어느 정도는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도 생긴다.


편하다.


사람은 원래 편한 쪽으로 기운다.

그래서 흔히 도전적인 사람과 안정적인 사람을 나누어 말한다.


그런데 나는 이 둘이 완전히 다른 부류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안정적인 것을 좋아하는 사람도 도전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다만 조금 더 따져보고 움직일 뿐이다.

이 선택이 얼마나 위험한지,

이 변화가 내 삶을 얼마나 흔들 수 있는지 계산한 뒤에 움직인다.


표현이 다르고 속도가 다를 뿐,

결국 누구나 자기 방식대로 도전하고 있다.


문제는

더 이상 도전할 필요가 없다고 느껴지는 시기가 찾아올 때다.


그 순간부터 사람은 멈추기 시작한다.


예전 TV 드라마에서는 대기업 부장쯤 되는 사람이

업무 시간에 사우나를 다녀오는 장면이 종종 나왔다.

과장이 섞였겠지만, 완전히 없는 이야기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만큼 시스템에 익숙해졌고,

그만큼 자기 자리가 편해졌다는 뜻이다.


하지만 나는 그런 여유가 언제나 좋은 신호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위기일 수 있다.


상자에 갇힌 벼룩은

원래 더 높이 뛸 수 있는데도,

계속 천장에 부딪히다 보면 어느 순간 그 높이까지만 뛴다.

나중에 상자를 치워도 더 이상 높이 뛰지 못한다.


익숙함도 그렇다.


처음에는 나를 지켜주는 경험이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나를 가두는 천장이 되기도 한다.


물론 사람 인생이 꼭 거창할 필요는 없다.

내가 세상을 바꾸는 일을 할 것도 아니고,

국제 정세를 움직일 것도 아니다.

내 자리에서 무난하게, 조용하게 살아가는 삶도 충분히 가치 있다.


그런데 정말 묻고 싶다.


지금 내가 들어앉아 있는 이 상자가 정말 안전한 곳인가.


가만히 있어도 뒤처지는 시대다.

기술의 유통기한은 짧아지고,

어제의 경쟁력은 금세 오늘의 기본기가 된다.

자산도, 산업도, 일자리도 계속 흔들린다.


이런 시대에

아무 변화 없이 버티는 삶을

과연 안전하다고 부를 수 있을까.


많은 사람들이 현재에 순응하며 사는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나는 그것이 꼭 평온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때로 그것은 단지

익숙해진 자리에서 더 이상 움직이지 않는 상태일 뿐이다.


반대로 세상에는

조용히, 그러나 꾸준히 자기 감각을 벼리는 사람들이 있다.


내가 하는 일을 계속 공부하는 사람,

다음 흐름을 미리 보려는 사람,

당장 돈이 되지 않아도 자기 분야의 변화를 놓치지 않으려는 사람.


나는 그런 사람들이 결국 오래 간다고 믿는다.


새벽 버스를 타면 그런 생각을 자주 한다.

그 시간에도 이미 움직이는 사람들이 참 많다.


누군가는 생업 때문에,

누군가는 하루를 남들보다 먼저 시작하기 위해,

누군가는 그 시간 아니면 안 되기 때문에 길 위에 나선다.


나는 그런 성실함이 좋다.

존경스럽다.


시장에 가면 새벽부터 분주히 움직이는 할머니들이 있다.

말투는 구수하고,

헤어스타일은 꼭 같은 미장원에 다녀오신 것처럼 비슷하다.

보고 있으면 정겹고, 어쩐지 귀엽기까지 하다.


그런데 그 정겨움 뒤에는 긴 세월이 있다.


많이 배우기 어려웠던 시절,

모르는 것을 물으면 친절하게 알려주기보다

핀잔부터 듣기 쉬웠던 시대를 지나온 분들이다.

무안함도, 서러움도, 무뚝뚝한 질서도 견디며

끝내 자기 몫의 삶을 살아낸 사람들이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이

지금의 시대를 만들었다.


나는 그 모습이 아름답다고 생각한다.

거창한 비전이 있어서가 아니다.

화려한 말을 해서도 아니다.


그저 자기 삶에 근실했기 때문이다.


문득 잠언의 한 구절이 떠오른다.


네가 자기 사업에 근실한 사람을 보았느냐
이러한 사람은 왕 앞에 설 것이요
— 잠언 22장 29절


이 말씀을 읽을 때마다 생각한다.


나는 월급쟁이일 뿐인데,

내 사업이 없으니 그저 시간을 보내며 살아도 되는 걸까.


아니라고 본다.


내 이름으로 된 회사를 갖고 있지 않아도

내가 맡은 일은 분명 내 일이다.

월급을 받는 사람에게도

근실해야 할 자기 일이 있다.


직장인은 종종 착각한다.

내 사업이 아니니 적당히 시간만 보내도 된다고.

당장은 별일 없어 보일 수도 있다.

일을 조금 덜 해도 월급은 들어오고,

조직은 생각보다 쉽게 굴러가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그런 날은 영원하지 않다.


어느 날이 되면

그 월급이 더 이상 나오지 않는 날이 반드시 온다.


그때 가서

“나한테 왜 이래?”

라고 말해봐야 늦다.


대부분의 위기는 갑자기 오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익숙함에 기대어 몸을 낮추고 있던 시간 동안

조용히 자라나고 있었던 경우가 많다.


그래서 더 무섭다.


익숙해지고 능숙해지는 것은 분명 좋은 일이다.

그것은 노력의 결과이고, 성취다.

하지만 거기서 멈추는 순간

익숙함은 더 이상 나를 지켜주는 힘이 아니다.

그것은 나를 가두는 상자가 될 수 있다.


결국 중요한 것은 이것이다.


지금도 나는 배우고 있는가.

지금도 나는 움직이고 있는가.

지금도 내 일을 내 일로 여기고 있는가.


진짜 안전한 사람은

가만히 있는 사람이 아니다.


계속 준비하는 사람이다.


안전은 상태가 아니라 태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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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 목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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