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폐한 나를 구출하는 ‘해석의 기술’
나는 ‘꿈보다 해몽’이라는 말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어딘가 비꼬는 느낌이 강했고, 잘못된 상황을 “그럴듯하게 포장한다”는 변명처럼 들렸기 때문이다.
그런데 살다 보니 이 말이 꽤 실용적인 생존 전략처럼 느껴지기 시작했다. 꿈은 내 뜻대로 조절할 수 없지만, 해몽은 온전히 나의 선택이기 때문이다. 사람은 결국 자기가 선택한 해석의 결을 따라 하루를 산다. 긍정적 해몽은 피폐해진 나를 다시 살아있게 만든다.
며칠 전의 일이다. 퇴근 시간 10분 전부터 미리 양치하고, 화장실에 다녀오고, 컴퓨터를 정리한 뒤 신발까지 고쳐 신고 있다가 ‘땡’ 하면 튀어나가는 동료들을 보며 기가 찼다.
‘근무 시간에는 업무에 집중하는 게 당연한 거 아닌가? 자기 시간만 아깝고 회사의 시간은 우스운 건가.’
비난 섞인 생각이 목 끝까지 차올랐을 때, 문득 알아챘다. 이 말은 문제를 해결하려는 말이 아니라, 그저 내 뒤틀린 기분을 풀려는 ‘감정 배출’일 뿐이라는 것을. 내 말이 맞을 수는 있다. 하지만 맞는 말이 항상 필요한 말은 아니며, 필요한 말이 항상 지금 당장 튀어나와야 하는 것도 아니다.
그래서 나는 독설 대신 해석을 하나 더 붙여보기로 했다.
“저 사람도 저 나름의 방식으로 버티는 중일지 모른다.”
나중에 들은 얘기로는 그 동료는 집이 아주 멀어, 이번 차를 놓치면 길 위에서 몇 시간을 더 써야 하는 사정이 있다고 했다. 물론 모든 사람이 다 정당한 이유를 갖고 있는 건 아니겠지만, 최소한 내가 모르는 사정이 존재할 확률은 늘 있다. 그 순간 내 마음이 좁았다기보다, 내 해석이 단선적이었다.
우리가 보고 듣는 정보는 결코 전체가 아니다. 내가 아는 것이 전부라는 오만함은 성급한 해석을 낳고, 그 해석은 결국 나를 찌르는 칼이 된다. 그래서 나는 요즘 해몽을 ‘빨리’ 하지 않으려고 한다. 결론을 내기 전에 한 번만 더 묻는다. '내가 모르는 게 있나?'
이런 ‘해몽의 기술’은 자녀를 양육할 때 더 노골적으로 드러난다. 아이가 친구에 대해 내뱉는 말들을 어른의 잣대로 곧이곧대로 듣고 판단해서는 안 된다. 아이는 거짓말을 하는 게 아니라, 자기 눈에 보이는 만큼만 보고 판단할 뿐이다.
며칠 전, 아이가 집에 오자마자 신발도 제대로 못 벗고 말했다.
“ㅇㅇ 때문에 학교에서 짜증 나 죽겠어. 계속 내 욕을 하고 다니고, 복도에서 괜히 나를 툭툭 치고 지나가.
나랑 얘기하고 있는 친구를 갑자기 불러서 데려가고… 정말 짜증 나.”
순간 머릿속에 여러 문장이 동시에 떠올랐다. “네가 뭘 했는데?” “왜 가만히 있어?” “걔랑은 그냥 안 놀면 되잖아.” 맞는 말일 수도 있다. 그런데 이런 말들은 대개 아이의 문제를 푸는 말이 아니라, 내 불안을 배출하는 말이 되기 쉽다. 그러고 나면 아이는 ‘상황’보다 ‘부모의 판단’을 먼저 배우게 된다.
그래서 나는 일단 한 번 멈췄다. 그리고 해석을 하나 더 붙여보기로 했다. 이게 정말 괴롭힘인지, 장난인지, 질투인지, 둘 사이의 밀당인지—아직 나는 모른다. 다만 지금 내가 확실히 아는 건 하나다. 아이는 오늘 꽤 상처를 받았고, 집이 안전하길 바라고 있다는 것.
나는 이렇게 말했다.
“그 말 들으니까 진짜 짜증 나겠다. 근데 지금은 ‘누가 나쁜 애냐’ 결론부터 내리지 말고, 딱 세 가지만 더 말해줘. 그 친구가 정확히 어떤 말을 했는지, 툭 친 게 한 번인지 계속인지, 그리고 네가 그때 뭐라고 했는지.”
아이의 말이 조금 더 길어졌다. 감정이 조금 가라앉았다. 그제야 나는 선택지를 만들 수 있었다. 담임에게 알려야 할 일인지, 아이가 한 문장으로 경계를 세우면 끝날 일인지, 아니면 그저 친구 관계가 요동치는 시기라 지나갈 일인지.
부모가 필터 없이 내뱉는 냉소와 비판은 고스란히 아이의 언어가 된다. 그래서 나는 요즘 거창한 긍정주의자가 되는 대신, 딱 세 가지를 연습하고 있다.
1. 해석 하나 더 붙이기: 지금 보이는 현상 너머에 있을 법한 다른 설명을 딱 하나만 더 상상해보기.
2. 말하기 전 3초 멈추기: 이 말이 ‘필요한 말’인지, 아니면 단순한 ‘감정 배출’인지 구분하기.
3. 안 되겠으면 차단하기: 도저히 좋은 해몽이 안 되는 날은 아예 귀를 닫고 소식을 멀리하기.
좋은 일이 있다고 너무 우쭐할 필요도 없고, 나쁜 일이 있다고 너무 의기소침할 필요도 없다. 세상은 원래 통제 불가능한 이벤트로 가득하다. 중요한 건 그 이벤트가 나를 부러뜨리게 둘 것인지, 아니면 나를 더 단단하게 만드는 재료로 쓸 것인지다.
나는 이제 긍정의 해몽으로 피폐한 나를 탈출시키려 한다. 사실 나는 여전히 시크한 편이고, 말투도 건조하다. 하지만 확실히 아는 게 하나 있다.
해몽을 잘하는 사람은 현실을 부정하는 낙천주의자가 아니라, 현실을 통과하는 가장 영리한 방식을 아는 사람이라는 것. 오늘도 나는 완벽하진 않지만, 부정적인 말이 튀어나오려 할 때마다 입술을 꿰매는 심정으로 이 해몽을 연습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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