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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을 비는 마음

한중일 떡국 이야기

by 뎁씨


설이 왔다.

내 주변 사람들은 몇 번씩 들어서 알겠지만, 떡을 참 좋아한다. 그래서 날이 아니어도 우리 집은 평소에도 종종 떡국을 끓여먹기도 했다.


명절이나 기념일이 온다면 선물을 주는 걸 좋아한다. 작년 올해는 많은 사람들이 모일 수가 없어 못하지만, 무언가 다수의 사람이 모인 선물 교환식이 있다면- 나는 종종 한-중-일 3개 국을 의미하는 물건을 같이 담아 선물하기도 한다. 주로 각지를 여행하며 모아둔 자그마한 장식이나 소품, 간식 등으로.


차를 마시는 것도 좋아하는데, 차를 내리는 다구는 중국식 개완을, 찻잔은 일본의 유노미 찻잔을, 찻잎은 한국의 녹차나 발효차를 마신다. 때로 구성이 바뀌기도 하지만 대개 나는 이 이웃들이 잘 지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일본의 유노미, 중국의 개완,한국의 차


미안합니다. 서론이 길었습니다.


사실 이런 것들이 중요한 게 아니고, 내가 정말 하고 싶은 말은- 사실 한중일은 매일 지리적으로 역사적으로 다르네 마네 치고받고 싸우지만, 사실 아주 근본적으로 공유하고 있는 것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떡국'이라는 점이다.


놀랐는가?


나는 어릴 때 좋은 부모님 덕에 한중일 문화를 고루 접하며 사는 행운이 있었다. 그래서 명절이나 어떤 날들에는 다른 나라의 명절 문화를 접할 기회가 있었는데, 유독 이 한중일 셋이 형태는 달라도 모두 떡국을 설날에 먹는 문화가 있었다는 것이다.


세 나라에 비슷한 음식들이 있어 서로 갈등을 빚는 일은 너무나 익숙한 일이라 대수롭지 않다만, 같은 절기를 기념하며 같은 종류의 음식을 먹는 것은 무언가 흥미롭지 않은가?


일본의 오조니


우리가 떡국을 먹는 건 너무나 당연히 알고 있으니 나중에 서술하고, 우선 위의 그림은 '오조니'라는 일본의 설음식이다. 보통 다시마-가쓰오 육수에 부재료들과 함께 가운데 찹쌀떡을 띄워 젓가락으로 떼어먹는 음식이다.


무언가 담백하면서도 따끈하고 쫄깃하게 찹쌀떡을 떼어먹는 건 신선한 재미가 있다. 역사적 사실은 알 수는 없지만, 그저 재미로 무언가 의미를 부여한다면 죽죽 늘어나는 떡을 보며 장수를 기원하는 그런 의미라고 들었던 것 같다.


다음은 중국이다.


중국의 탕위안(tangyuan)


탕위안이라고 보통 얘기하지만 뭔가 발음? 에 유의해서 표기해보자면 탕유위엔(?)에 가까운. 아무튼 중국이 워낙 대륙도 넓고 그래서 모든 집안이나 지역이 그런 건 아니겠지만- 이 탕위안을 설에 먹는 집들도 있었다.


육수에 동글동글 모찌떡을 새알처럼 떼어 띄운 음식인데, 무언가 특징이라면 어떨 땐 떡 안에 팥이나 꿀처럼 달달한 게 들어있었단 점인데(모든 게 다 그런 건 아니었지만), 설날이 아니어도 식당의 디저트로 서늘하고 달달한 수정과? 같은 육수에 모찌떡을 띄워서 스푼을 푹 꽃아서 내주기도 했다.


그리고 이제 우리나라, 한국.


한국의 떡국

육수에 가래떡을 어슷 썰어 넣고, 노란 계란 지단, 고기 고명을 얹는 느낌의 하얀 국물에 하얀 떡이 국룰인 한국의 떡국.(우리 집은 절편을 넣어 먹기도 하고, 가래떡을 반 갈라 통으로 넣어 먹기도 한다)


우리집에서 먹는 떡국 중 일부

언제부터 떡이라는 것을 먹게 되었을까. 왜 명절에 떡을 먹을까. 왜 떡은 유독 명절 밥상에 등장할까. 왜 굳이 끓여서 먹을까.


떡을, 떡국을 어떻게 왜 먹게 되었을까에 대한 이야기는 예전에 내가 썼던 글을 다시 참조해보길 바라며.

https://brunch.co.kr/@devc/23


위 글을 요약해보자면,

하나, 우리는 밥보다 떡을 먼저 먹었던 민족이다.(석기시대 흔히 출토되는 떡시루가 밥을 지어먹는 솥보다 수천 년 앞선다). 그리고 둘, 우리는 떡을 사랑했던 민족의 후예다.


우리는 돌멩이로 동물을 잡아먹는 수렵보다 곡식을 일구는 농경사회가, 그렇게 먹던 떡이 좋아서 이 땅에 남았던 사람들의 후예다. 그게 싫었다면 진작 이 땅을 떠나갔겠지. 그렇다. 우리의 근본은 떡이다. 떡이 언젠간 뿌리를 점점 잊어가는 우리를 구할 거다.


떡은 어르신들 먹는 거라고 별로 안 좋아한다고 생각할지도 모르는데, 떡볶이를 좋아하는가? 소울 푸드잖아. 잘 생각해보라구. 떡볶이도 잘 들여다보면 떡국이야. 빨갛고 매운 떡국. 우리가 어떤 민족입니까.



이렇게 이웃한 세 나라는 새해에 떡국을 먹으면서, 조금 사이좋게 지내 볼 생각은 없을까. 너무 아픈 옛날은 옛날이 될 수는 없는 걸까. 나는 생각해본다. 한중일 정상이 새해즘 서로 한번씩 초빙하여, 각 나라의 떡국을 나눠먹는 그런 일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그렇게 조금은 사이좋게 지내볼 수는 없을까. 그런 마음이 든다.


떡국을 먹는 이유가 정월 대보름의 달을 형상화했느니, 하얀색은 백의민족이니 순수와 건강을 상징하니 뭐 갖다 붙이기만 하면 의미가 되는 그런 건 별로 관심 없다. 태초의 떡은 동그란 모양도 아니었을 거고 보름달을 형상화하지도 않았을 테니까.


다만- 음은 있었을 것이다.

래서 나는 '올해는 운동도 많이 하고, 성실하고, 책도 많이 읽고 무엇도 하고 저것도 해야겠다' 같이 부질없는 작심삼일의 계획보다 당신을 더 빌어 본다.


떡국의 모양이나 색이 상징하는 의미는 제각각이라 뭐가 진짜인지는 하나도 모르겠지만, 당신을 비는 마음은 명확하게 남아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진짜 떡국은 이것이었을 거야.


불빛도 희미하던 그 오랜 옛날의 선조들은 어둠이 가득차 두려운 밤중에 가장 밝던 달이 뜨면,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야- 새해 복 많이 받아서, 오늘 자고 일어나도 아무렇지 않고 내일도 그대를 다시 또 만났으면 좋겠어요- 이것을 빌지 않았을까. 간절하게. 그래서 나도 그 마음을 따라 당신을 빌어봅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이미지 출처 : 조선미디어블로그, 라이브재팬, Noob Cook. 청룡다원, 구글이미지, taooftea, amazon sh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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