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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뎁씨 May 05. 2020

우주에게로 보내는 편지

우주#5


나는 말없이 당신의 무늬를 세어서 주저앉습니다. 무엇하면 내가 떠오릅니까. 나는 카페만 가면 유자차를 찾고 없으면 서운합니다. 나는 긴 갈색의 머리를 사랑합니다. 몰랐는데 나는 짧고 아득히 검은 머리칼을 사랑합니다. 주의 이름을 닮은 사람.


파도가 하늘보다 푸른 제주에서 가족들과 걷는 돌담이 쓸쓸했습니다 그렇지 않은 쪽이 더 척을 한다기에 더 더 웃으며 몹시 사진을 찍었습니다 하늘은 쓸한 말을 할 수 있습니다 사랑한다거나 보고 싶다거나 떠나지 말라거나


그만 말을 더없이 하지 않아 버리 딱히 그래 어떤 말도 그저 말하지 않는 것이 좋겠다 그것이 감히라는 말을 넘어서지 못하고 단지 그러므로 거짓말을 하지 않게 되었다가 밉고 그저 묵묵히 떠날 뿐인 사람이 있 바람은 고 불어서 그저


사랑하는 당신에게.

준비하고 있다던 일은 잘하고 있습니까. 나는 그때 우리가 처음 둘이 만났던 날을 기억합니다. 유자에 잣을 띄워마신다는 말을 기억합니까. 그래서 나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유자차를 쥘 때마다 생각합니다. 내 방에 유자청이 든 병이 있고, 그것을 치우지 않습니다. 읽지도 않는 소설책들이 서재 한켠에 채워지고 있습니다. 나는 그것을 분주히 쌓아 갑니다. 사건마다 나와 조금씩 부딪혀 가던, 내가 걷던 길에 있었던 시간마다 나와 마주쳤을 당신이 생각납니다.  이제니의 시는 여전히 어렵습니까. 시라는 것을 만나면 내가 조금은 떠오릅니까. 교보문고의 현판에는 시 같은 것들이 늘 적힐 텐데 그럼 계절마다 혹시 생각은 나겠습니까. 이제 나는 야구와 소설과 유자와 딸기와 책과 찻잔과 그림과 미술관과 동물원과 겨울과 인상주의와 펭귄과 커피와 올리브와 연어와 방어와 지중해의 무늬들과 그것들이 새겨진 도자기와 마리모와 6월 여름의 수영과 건포도와 마늘빵과 기타와 광화문과 스누피와 릴로와 스티치와 튀니지와 술떡과 카야토스트와 떡볶이와 김소월과 검고 하얀 그저 그런 것들에게서 당신이 생각납니다. 아마 우리는 마주치게 되겠지만 당신이 어떻게든 달아날 거라고 이제는 믿기까지도 합니다. 아직이라는 말에는 으름장 같은 말이 들어있어서 아직이라는 말을 하지는 못합니다. 자주 오래  그립습니다. 좀 더 밝고 좀 더 웃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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