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이 바로 코 앞에 닥치면 어떤 기분일까?
고교시절 어느 화창한 여름방학 친구 두 명과 나 이렇게 셋이서 방학을 맞아 태종대로 놀러 갔다.
태종대에 도착해 추억을 남기고자 일회용 필름카메라를 사서 사진을 찍으며 태종대 바닷가로 향했다.
좀 덥긴 했지만 날씨도 좋았고 우리들은 기분이 한껏 업이 되어 즐거운 한때를 보내고 있었다.
태종대 앞바다에 도착해 서로 사진을 찍어주며 놀던 중 우리들 눈에 해안가에서 조금 떨어진 곳(약 2-30m 정도)의 수면위로에 사람이 밟고 올라설 수 있을 것 같은 작은 바위 하나가 보였다.
친구 한놈이 저 바위에 올라가서 사진을 찍으면 멋질 것 같다고 얘기하며 저기 가서 찍자고 얘기를 꺼 냈고, 거기 까지는 수영을 해서 가야 하는데 우리는 따로 수영복을 챙겨 오진 않았다.
불타오르는 젊은 혈기에 수영복이 없으면 어떠랴, 햇빛도 쨍쨍한데 옷은 나중에 말리면 되니 신발만 벗고 가 보자는 분위기가 형성되어 먼저 얘기를 꺼낸 친구가 앞장서 물에 들어가 그 바위 쪽으로 헤엄쳐 갔다.
다른 친구 한 명은 자기는 물에 들어가기 싫으니 너네 둘이 가면 사진을 찍어 주겠다고 했고, 나는 수영을 할 줄 몰라 물아래 바닥을 디디며 조금씩 바위를 향해 천천히 걸어갔다.
먼저 그곳에 도착 한 친구는 나에게 빨리 오라며 재촉을 했는데 해안선에서 한걸음 한걸음 발을 내디딜 때마다 물이 점점 허리에서 배, 가슴까지 차 올라왔고 목표지점인 바위까지 반쯤 갔을 때에는 이미 물이 목까지 차 올라 더 이상 앞으로 갈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수영을 못하니 이 이상은 앞으로 나아갈 수 없어 나는 포기하고 돌아가야겠다고 먼저 간 친구에게 얘기한 후 몸을 돌리려던 찰나, 파도에 몸이 떠 밀려 발 밑에 아무것도 밟히지 않는 상황을 맞이하게 되었다.
순간 당황했지만 나는 침착하게 몸을 가라앉혀 바닥으로 내려가 바닥을 짚고 천천히 해안선 쪽으로 조금만 이동하면 다시 바닥을 밟고 일어설 수 있을 거라 생각해 그대로 잠수하여 바닥으로 내려가려 했다.
하지만 바닷가의 파도는 내 몸을 흔들어 내 몸이 아래로 내려가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수영을 할 줄 몰랐던 나는 수면 위로 몸을 띄우지도 못했고, 바닥으로 내려갈 수도 없게 되자 이내 패닉에 빠져버리고 말았다.
침착성을 잃고 당황을 하게 되니 참고 있던 숨이 곧바로 풀려 버렸고 바닷물을 먹기 시작했다.
수면 위로 올라가지도 못하니 살려달란 말도 못 하고 계속 물을 먹으며 허우적거린 지 얼마나 되었을까?
의식을 잃어 갈 즈음 갑자기 머릿속에 내가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살아왔던 기억들 중 주요한 장면들이 필름 한 컷 한 컷 넘겨보는 것처럼 시간 순서대로 하나씩 지나가다 그날 태종대에 놀러 와 바닷가에 들어가는 조금 전의 장면에 도착하니 의식이 현재의 몸으로 돌아오는 걸 느꼈다.
말로만 듣던 주마등이란 걸 실제로 경험했다.
의식은 돌아왔지만 아직 나는 물속에 있었고 내 몸은 의외로 편안했다.
물속에서 나는 누워있는 자세로 해수면 쪽을 바라보고 있었는데 일렁이는 해수면 위로 눈부시게 반짝반짝 빛나는 윤슬과 해수면 너머로 보이는 하늘이 참으로 아름답단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이내 이렇게 나는 죽는구나 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는데 이상하리만치 마음이 편했다.
고통도 걱정도 없었다.
그리고 다시 점점 의식이 희미해지려던 순간 어떤 힘에 의해 내 몸이 한쪽으로 밀려 나갔고, 곧이어 발바닥에 뭔가 닿는 느낌이 들었다.
발바닥의 촉감은 바로 수면아래 바닥의 촉감이란 걸 금세 알 수 있었고 나는 순간 바닥을 박차고 해수면을 향해 미치듯이 뛰쳐나왔다.
그리고 물에서 완전히 빠져나와 먹었던 바닷물을 토해내고 고통스러워하며 완전히 뻗고 말았다.
온전히 정신을 차린 후 내가 물에 빠져 죽음이 코앞으로 왔을 때 내 몸을 밀쳐냈던 의문의 힘은 다름 아닌 먼저 바위 쪽으로 헤엄쳐간 친구가 나를 구하기 위해 내 몸을 해안선 쪽으로 밀었던 것이란 걸 알게 되었다.
이 녀석이 내 생명의 은인이었다.
그리고 내가 물에 빠져 허우적거리며 주마등을 본 시간은 체감상 4-5분 정도는 된 것처럼 긴 시간이었는데 친구의 말로는 내가 물에 빠져 허우적거릴 때부터 물 밖으로 나왔을 때까지 1분도 안된 거 같다는 얘길 듣고 1분 정도면 숨을 참기만 해도 충분히 참을 수 있는 시간인데 그 사이에 모든 경험을 다 했다니 참 어이가 없으면서도 신기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날의 죽을 뻔 한 기억과 주마등의 경험은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되고 있어 난 그날 이후 절대로 수심이 허리보다 깊은 물속으로는 들어가지 않는다.
다행히 난 그날 죽을 운명은 아니었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