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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달의 민족

오토바이에 빠지다

by 아마추어

고등학교 시절 기계과에서 기계설계(캐드)를 전공했었는데 컴퓨터로 도면을 그리는 작업이 참 적성에 맞았던 것 같다.

시간만 나면 운동장에서 축구를 하며 보내느라 공부에는 전혀 시간을 투자하지 않았지만 전공분야 성적은 나름 괜찮게 나올 만큼 재미도 있었고 향후 이쪽 분야로 진학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하지만 이 분야는 취업을 하려면 전문교육을 받기 위한 대학진학이 필수였기 때문에 3학년이 되고부터는 대학 진학에 대한 고민이 많이 되었다.


대학을 가면 학비가 많이 들 텐데 내가 공부를 잘해서 비교적 비용이 많이 들지 않는 국립대를 가거나 장학금을 받아가며 다닐 수 있는 성적은 안되었기 때문에 대학 진학은 그야말로 안 그래도 삶이 팍팍한 가족들에게 엄청난 부담을 줄 거란 생각을 떨쳐버릴 수 없었다.

결국 나는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집에는 “공부하기 싫다, 공부는 적성에 안 맞는 거 같다”며 대학을 갈 생각이 없다고 얘기하고 고등학교 3학년 2학기 때부터 취업 전선에 뛰어들어 돈을 벌기 시작했다.


당시 실업계 고등학교 3학년들은 취업을 희망하는 학생들의 경우 2학기 때부터는 학교에 나가지 않고 전공분야 쪽으로 바로 취업이 가능했는데 말이 취업이지 주변에 아는 사람을 통해 어느 공장에서건 가라 확인서 한 장만 받아서 제출하면 그냥 학교에 가지 않아도 되는 허술하기 짝이 없는 제도였어서 진학을 희망하지 않는 대부분의 학생들은 이 방법으로 2학기부터 자신의 길을 찾아 떠나갔다.


나는 먼저 만만한 원동기 면허를 땄다.

평소 자전거는 잘 탔었기 때문에 운전면허 시험장에 등록해 필기시험과 장내 기능시험을 모두 간단하게 통과하고 한 번에 원동기 면허를 딴 후 동네 ‘장우동’이라는 분식집에서 배달일을 시작했다.


태어나 처음 내 힘으로 돈을 벌어 본 경험은 매우 감격스러웠다.

아직 고등학교를 졸업하지 않은 나이에 한 달에 수십만 원은 상당히 큰돈이었고 그 돈으로 내가 하고 싶은 일은 뭐든 할 수 있었다.


배달일은 참 재밌었다, 오토바이를 타는 것도 재밌었고 더욱이 당시 사장님은 배달 오토바이를 출퇴근용으로 쓸 수 있게 해 줘서 내 오토바이인 마냥 퇴근후나 가게가 쉬는 날에 맘껏 내가 가고 싶은 곳을 갈 수 있다는 점도 너무 좋았다.


처음 시작한 일이 배달일이어서 그랬을까? 아니면 딱히 기술이 필요하지 않고 쉽게 일을 구할 수 있는 일이어서 그랬을까? 그 후로도 한참을 나는 배달일만 했다.

치킨집, 마트, 중국집.. 배달일은 딱히 힘들지 않았고 오토바이를 타는 게 너무 재밌었다.


배달일을 하며 돈을 좀 벌다 보니 어느새 돈이 좀 모여 내 오토바이가 갖고 싶어졌다.

‘엑시브-SP'라는 125cc 오토바이를 평소 눈독을 들이고 있었는데 괜찮은 중고 매물이 나와 무작정 질러버렸다.


엑시브 SP - 당시 폭주족들이 많이타던 오토바이 였는데 나는 폭주에는 관심이 전혀 없었다.


이제 멋진 내 오토바이도 생겨 나는 어딜 가든 이놈을 끌고 다녔다.


오토바이를 산 지 몇 달쯤 지났을까?

하루는 고등학교 친구와 시내 PC방에서 만나 밤새 게임을 하고 아침이 되어 헤어진 후 오토바이를 타고 집으로 가던 중이었다.

시내에서 우리 동네로 들어가는 입구에 좀 큰 커브길이 하나 있는데 이 커브길은 평소에 60-70km 정도로 통과하는 길이었는데 그날은 왠지 오토바이가 너무 느리게 느껴져서 평소보다 더 빠른 속도로 그 커브길을 지날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친구와 밤새 PC방에서 한 게임은 자동차 레이싱 게임이었는데 밤새도록 모니터 속의 빠른 자동차 움직임이 눈에 익어 실제 내가 탄 오토바이의 속도가 평소보다 느리게 느껴졌다는 사실을 그땐 알지 못했다.


“이거 오늘은 잘하면 100킬로 속도로도 통과할 수 있을 거 같은데?”

평소라면 코너를 앞두고 액셀을 풀고 속도를 줄여야 할 지점에서 나는 여전히 액셀을 놓지 않았고 계기판의 속도는 90km가 넘어간 채로 코너에 진입하고 있었다.

그리고 코너가 시작되고 빠른 속도로 코너를 돌기 위해 오토바이를 옆으로 눕히려 할 때 내가 감당할 수 없는 속도로 코너에 진입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순간적으로 액셀을 풀었지만 이미 오토바이는 어쭙잖게 누은 듯 만 듯 애매한 상태로 기울어져 있는 상태라 급 브레이크도 잡을 수 없어 속도는 빨리 줄일 수 없었고, 오토바이는 점점 코너 밖으로 밀려나가다 결국 도로와 인도 사이의 턱에 부딪혀 공중으로 점프하고 말았다.


이른 아침이라 도로에 다니는 차들 도 많지 않았고 사고 지점이 동네 진입 전인 장소라 인가도 없고 사람들도 거의 다니지 않는 인도여서 다행히 2차 사고는 없었다.

오토바이와 나는 인도 위 아스팔트에 떨어졌고 이내 몸을 추슬러 정신을 차리고 일어나 다행히 크게 다친 데는 없어 안도의 한숨을 내 쉬며 헬멧을 벗었는데 헬멧이 커다란 금이 간 채로 깨져 있었다.

평소 머리에 뭘 쓰는 걸 싫어하던 성격이라 오토바이를 탈 때에도 헬멧을 안 쓰고 탈 때가 많아 과태료도 여러 번 받곤 했었는데 그땐 추운 겨울이라 추워서 어쩔 수 없이 썼던 헬멧 덕에 머리를 다치지 않은 거란 생각이 드니 등골이 오싹해졌다.

만약 헬멧을 쓰지 않은 채로 이런 사고가 났다면 머리가 깨져 심각한 부상을 당하거나 죽었을지도 몰랐을 것 같다. 그 단단한 헬멧이 쩍 하고 갈라졌을 충격을 머리로 그대로 받았을 테니 말이다.


오토바이의 앞바퀴는 인도 쪽 턱에 부딪힌 충격 때문인지 휠이 깨져버렸고 오토바이 몸통(카울)은 여기저기 깨져 덜렁덜렁거리고 연료통 쪽도 금이 간 틈사이로 휘발유가 새고 있었다.

불이 안 난 것도 참 다행이었고, 몸도 딱히 어디 아픈 데가 없는 것도 다행이었다.


앞바퀴가 깨져 제대로 굴러가지도 않는 오토바이를 집까지 약 4-5km가량의 거리를 끌고 가 집에 세워 둔 후 난 내 방에서 뻗어 버렸다.

그리고 저녁에 잠에서 깨었을 땐 온몸이 쑤시고 아파서 자리에서 일어날 수 없었다.

몸살은 약 일주일 정도 지속된 듯하고, 몸이 괜찮아지고 난 뒤 나는 오토바이를 폐차해 버렸다.

그렇게 나와 오토바이의 인연은 이렇게 끝이 났다.


그리고 나에겐 입대 영장이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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