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 쓰레기 같은 인간
고등학교 1학년 여름방학을 얼마 앞둔 시점이었다.
평소 그럭저럭 친하게 지내던 사촌 형에게서 방학 동안 아르바이트를 할 생각이 없냐는 연락이 왔다.
사촌형은 우리 집 근처에 살고 있는 큰 이모네 첫째 아들이었고 자그마한 금속 부품 제조공장을 운영하고 있었다.
여름방학 기간 동안 한 달 정도 공장에 나와 아르바이트 좀 하고 용돈도 벌어볼 생각이 없냐는 거였다.
당시 나는 축구에 미쳐 살던 때였지만 알바로 용돈도 제법 쏠쏠하게 벌 수 있을 것 같아 흔쾌히 그러자고 했다.
축구는 주말에 하면 되니까!
여름방학이 시작되고 아침마다 나는 사촌형 차로 사촌형과 함께 공장으로 출근했다.
그 당시 공장에서 나는 너트를 제조하는 일을 맡게 되었는데, 육각형 모양의 금속 조각을 태핑이라는 기계에 올려두고 레버를 당겨 금속에 나사 홈을 파는 작업이었다.
요런 태핑머신의 선반 가운데에 육각형 금속 원자재를 올려두고 레버를 당겨 탭을 금속에 관통시켜 가공하면 육각 너트가 뚝딱 만들어진다.
너트는 대량으로 생산해야 하기 때문에 금속조각 하나하나를 일일이 틀에 고정하고 작업을 하기에는 생산량이 너무 떨어지므로 실제 작업은 금속조각을 엄지와 검지로 적당히 위치를 잡고 레버를 당겨 나사홈을 파는 방식으로 작업했는데 아무래도 금속이 깎여나가며 만들어지는 방식이기 때문에 비산물과 절삭유가 섞여 날아다니는 지저분한 환경이다 보니 당시 목장갑을 끼고 금속조각을 집어 작업하도록 교육을 받았다.
이 작업도 단순 반복 작업인지라 작업이 익숙해지고 나서부터는 작업 중에 졸음이 쏟아지곤 했는데 일을 한 지 보름쯤 지났을 때였을까?
순간 졸음을 이기지 못하고 나도 모르게 금속조각을 정위치에 두지 않은 상태로 레버를 당기는 바람에 회전하는 탭에 장갑이 얽혀 말려 들어가는 사고가 발생했다.
순식간에 일어난 사고에 너무 놀라 손을 급하게 뺐지만 이미 검지손가락이 회전하는 탭에 일부 말려들어가 장갑은 찢어지고 검지 손가락에서는 피가 쏟아지고 있었다.
다행히 손을 재빨리 뺀 덕에 손가락이 잘리거나 하진 않았지만 검지 손가락의 손톱이 통째로 빠지고 손가락 끝 일부가 찢겨 있었다.
나는 이때 쇼크라는 게 어떤 건지 태어나 처음 알게 되었다.
심박수가 엄청 빨라지고 온몸에 식은땀이 줄줄 흐르며 정신이 혼미했다.
이런 작업을 할 때는 원래 장갑을 끼고 하면 안 된다고, 지금처럼 회전하는 탭에 장갑이 얽혀버리면 운나쁘면 손목 채로 절단되는 일도 발생할 수 있다는 얘기를 후에 같이 일하던 어떤 아저씨에게 들었던 것 같다.
아무튼 그날의 사고로 나는 더 이상 알바를 할 수 없었고. 그때의 상처가 완전히 회복되고 손톱이 다시 모두 자라기까지 6개월은 족히 더 걸렸던 것 같다.
그나저나 사고는 사고고, 그동안 내가 보름가량 일 한 아르바이트비는 받아야 할 것 같은데 시간이 지나고 방학이 끝나갈 때가 되어도 사촌형은 어찌 아르바이트비를 줄 생각을 하지 않는 것 같았다.
정확히는 기억나지 않지만 큰 이모를 통해 아르바이트비를 달라고 여러 번 얘기했음에도 돌아오는 답변은 좀 기다려 달라는 얘기뿐이었던 것 같다.
그리고 결국에는 약속한 알바기간도 다 못 채우고 중간에 사고를 쳐서 아르바이트비를 줄 수 없다는 얘기를 들었던 것 같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이 인간은 아르바이트비를 줄 생각이 처음부터 없었던 것 같다.
아니 아직 성인도 아닌 미성년자를 데려다 일을 시켜놓고 심지어 일하다 다치기까지 했는데, 게다가 사촌형이라는 인간이 이렇게 부려먹고 돈을 못주겠다고?
내 손가락은 잘릴 뻔하고 손톱은 통으로 빠져서 지금 개고생을 하고 있는데 마땅히 받아야 할 아르바이트비를 안 준다고?
이때 나의 이성의 끝은 완전히 끊어졌다.
나는 부엌에서 칼 한 자루를 들고 큰 이모집으로 달려갔다.
당시 내가 칼을 들고 나온 걸 본 형수도 큰일이 날새라 뒤늦게 나를 말리러 따라왔다.
나는 큰 이모집에 들어가 당장 사촌형을 불러오라고 난동을 피웠다.
온 집안에 비상이 걸렸고 나는 당장 아르바이트비를 내놓지 않으면 사촌형이고 나발이고 죽여버릴 거라고 악을 썼다.
다행히 사태는 금방 수습되었다.
큰 이모가 사촌형한테 연락해서 상황을 설명했고 다음날 바로 아르바이트비를 주겠다는 약속을 받아내고 나서야 나는 진정이 되었다.
당시 내 아르바이트비는 최저임금정도였던 것 같다.
아직 미성년자라 정상적인 임금도 아니었고 그나마 보름 남짓한 기간 동안 일한 거라 정말 몇 푼 되지도 않는 돈이었는데 그걸 떼먹으려 하다니.
나는 절대 이해할 수 없었고 그냥 넘어갈 수도 없었다.
그 사달이 나고 다음날 나는 큰 이모한테 바로 아르바이트비를 받았다.
그리고 얼마 안 가 나는 새로운 사실을 하나 알게 되었다.
그 사촌형이란 인간한테 나의 둘째, 셋째, 막내형까지 모두 예전에 일을 해주고 돈을 못 받은 경험이 한 번씩 있었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 인간은 진짜 개 쓰레기였고 그날 이후로 그 집안사람들과는 연을 끊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