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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문열고 전기 장판 위에 누워있기 그리고 귤

엄마가 있었더라면 혼났을, 어른이 되어 맘껏 즐기는 소박한 사치

by 데비안

나는 방바닥이 따뜻한 걸 아주 좋아한다.


집 보다 집 밖 놀이터에서 하루 일과를 온종일 보내곤 하던 나는

한 겨울에 놀이터에서 종일 뛰어놀다가 손 발 얼굴이 꽁꽁 언채 집에 돌아오면

개구리 세수를 하고 엄마가 깔아놓은 이불안으로 들어가 귤을 까먹으며 티비를 보던 일상을 사랑했다.


그래서 일까 따뜻한 방바닥에 누워 뒹굴뒹굴 몸을 지지는 일상을 여전히 아주 좋아한다.

이제는 침대없이 잘 못자고 바닥에 오래 누워있으면 온몸이 쑤시곤 하지만

그래도 추운 겨울이 되면 뜨끈뜨근한 마룻바닥이 너무 좋다.


그래서 나는 최근 몇 년간 난방비 폭탄에 시달렸다. 소박한 사치라고 생각했으나 이젠 더이상 소박한 사치가 아니다. 작년 겨울 미지근하게 보일러를 틀었다고 생각했는데 난방비 폭탄에 충격을 받고선 전기장판으로 노선을 변경했다.


피곤한 일정레 영하 7도 날씨를 헤매고 다니다가 집에 돌아왔다.

5시 밖에 안되었는데 밖은 어느새 어두워지고 있었다.

사람들에 부대끼고 정신적으로 피곤해서 일까.

유난히 무거운 몸에 아무것도 하기 싫었지만 그래도 씻고는 누워야지.

비척비척 화장실로 걸어갔다.


따뜻한 물에 몸을 녹였다.

피로는 수용성, 스트레스는 지용성이라고 나를 둘러싼 피로감이 조금은 씻겨 내려간 듯 하다.

그리고는 냉장고에 있는 귤을 한 웅큼 들고 전기장판 위에 앉았다.


'아, 따뜻헤....'


몸이 노곤노곤해진다.

꼭 마시멜로우가 되는 그런 느낌이다.


하.지.만 이 등따수움의 극락 포인트는 바로 시원한 공기.

상반된 두 온도가 만드는 기묘한 판타지이다. 추운데 따뜻한 그런 거랄까.


그래서 베란다 문을 아주 활짝 열었다. 맑고 차가운 공기에 머리가 맑아지는 느낌이다.

물론, 시원하다는 몇 초가지 않았지만 말이다.

문을 열어두고 전기장판 위에 누워 담요를 덮었다.


'겨울에 하는 최고의 사치로군. 붕어빵이랑 군고구마가 없는 건 조금 아쉽지만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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귤을 다섯개 쯤 까먹고 조금은 노랗게 물든 손톱을 보며

오늘의 취향은 따뜻한데 따뜻한 거 말고 추운데 따뜻한 거, 창문 열고 전기장판 이라고 하자.


나의 취향, 한 겨울의 소박한 사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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