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에서 통신사 개통, 은행 계좌 열기
날은 좋지만 조금 피곤한 날이다. 어젯밤 인터넷에서 '스페인 통신사', '스페인 은행계좌'로 검색해서 나오는 글을 읽느라 늦게까지 핸드폰을 보고 있던 탓인가 보다. 주섬주섬 일어나 아침을 먹고 학원으로 갔다
스페인어 학원 3일 차, 첫날의 당혹스러움은 사그라들었지만 종종 외계어처럼 들리는 스페인어를 스페인어로 설명을 듣고 있을 때면 정신이 아득해지곤 한다. 이제는 "다시 한번 말해달라"고나 "스페인어로 이걸 뭐라고 말하죠", "그게 무슨 뜻이죠"라고 질문을 던질 수는 있지만 여전히 하비(Javi)의 답변은 잘 알아들을 수 없다. 여기에 와서 한국 사람은 알고 지내지 않겠다고 생각했지만 몇 달 먼저 학원에 와서 수업에 적응한 한국사람이 같은 반에 있는 것은 수업에 적응하는 데에 큰 도움이 됐다
오늘은 스페인 통신사 매장에 가는 날. 한국 번호는 다음 주부터 휴면 상태가 될 거라, 오늘은 가서 처리를 해야만 한다. 별문제 없이 핸드폰을 개통하고 나면 내일은 은행에 계좌를 열러 갈 계획이다. 부디 잘 처리가 되길! 할 말을 열심히 외워서 수업이 끝나고 매장으로 갔다
해봅시다
나 : Hola(안녕)
직원 : Hola(안녕)
나 : 에.......끼에로..... ((아, 뭐였더라!?))....
직원 : What do you want?
나 : !!
열심히 외워본다고 외워온 스페인어는 생각처럼 잘 뱉어지지 않았다. 까만 머리에 누가 봐도 외국인, 누가 봐도 아직 스페인어를 못 할 것 같은 나를 위해 직원은 먼저 영어로 말을 걸어 주었다. 마드리드, 바르셀로나는 그래도 영어를 잘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스페인 제 3도시라는- 발렌시아에만 와도 영어를 잘 말하는 매장 직원이 생각보다 많지 않다
운 좋게 영어도 잘하고, 빠르고, 친절하고, 꼼꼼한(그의 특징을 적어놓고 보니, 꽤 대단한 사람이고 난 운이 좋았네!) 직원을 만나, 덕분에 일을 잘 처리했다. 후에 볼 일이 있어 Yoigo 다른 지점을 간 적이 있지만 이 곳이 최고다. 나이가 조금 있어 보이는 여자 직원은 영어를 거의 못하니, 밖에서 보고 젊은 남자 직원이 앉아 있으면 따르릉 문을 열고 들어가도록 하자
Carrer de Russafa, 56, 46006 València, Valencia
다음 날
많아도 너무 많은 스페인 은행 어디를 갈지 고민하다가 Bankia에서 계좌를 열기로 했다. 우리 집 근처에 지점이 있고 발렌시아에 지점이 꽤 여러 개 있고, 내가 간간히 갈 것 같은 다른 도시에도 지점이 있으니 베스트 아닌가. 거기다가 발렌시아에서 Bankia 계좌를 열은 사람의 블로그 후기도 있으니 비교적 쉽게 일을 처리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스페인 은행은 아침 8시 조금 넘어서 문을 열고 오후 2시쯤에 업무를 끝낸다. 뭐 은행 문은 그때 닫아도 남은 잔업 때문에 바로 퇴근하지는 못하겠지만. 스페인과 우리나라 은행의 차이점을 꼽아보자면 첫 번째는 '은행 관리 수수료'가 매년 발생할 수 있다는 것(그러니 계좌를 만들 때 수수료가 없는 계좌가 맞는지 두 번 세 번 확인하도록 하자), 두 번째는 은행원들의 복장이 엄청 자유롭다는 거다. 그렇다 지금은 5월, 발렌시아의 온도는 이미 초여름. 그리고 내 앞에 있는 직원은 민소매 옷을 입고 있었다. 그야말로 생소한 풍경이었다. 달달달 외운 스페인어 문장을 더듬더듬 꺼냈다
나 : Buenas. Quiero abrir la cuenta de banco(좋은 오후입니다. 은행 계좌를 열고 싶은데요)
((크게 한 숨 쉬어주고))
나 : Soy estudiante y todavia no tengo NIE... puedo abrirla con el pasaporte(저는 학생이고 아직 스페인 거주증이 없는데, 여권으로 계좌를 열 수 있을까요)
더듬거리며 말을 마치고 그제야 정면을 바라보니, 민소매의 직원은 엄마 미소를 짓고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동양에서 온 여자애가 어떻게든 스페인어로 말을 하겠다고 더듬거리며 말을 이어가는 게 그저 기특했나 보다. 여행이든 생활이든 첫인사를 영어가 아닌 현지어로 하면 분명히 장점이 있다. 하나는 사람들이 더욱 친절해진다는 것, 다른 한 가지는 상대방이 내 외국어 수준을 인지하고 더 천천히, 바디랭귀지를 섞어가며 답변해준다는 것
직원은 안경을 끌어올리고는 내가 준비해 간 서류를 찬찬히 둘러봤다. 그녀가 종이 한 장 한 장을 진지하게 보는 동안 두 근 반 세근반 콩닥거리는 심장으로 그녀의 표정과 제스처를 하나도 놓치지 않으려고 집중한다. 이윽고 그녀가 입을 열었다
직원 : &@(#($&@*#&@
나 : .......??
직원 : ^*@($^#...dinero....
다행히 단어 하나를 알아들었다. "dinero(돈)" 혹시나 하고 준비해 간 재정 관련 서류를 내밀으니 직원이 오케이 사인을 보내준다. 나의 지나친 준비성이 웬일로 빛을 발하는 날이로구나! 그렇게 직원은 또 한참 내 서류들을 들여다보고 때때로 다른 직원들과 같이 내 서류를 보며 토론을 하면서 내 심장을 들었다 놨다를 반복했다. 그렇게 한 시간여 지나고 나는 드디어 스페인 현지 계좌를 가질 수 있었다
계좌를 열어준 것만으로도 감사한데-참고로 스페인의 업무처리는 복불복이다. 같은 서비스를 신청해도 어떤 직원은 그냥 해주고, 어떤 직원은 돈을 요구하기도 한다- 신규 고객 선물이라며 나에게 선물을 툭 건네주었다. 이건 또 뭔가 하고 의심의 눈길로 쳐다보고 있으니 "이제 여름이니 바다에 갈 때 쓰라"며 한 마디를 덧붙여줬다
오호라!
다음 주에 ALE-HOP(스페인판 다이소)에 가서 사려고 했던 비치타월을 득템 했다
스페인어 꼬꼬마에게 큰 산이었던 두 가지를 해결하고 나니 마음이 한결 수월하다. -집 구하기라는 가장 큰 산이 남아있지만- 오늘은 스스로에게 작은 상을 주기로 했다. 지난주에 갔던 예쁘고 맛있었던 카페에 가서 먹고 싶은 음료와 케이크 먹기. 출국 2일 전까지 비자 승인이 나지 않아 똥줄 타던 게 먼 옛날 일인 것처럼 모든 일이 수월하게 진행되고 있다. 너무 수월하게 진행되니 조금 불안해지기도 하지만.... 지금은 이 평화로움을 즐기기로 했다
Quiero ㅇㅇㅇ / 끼에로 ㅇㅇㅇ / ㅇㅇㅇ을 원해요
Es gratis? / 에스 그라티스? / 공짜인가요?
Diga otra vez, por favor 혹은 Repite por favor / 다시 한번 얘기해주세요